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산책] 디지털시대와 '멍때리기'
[디지털인문학 산책] 디지털시대와 '멍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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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시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아동·청소년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지식이 늘어날 때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증가했다. 다만 ‘나쁜 사람’은 우리 조상들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나쁜 짓을 하고, ‘착한 사람’은 더 많이 착한 일을 할 수 있다. 미래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술적 팽창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트 러셀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선 ‘지혜’의 획득과 축적이 절실함을 그렇게 표현했다. ‘지혜’란, ‘지식’에 의지와 감정이 결합된 것이며, ‘지혜’의 성장이 수반되지 않은 ‘지식’의 성장은 위험하다고 경고한 것이다.

IT강국 한국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디지털 친밀도’이다. 내구성있는 지혜보다는 인스턴트 정보와 단명한 지식으로 넘쳐난다. 젊은이들의 영토에선 특히 그렇다. 저마다 커피잔을 앞에 놓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을 들여다본다. 지하철도 마찬가지다. 이젠 책이나 종이신문을 펴든 사람은 보기 힘들다. 대학 강의실이나 가족 식탁도 그렇고, 심지어 맞선 보는 자리에서도 남녀가 제각각 카톡과 문자를 확인하느라 분주할 정도다.

인터넷으로도 모자라, 이젠 웹3.0 시대다. 인류문화사 원형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분명 예상치 못한 변종이다. 인터넷 문화를 배우려다 말고 떠난 고전적 인문주의자 신영복은 <더불어 숲>에서 이렇게 성찰했다.

“문화산업이란 말이 있지만, 문화의 본질은 공산품이 아니라 농작물이다. 근대 이후의 산업화 과정은 한마디로 탈신화(脫神化)와 물신화(物神化)의 과정이다. 인간의 내부에 있는 ‘자연’을 파괴하는 동시에, 외부의 자연마저 허물고 그 자리에 ‘과자로 된 산’을 쌓아올리는 과정이었다. 앞으로 예상되는 영상문화와 가상문화(cyber-culture)에 이르게 되면, 문화가 과연 무엇이며, 이러한 문화가 앞으로 우리의 삶과 사람에게 무엇이 될 것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실제 필자의 주변 인물 중에선 완강하게 스마트폰을 거부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러면서도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스마트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디지털 폰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신경쇠약 증상을 보인다. 삶의 속도가 너무나 빨라졌기 때문이다. 인간의 신체는 수백만 년에 걸쳐 ‘걷는 속도’에 맞추어 진화되어 왔다. 그런데 20세기 이후 온갖 문명 이기의 발달로 소화해야 할 정보의 양이 100배나 늘어났다. 21세기 들어선 수만 배로 급증했다. 온갖 가상기술과 AI자동화, 합성생물학 따위가 인간의 삶을 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인류는 너나 할 것 없이 사이버 정보전쟁에 징집되었다. 대부분이 지혜 아닌 지식을 소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기존의 법과 도덕체계도 이젠 그 동기부터 달라지고 있다. 애초 상시 대면하는 사회를 전제로 구축되었던 법과 제도가 가상공간의 질서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상의 세계에서 벌인 행위에 대해선 윤리적 구속감을 덜 느낀다. 사이버 세계와 웹 세상이 보편화되면서 새로운 유형의 사이버 범죄가 양산되었고, 기존 오프라인 체계의 보루인 법(法)도 그 원리와 법리를 새롭게 검토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처럼 디지털 시대는 스마트하고 스피디하다못해 초조하고 조급한 삶의 연속이다. 그 바람에 인간은 늘 숨가쁘게 디지털화의 수레바퀴에 허덕이고 있다. 기계와 기술에 의해 소외되고 타자화된 객체로 추락한 모양새다. 그러면 과연 인간이 기술문명의 주체가 되고, 존재적 삶을 회복할 순 없을까?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선은 의식적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는 훈련을 해보자. 우리의 머릿속에 ‘권태’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으면, 삶이 급박하다못해 각박해진다. 내면의 풍요를 위해선 ‘사색’과 ‘산책’이 중요하다고 하면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그야말로 절실한 삶의 비결이다.

수시로 우리의 뇌가 휴식하도록 하자! 이따금씩 ‘멍때리기’도 해보자! 그래서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꿈>과 같은 고전도 이 시대에 꼭 권하고 싶다. 근래 들어 새삼 고전과 인문학이 재평가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느림의 미학’에 대한 재발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 나름대로 삶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야말로 자신에겐 주어진 최상의 천부적인 직업일 것이다. 밤하늘 은하계를 밝히는 크고 작은 무수한 별들 중에 자신만의 별을 찾는 노력도 아끼지 말라. 그러면 행복이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달리는 수레 위에서는 공자(孔子)도 없다.”

한비자의 명언이다. 삶이 황망할수록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디지털 기술 만능의 우리 일상에서 산책과 사색과 쉼표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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