[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하루에도 수많은 정보를 주고 받습니다. 그 종류도 다양하지만 크게 나눠보면 텍스트와 이미지, 동영상, 각종 파일이 되겠지요.메일이나 카톡 등의 SNS를 통해 받는 정보들은 그것을 터치만 하면 바로 볼 수 있어 아주 편리한데요, 문제는 그 이후에 본인도 모르게 쌓여가기 시작합니다. 바로 열어 본 자료를 다시 봐야할 경우에 어떤 방식으로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게 됩니다.첨부 파일이 있는 메일의 경우 그 첨부 파일을 터치하면 바로 열려서 볼 수가 있는데요, 이를 다시 볼 경우에 다시 메일을 열어 첨부 파일을
[중소기업투데이 신미경 기자] 농어촌상생기금운영위원회 제2대 위원장에 곽수근 서울대 명예교수가 선임됐다.농어촌상생기금운영위원회는 지난 14일 JW메리어트호텔 서울에서 제20차 위원회를 열고 이같이 의결했다고 밝혔다.서울대 경영대학 명예교수인 곽 신임 위원장은 지난 2010년 동반성장위원회가 출범할 당시 초대 위원으로 참여했으며, 현재 국제회계기준재단 이사회 이사,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자금세탁방지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곽 위원장은 “동반위에서 기업 간 상생과 성장을 모색하던 경험을 살려 기업과 농어촌, 도시민과 농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정세균은 2007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마치고 라는 제하의 책을 펴냈다. 임명통보를 받던 날의 소회부터 임기를 마치는 날까지 한국경제의 산업정책을 총괄하는 정부부처의 장(長)으로서 국내기업의 현장을 방문해 기업인들의 애로를 청취하고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동행하면서 펼친 활동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그는 산업자원부 장관에 취임하면서 “힘센 장관이 아니라, 힘있게 일하는 장관이 되겠다”고 약속하며 공무원들
스마트폰에서 어떤 앱을 이용하다가 다른 앱을 열어 볼 필요가 종종 있습니다.데스크탑PC의 경우에는 보던 화면의 크기를 줄여놓고 여러개의 다른 화면을 열어 각 화면을 오가며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스마트폰에도 비슷한 방법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안드로이드폰에 있는 화면분할 기능이라고 하는데요, 위 아래로 두개의 화면을 열어 놓고 동시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먼저 첫번째 앱을 열었다가 하단 가운데의 홈버튼을 누릅니다. 그 다음에 왼쪽의 메뉴버튼(LG폰은 오른쪽)을 누릅니다.메뉴버튼을 누르면 지금까지 사용하던 앱의 축소된 화면들이 나오는데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정세균은 학창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아 살아가던 ‘샐러던트(직장인+학생)’였다. 장학금과 교내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했던 그는 고려대에 입학하자마자 입주과외를 시작했다. 근로장학생, 대학신문기자 장학금, 성적장학금 등을 받으면서 총학생회장에 당선되기까지...어느 한 순간도, 한 눈 팔 수 없었던 숨 가빴던 청년시절이었다. 그를 키운 자양분의 8할이 장학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부도 때가 있는 법. 그는 제때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가난 때문에 늘 기회를 놓쳐야 했던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정세균은 대학과 군대를 마치고 나니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한때 인권변호사나 기자를 꿈꾸었지만 포기한 지 오래. 유신시대는 그렇게 젊은이들의 꿈을 앗아갔다. 이런 이유로 청년들은 관계(官界)진출을 꺼려했다. 정세균은 고심 끝에 1978년 종합상사인 ㈜쌍용에 입사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수출만이 살길이다’를 외치며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전개하던 시절이다. 1977년 수출 100억불, 국민소득 1000불을 달성하면서 그야말로 대한민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것도 당초 목표를 4년 앞당겨 이룩한 쾌
[중소기업투데이 신미경 기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 탄생했다.중소벤처기업부는 신임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으로 전 울산과학기술원(UNIST) 황윤경 기술사업화센터장을 임명했다고 20일 밝혔다.황 신임 센터장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영국 서섹스대에서 과학기술정책학 박사학위를 각각 받았다. 울산과학기술원 기술사업화센터장 등을 거치며 기술・창업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는 전국의 우수한 창업・혁신 생태계를 민간 주도로 연결하는 창업・혁신의 네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정치인을 두고 강물이나 바다 위에 떠있는 배에 비유한다. 국민의 삶이 넉넉하고 평화로울 때 강물이라는 민심은 물위의 배를 띄우지만, 그렇지 못하면 파도를 일으켜 급기야 배를 침몰시키는 두려운 힘을 발휘한다. 지도자는 물론 기업의 CEO들에게 ‘강물처럼 자신을 낮추라’고 조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정세균은 대통령을 제외하고 국회의원과 장관, 총리, 국회의장을 했지만 늘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적이 없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춰 상대의 눈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정세균을 그래서 강물에 비유하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학보사 기자도 잘린 상황에서 법관의 길까지 포기한 정세균은 이때부터 반독재운동을 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독재정권하에서 대학생활은 점점 절망의 숲으로 빨려 들어갔다. 출구전략이 필요했다. 1974년 정세균은 고려대 총학생회장에 출마한다. 최소한의 자금도 조직력도 없는 깡촌 출신의 정세균이 당선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 만큼이나 가능성이 없어보였다. 그가 지닌 자산이라곤 건강한 몸뚱아리와 지금껏 학교생활을 하면서 동료들에게 보여준 성실함이 전부였다. 정세균은 고심 끝에 ‘친진보 탈보수’를 선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정세균은 신흥고등학교로 전학을 와서 2년가량 빵돌이 생활을 통해 용돈을 벌며 학교를 졸업했다. 친구들이 빵돌이라고 놀려댔지만 그것이라도 감지덕지였다. 당시 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던 시절 빵돌이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었다.“사춘기 시절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자존심 등 뭐 이런 거지요. 특히 제가 뻔뻔한 스타일이 못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하지만 그런 약점도 훈련을 통해 극복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됐습니다.