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산책] 핀란드에 시선이 가는 이유
[디지털인문학 산책] 핀란드에 시선이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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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시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아동·청소년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세계의 일등국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이 힘을 잃어가고 있다. 세계 경제패권을 사이에 둔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미국의 위세는 예전같지가 않다. 고심 끝에 우리나라까지 끌어들이며 ‘반도체 칩 4 동맹’을 꾸리는가 하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나, ‘반도체 과학법’으로 폐쇄적인 자급체제를 구축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의 화려한 전성기가 지나가고 있는건가 싶을 정도이다. 하긴 잭 웰치의 GE나, 분식회계로 망해버린 월드컴, 엔론, 아서 엔더슨 등의 신화가 빛바랜 회한으로 남은지도 오래되었다.

일본은 또 어떤가. 일본식 기업문화는 더 이상 조직 관행의 대안적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이 아니라, ‘잃어버릴 20년’을 예약할지도 모른다. 유럽 각국도 이젠 4차산업혁명의 조류에 뒤처지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역설적으로 미·중의 패권경쟁에서 유럽은 소외돠어 있다는 방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곳 유럽에서도 유일한 예외가 있다. 바로 북유럽 민주국가들, 그 중에서도 핀란드라는 나라에 시선이 간다.

핀란드는 그 나라만의 윤리적 규범과 가치에 기반한 리더십 스타일을 갖고 있다. 세계에서 부정부패가 가장 없는 나라, 투명성이 가장 높은 나라, 가장 ‘무표정한’ 나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자 해독률이나 수학, 과학 성취도에서도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연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특허출원 성공률도 세계 상위급이다. 또 핀란드인의 1인당 휴대전화 이용률과 인터넷 사용률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2001년 유엔 개발보고서는 핀란드를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한 국가’로 꼽았다.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사회이자, 안정적인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나라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핀란드는 목재를 제외하면 천연자원도 없는 유럽 변방의 국가다. 그런데 어떻게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이토록 발전할 수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핀란드인의 특성 덕분이다. 핀란드인들은 안전과 교육, 청결함, 정직성 등에서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 또한 자기 존중과 내적 조화를 열망한다. 여럿이 팀을 이루어도 일을 잘 하지만 개별적으로 일할 때도 수평적 사고와 독창성을 발휘한다. 최첨단 기술과 정보혁명의 이기를 활용하면서도 상식과 정직성, 끈기와 안정성, 단순성을 존중하고, 허세나 허위의식, 과도한 부채를 혐오한다. 오랜 농업사회의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핀란드인의 특성이다.

핀란드의 초등학교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묻고 안내하고 격려하면서 수업을 이끈다. 대부분이 아이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질문들이다. 핀란드 부모들도 아이를 학교 보낼 때도 “학교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라는 말은 안 한다. 대신에 “공부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께 꼭 물어봐야 한다”라고 당부한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선택의 비밀>을 쓴 심리학자 롬 브래프먼은 “질문처럼 좋은 학습법은 없다. 공부에 흥미를 잃지 않는 중요한 방법이 바로 질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질문은 자녀가 지식을 얻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다. 질문과 토론을 통해서 얻은 지식은 오래도록 머리에 남는다.

한국도 소위 ‘창의적인 교육’을 여러모로 시도하고는 있지만, 아쉽기만 하다. 적어도 이 땅에선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도 없고, ‘하류 인생’을 각오하지 않는 한 그걸 고집할 수도 없다. 공동체는 구성원들에게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공동체 가치를 따를 것을 요구한다. 모든 것이 계량화, 서열화되고, 지표로 매겨지는 사회에 우린 살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문화는 기존의 서사를 해체하는 일탈의 세계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껏 옳다고 여겨왔던 소유 지상주의나 맹목적 효율, 엄숙한 공동체적 명령 따위는 해체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갖다 버려야 할 허드렛 이삿짐 신세가 되고 있다. 그 보단 무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펴면서, 오로지 새로운 경험에 투자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 ‘미래’를 미리 가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익숙한 이 땅과, 우리 삶의 반경에선 그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새삼 핀란드라는 나라를 주목하게 된다. 핀란드의 저력은 어릴 때부터 끊임없는 질문과 창의력으로 아이들을 길러온 덕분이다. 가정과 학교, 국가가 일심동체가 되어 뿌리가 단단한 나무로 아이들을 키워온 것이다. 핀란드인들은 폭음을 즐기고 자살률도 상당히 높고, 우울한 기질도 많다. 하지만 건강한 고독을 즐기고, 호수와 나무를 사랑한다. 모든 개인들은 ‘단단한 사유’와 ‘도발적 창조 욕구’로 채워져있다. 그래서 더욱 핀란드에 시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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