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풀기 좋아하던 아버지의 유언
“나라의 지도자 배출은 가문의 사명”
생면부지 등산객 불러 잠재운 ‘한량’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朱川面)·정천면(程川面)·부귀면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1,126m이다. 노령산맥의 주능선을 이루는 최고봉이다.
전북 진안군 주천면·정천면·부귀면의 경계에 있는 해발 1126m 운장산. 정세균 가족은 장수를 떠나 진안으로 옮겨 운장산 초입에 살았다.     
고 2학년 시절의 정세균
전주신흥고 2학년 시절의 정세균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정세균의 아버지는 자유당정권 시절 오랫동안 야당생활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감투라곤 한국전쟁 후 면의원이 거의 유일했지만 큰 정치에 대한 꿈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초야에 묻혀 술을 지나치게 즐기다가 건강까지 잃었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민국당 등 당시 야권 정치인들과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는 큰아들인 정덕균이 아버지의 생신이나 명절 등 특정한 날, 고급 양주나 커피 등을 선물하면 어김없이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이나 친구들을 불러 하루 밤 사이에 해치워버렸다. 도통 살림과는 거리가 먼,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고 베풀기 좋아하는 영락없는 ‘한량’이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큰 아들은 물론 7남매 자식들에게 늘 정씨 조상들 가운데 사간원 대사간에 호조, 병조의 참판을 지낸 집안 어르신들 이야기를 자주하면서, 비록 지방에 살고 있지만 나라의 지도자를 배출해야 한다는 소명의식 같은 것을 심어주었다. 늘 배움을 강조하였고, 특히 정세균에게는 웅변까지 배우게 하면서 정치인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부단하게 애썼다.

 

아버지는 당신 스스로 가문을 빛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셨다. 그래서 틈만 나면 우리 형제들을 앉혀놓고는 정약용 같은 훌륭한 인물을 배출한 가문을 더럽히는 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 되며, 반드시 가문을 빛내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다.

이런 집안 분위기는 어릴 때부터 은근히 몸에 배어 나도 모르게 훌륭한 정치인이 되어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 하고자 했다. 정약용같은 사람이 되어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나의 이상이 되었고, 이는 내가 농사일에서 벗어나 공부하며 누리는 작은 혜택에 대한 심리적 의무감이기도 했다”(‘열정, 그길에서 세상의 빛이 되다’ 중에서)

정세균의 아버지는 건강이 악화된 말년에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만나 “내가 죽더라도 언젠가 내 아들이 국회의원 선거에 나올 거니 꼭 도와 달라며 돌아다녔다”는 게 정세균의 막내 동생 정희균의 증언이다. 정희균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던 아버지의 길동무였다. 정약용 선생의 후예를 그토록 꿈꾸던 아버지는 그러나, 아들의 정치입문을 보지 못한 채 1994년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996년 정세균은 무주·진안·장수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려 70% 가까운 득표율로 당선되며 자신의 정치입문을 세상에 알렸다. 당시 지역에서는 중풍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표가 절반이 넘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정세균이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진안으로 이사한 뒤 살던 집은 노령산맥의 최고봉인 운장산(1126m) 초입이다. 완주군과 진안군의 접경이자, 금강(錦江)과 만경강(萬頃江)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어 대학생들이 배낭을 메고 자주 찾지만 오르기가 간단치않은, 당일치기로는 매우 힘든 코스다. 그래서 산 정상에 갔다 내려오면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임을 감안해 정세균의 아버지는 생면부지의 대학생들에게 잠 잘 곳이 마땅치 않으면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권유하곤 했다.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기대와 사랑을 그렇게 젊은 대학생들에게 내밀었다. 이에 주말이면 정세균의 집은 외지 대학생들이 들락거리는 것이 일상이다시피 했다. 아버지의 이런 오지랖으로 인해 어머니의 마음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아궁이에 불을 지펴 아들을 대하듯 대학생들에게 따뜻한 방을 내어주고 밥을 해주었다. 어려운 살림살이로 인해 이들에게 넉넉하게 먹을 것을 챙겨주지 못한 아쉬움도 컸으나 마음속으로 삭혔을 뿐이다. 친구 좋아하고 퍼주기 좋아하는 남편에 대한 원망도 적지 않을 터이지만 어머니는 이런 불만을 단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정세균의 어머니는 동네사람들로부터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라고 불리었다. 당시 농촌은 하루 세끼를 챙겨 먹기도 버거운 시절이었지만 인간에 대한 배려와 여유가 있었다. 요즘 세상과는 한참 동떨어진 시대풍경이었다.

유명 정치인이나 대권주자의 경우 조상의 묘자리 또한 세간의 관심사다. 그렇다면 지역에서 후한 인덕을 쌓은 정세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어떠한 자리에 모셔져 있을까. 이에 대해 풍수지리에 정통한 손건웅씨는 “진안 동향면에 위치한 정세균 부모님의 묘소는 특히 조산(朝山)인 덕유산의 모습이 일품이다”며 “6선의원에다 국회의장, 총리에 오른 덕은 상당부분 부모님 묘소의 풍수파워에 연유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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