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전주 공고를 다니던 정세균은 이과보다는 문과에 소질이 있었고 특히 쇠를 깎고 용접하는 학교수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몇 달을 전전 긍긍했다. 결과가 잘못 되더라도 뭔가 시도는 해봐야하지 않겠나 하고 스스로 용기를 냈다.그러던 어느 날, 정세균은 전주공고에서 받은 시험성적표를 들고 무작정 전주 신흥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전학을 요청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교감선생님 감독 하에 즉석에서 모의고사 시험문제를 풀게 해줬다. 당시 성적은 최상위 수준. 급기야, 정세균은 교장선생님에게 학교에 등교해도 좋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정세균이 2020년 총리로 낙점된 뒤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렸다. 이날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 누구냐”는 한 국회의원의 질의에 그는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과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라고 대답했다. 다산이 저술한 ‘목민심서’는 목민관, 즉 관리들의 폭정을 비판한 저서로, 오늘날 정치인, 기업인, 공무원 등이 지켜야 할 공무 지침서로 알려져있다.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보다 겨레와 동포를 최우선 가치로 삼은 한국현대사의 거목이다. 그의 좌우명은 음수사원(飮水思源). 물을 마실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정세균은 위로는 사랑을 받았고 아래로는 사랑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회고다. 특히 가난했지만 형제간의 우애는 남달랐다고 한다. 정세균의 큰 누이는 정세균이 전주 신흥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교 인근에서 동생의 식사를 챙기는 등 어머니를 대신해 뒷바라지를 했다. 7남매중 겨우 초등학교만 졸업한 유일한 혈육이지만 지금은 형제들로부터 ‘여사님’소리를 듣는다. 자녀들이 성장해서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형제들이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부른다.정세균의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정세균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즈음, 어머니를 따라 읍내 장에 나갔다가 운명과도 같은 정치인을 만난다. 장터 마당 담벼락에 지역구 국회의원 사진이 붙은 선거벽보가 바로 그것이다.두 귀(耳)를 상징하는 마이산을 배경으로 한 멋들어진 선거벽보는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당시 선거벽보의 주인공은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에 입후보한 전유상씨다. 가난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렵던 시절에 언감생심,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한 장의 선거벽보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이날은 그가 정치인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날
스마트폰은 휴대하는 작은 컴퓨터입니다. 집이나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PC는 이용이 끝나면 전원 스위치를 꺼놓게 되듯이 스마트폰도 가끔 껐다가 켜주어야 합니다.스마트폰의 속도가 느려지거나 가끔 오작동이 생기는 경우도 장시간 사용으로 인한 경우도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1주일에 2, 3회 껐다가 켜주는 것이 좋은데요, 이를 자동으로 설정하는 방법이 있습니다.사용자가 일일이 껐다가 다시 켜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 또한 번거러운 일이긴 합니다. 요즘 스마트폰은 설정에서 본인이 원하는 요일과 시간대에 자동으로 꺼졌다가 다시 켜지게 하는 것이 가능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나는 가능한 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정도에 어긋나는 행동을 보거나 남자답지 못한 행동을 하면 다시는 안보는 고집스런 일면도 있다. 외유내강의 내 성격은 어떤 생활철학에서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어머니의 좋은 유전자 덕인 것 같다.”(열정, 그 길에서 세상의 빛이 되다).정세균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공부한 신여성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7남매를 키우면서 늘 미소를 잃지않고 부드러움으로 자식들을 대했다. 이웃들도 가족처럼 대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정세균의 아버지는 자유당정권 시절 오랫동안 야당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감투라곤 한국전쟁 후 면의원이 거의 유일했지만 큰 정치에 대한 꿈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초야에 묻혀 술을 지나치게 즐기다가 건강까지 잃었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민국당 등 당시 야권 정치인들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는 큰아들인 정덕균이 아버지의 생신이나 명절 등 특정한 날, 고급 양주나 커피 등을 선물하면 어김없이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이나 친구들을 불러 하루 밤 사이에 해치워
공공장소 입장시 필수인 큐알코드 체크인 방식에 새롭게 추가된 카톡 쉐이크 기능을 소개합니다.카톡이 실행된 상태에서 핸드폰을 흔들기만 하면 큐알코드가 화면에 뜨는 기능으로 최근 카카오가 카카오톡에 새롭게 추가한 기능입니다. 설정방법은 간단합니다. 카톡을 실행시키고 화면 상단 오른 쪽의 설정(톱니바퀴) 아이콘을 눌러 전체설정으로 들어갑니다.설정메뉴에서 실험실을 터치하고 쉐이크 기능에서 큐알코드 켜기를 선택하면 됩니다.카톡의 어떤 화면에 있더라도 스마트폰을 흔들면 큐알코드 체크인이 가능합니다.쉐이크 기능은 아니지만 네이버 뉴스를 보거나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가 불과 1년 남짓 남았다.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반전의 기회를 노리는 정세균 국무총리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기업인 출신으로 6선 국회의원, 산업부장관, 국회의장을 거쳐 현재 국무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는 정세균 총리의 어린 시절에 대해 궁금해 하는 독자가 적지 않다. 본지는 덕유산자락에서 태어나 중고교, 대학을 거쳐 쌍용에 입사하는 등 지금의 정 총리가 있기까지 가치관의 토대가 구축된 그의 젊은 날의 행보를 따라가 보았다. 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