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가르는 부당함에 맞서 수업거부 주도
전교생 보는 앞에서 매 맞으며 얻어낸 성과
공고 다니다 신흥고 교장 찾아가 전학 요청

고교시절의 정세균(가운데)
고교시절의 정세균(가운데)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전주 공고를 다니던 정세균은 이과보다는 문과에 소질이 있었고 특히 쇠를 깎고 용접하는 학교수업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몇 달을 전전 긍긍했다. 결과가 잘못 되더라도 뭔가 시도는 해봐야하지 않겠나 하고 스스로 용기를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세균은 전주공고에서 받은 시험성적표를 들고 무작정 전주 신흥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전학을 요청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은 교감선생님 감독 하에 즉석에서 모의고사 시험문제를 풀게 해줬다. 당시 성적은 최상위 수준. 급기야, 정세균은 교장선생님에게 학교에 등교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린 나이에 어디서 그런 당당함과 기백이 솟아났는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아버지의 기대와 공부를 꼭 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용기를 부추겼던 것 같다.”(‘열정, 그 길에서 세상의 빛이 되다’中)

며칠이 지난 뒤 또 다시 교장실 문을 두드렸다. 정세균은 가난한 집안형편을 교장선생님께 말씀 드리고 학비까지 면제받았다. 여기까지는 온전히 교장선생님의 배려였다. 문제는 생활비였다. 당장 객지에서 먹고 살 돈이 없었던 것이다. 신흥고 전 재학생 가운데 1명에게만 주어지는 매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따냈다. 장학금 대신 휴식시간과 방과 후 학교 매점을 관리하는 ‘근로장학생’이었다.

정세균의 고교 동창생인 송완용은 신흥고에 입학하자마자 20여명의 친구들을 규합해 변치 않은 우정을 위해 상록수를 상징하는 ‘에버그린(evergreen)’이라는 서클을 만들었다. 시대와 청년들의 고민을 나누는 것은 물론 에버그린 회원을 총학생회장에 당선시키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었다. 2학기가 되자 전주공고에서 공부 잘하는 정세균이라는 친구가 전학을 왔다는 소문이 났다. 에버그린 회원들은 정세균을 유심히 지켜봤다. 남다른 순발력과 정치적인 감각을 갖춘 송완용과 친구들은 텃세를 부릴 법도 했지만 갓 전학 온 정세균을 에버그린 회원으로 영입한다. 송완용은 정세균과 1년간 함께 어울리며 친구의 됨됨이를 보고 자신이 꿈꿨던 학생회장 출마의 길을 접고 대신 정세균을 밀었다. 하지만 오히려 정세균이 미적거렸다. 무엇보다 공부욕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송완용은 “너는 공부를 계속해라, 학생회일은 내가 부회장을 하면서 뒤에서 도와주면 되지 않느냐”고 설득해 정세균을 전면에 내세웠다. 송완용은 학생회장을 꿈꾸던 다른 에버그린 회원들까지 주저앉히는 도미노효과를 이끌어냈다. 정세균과 송완용은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에 나란히 출마해 당선되면서 둘은 신흥고 학생회의 쌍두마차가 된다.

“후배와 동료들 앞에서 어릴 적 배운 웅변 솜씨로 연설할 때 온 몸이 짜릿했다. 한 표, 두 표, 나에 대한 지지를 늘려 갈수록 허기진 배를 채우듯 기쁨과 행복감은 커져갔다.”

이후 정세균은 전주시내 10여개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회를 결성해 회장을 맡는 등 본격적인 청년 학생운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거칠 것 없어 보이던 정세균의 앞길에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졌다. 학교 재단에서 운동장을 가로질러 병원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내겠다는 통보가 떨어졌다. 학교 운동장을 반쪽으로 잘라 버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학생회에서 대책회의를 가지면서 대안을 찾아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학생회는 정세균을 중심으로 학교 측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기로 하고 수업거부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정세균의 고민은 적지 않았다. 그의 전학을 받아주고 그것도 모자라 수업료 면제에 아르바이트까지 배려한 학교 측의 입장을 고려할 때 배은망덕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학생회장이라는 역할과 본분을 망각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규탄대회를 열기로 했다. 규탄대회 당일, 정세균은 학교 종루에 올라가 밧줄을 힘껏 당겼다. ‘뎅뎅’하는 종소리가 울리자 전교생들이 교실 밖으로 우르르 튀어나와 재단의 부당함을 외쳤다. 옥신각신 끝에 학교 측은 학생들의 입장을 수용해 학교 밖으로 길을 내기로 결정했고 그날의 집회는 종료됐다. 정세균과 송완영은 전교생 앞에서 선생님들에게 호되게 매를 맞는 걸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이후에도 학교측은 지나치게 짧은 머리를 강요하는 등의 일로 학생들과 적지않은 실랑이를 벌였고, 정세균이 주동학생들을 대신해 뺨을 몇 대 맞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훗날 교장선생님은 정세균과 송완용이 평소 얌전하고 착실해서 정상을 참작해 징계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전주 신흥고등학교는 일제강점기 때 3.1만세 운동을 맨 먼저 주도하고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까지 당하는 등 불의에 저항한 민족학교다. 정세균은 학생회를 이끌면서 이런 역사인식과 함께 민족정신에 자연스럽게 눈을 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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