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인간은 가진 것에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순간, 혹은 바라던 것을 얻는 순간 이미 색다른 무언가를 다시 욕망한다. 그 새로운 대상이 더 갖기 힘들고 더 멀리 있을수록, 그걸 갖고 싶은 욕심도 커진다. 흔히 말하는 ‘남의 집 잔디 신드롬’이다. 남의 집 잔디가 더 푸르러보이고,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컫는 심리학적 현상이다. 그러나 그 새로운 대상에, 그 잔디에 정작 가까워지면 실제로는 별로 푸르지도 않고 더 크지도 않음을 알게 된다.

이런 현상은 일상 속에서 드물지 않다. 나보다 나은 것을 가진 듯한 사람만이 계속해서 눈에 띄기 십상이다. 다른 사람의 직업은 더 흥미롭게 보이고, 그들의 삶은 더 행복해 보인다. 만족스러운 가정을 꾸리면서도 마음은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을 그려보곤 한다. 곧잘 어느 낯선 문화권으로 훌쩍 떠나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는 것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하리라 생각되는 남의 가정,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 같은 낯선 문화권의 사람들, 더 흥미로워 보이는 직장과 더 나은 삶의 모습들은 그 실체에 가까워지는 순간 환상은 깨지고 만다. 그렇게 실망하는 경험을 여러 번 하고서도 우리의 욕망은 식지 않는다. 다시 또 저 멀리 뭔가 보일 것 같아 늘 두리번거리곤 한다.

최근의 가상기술은 그런 ‘욕망’을 환상 아닌 현실로 만들고 있다. 공상을 현실로 만드는 복합현실(XR) 기술은 다가올 경험을 미리 경험하게 한다. VR 시뮬레이션을 통해 무한 대리만족을 만끽하게 한다. 마침내는 항공, 게임, 성형, 군사 등등 각종 분야를 망라하며, 문명의 도구로 변신하며,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허상을 좇는 공상과 상상력이 미래를 준비하는 강력한 도구가 된 것이다.

이뤄지지 않은 욕망은 이제 현실과 구분이 되지 않는 차원에서 충족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 남자가 사별한 아내를 XR 영상에서 생전의 생생한 모습으로 만나는 장면도 있었다. 아내의 평소 말투와 표정, 목소리는 남편을 흐느끼게 했다. 성격마저 생전의 모습과 흡사한 아내 앞에서 마침내 통곡하는 남편은, 보는 이들까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들었다. XR과 메타버스는 이뤄지지 못했던 것들, 또 이뤄졌으면 하는 것들을 그렇게 현실 아닌 현실로 재현하고 있다.

그런 가상기술은 결핍에 대한 인간의 무한한 갈증을 채워줄 새로운 도구가 되고,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대로 가면 아마도 허상과 실상의 경계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부나 성공을 이룬 ‘장밋빛 인생’의 모습을 재현하거나, 잃어버린 젊음을 다시 소환하며, 지금의 ‘나’와는 다른 새로운 ‘나’가 태어나고, 죽은 조상이 다시 환생한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지만 허상은 허상일뿐이다. 결코 현실이 될 수 없고, 실체적인 만족을 주지도 않는다. 허상을 좇는 욕망은 마치 마약과도 같아서 그럴수록 더 많은 허상을 좇게 될 뿐이다. 정작 충실해야 할 것은 ‘현실’이다. 나의 육질적 삶과 맞부딪히는 눈 앞의 생생한 현실 말이다. 그런 현실과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진지하게 응시할 때 오히려 평온과 삶의 동기와 힘을 가져다줄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나를 만나는 길>에서 주인공인 틱낫한 스님은 “마음 챙김 수행은 ‘지금 여기’에 도착하는 것입니다”라고 세상을 일깨웠다. 그 분은 “삶과 그 경이로움은 오직 현재의 순간에만 우리 곁에 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오직 현재의 순간만 있습니다”라고 했다. 눈앞에 닥친 시간과 공간에 충실하며, 지금의 삶을 더 깊이 궁리하며 살라는 말씀으로 들렸다. 현실을 복제하는 가상기술이 판치는 세상일수록 녹록잖은 현실의 ‘원본’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마음의 평온함은 ‘지금 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삶을 낭비하지 않게 되죠”라고. 그 말씀대로 평온하고 낭비하지 않는 삶은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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