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인문학 산책] 스마트폰과 '포노 사피엔스'
[디지털인문학 산책] 스마트폰과 '포노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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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2015년 3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커버스토리 ‘스마트폰의 행성(planet of the phones)’을 통해 ‘포노 사피엔스’의 시대를 선언하였다. ‘스마트폰 없이는 살 수 없는 새로운 인류 문명의 시대’가 왔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고, 정보 전달이 빨라져 정보 격차가 점점 해소되는 등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스마트폰 없이 생활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사람'. <이코노미스트>가 내린 ‘포노 사피엔스’의 정의는 그러하였다. ‘지혜로운 인간’이라는 의미의 호모 사피엔스에 빗대어, 포노 사피엔스, 즉 ‘폰을 쓰는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폰을 쓴다’기보단, 폰에 매여있음에 주목하였다고 할까. 약간은 비판과 냉소의 시선도 담겨있었다. 아무튼 2007년 아이폰이 탄생한 후 불과 8년만의 일이다.

사람들은 이제 TV보다 유튜브를 많이 보고,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마켓에서 더 많은 물건을 사며,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세계 어느 곳으로도 떠날 수 있다. 그저 단순한 ‘재미’나 흥미거리가 비즈니스가 되는 유희적 소비로 ‘부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물건을 사러 마트나 백화점을 가지 않는다. 종이신문을 보지 않으며, 돈을 입금하기 위해 은행에도 가지 않는다. 대형 백화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은 미국의 경우나, 우리나라에 진출한 씨티은행이 무려 90개의 지점을 패쇄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20세기 이래 지속되어왔던, 너무나 당연한 일상의 모습들이 왜 이렇게 달라진 걸까? 바로 스마트폰을 손에 쥔 신인류, 포노 사피엔스가 등장하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포노 사피엔스’ 문명의 전성기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폰에 의해 움직이고, 폰 스스로가 문명의 표준이 되어 비즈니스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받아들인 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해 전 세계 비즈니스 시장을 집어삼키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쇠락을 거듭하며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 심지어는 ‘포노’ 문명에 얼마나 잘 접속하느냐에 따라 4차산업혁명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결정될 정도가 되었다. 물론 불안과 위기감도 크다. 폰을 멀리하고 포노 사피엔스를 거부하며, 아날로그 혹은 디지로그의 성찰을 고수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디지털 시대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존재적 삶을 고집한다. 보기에 따라선 시대에 맞선 ‘현자’(賢者)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폰 문명에 올라타기를 거부하든, 아니면 포노 사피엔스의 과잉 접속을 즐기든 간에 세상은 어지럽게 빨리 바뀌고 있다. 중요한건 이토록 빠르게 일어나는 변화가 모두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이다. 이미 전 세계 36억 명의 인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2018년부터 ‘1인 1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어떤 교육기관도, 언론도 스마트폰 시대를 장려한 적도 계몽한 적도 없다. 세상 사람들 스스로가 ‘포노’의 매뉴얼을 배우고 익힌 것이다. 이런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변화를 달리 말하면 ‘진화’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급격한 변화를 겪을 때마다 우리는 늘 같은 경험을 해왔다. 변화 혹은 진화가 있으면, 그 맞은 편엔 반동의 저항이 있었다. 지난 산업혁명의 고비마다 기존 산업들은 늘 엄청나게 반발하곤 하였다. 일자리가 없어지고 생존의 기로에 설 때는 영국 ‘러다이트 운동’처럼 기계를 부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인류의 선택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마찬가지로 ‘포노 사피엔스’의 삶과 그 문명 생태계는 선택이 아닌, 필연이 되어버렸다.

이제 폰은 우리의 삶과 실시간으로 통화하며, 데이터와 온갖 텍스트를 실어나르며 주입시키고 있다. 싫든 좋든 포노 사피엔스라는 신인류의 도도한 부상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럴수록 전제 조건이 있다. 신인류가 만들어가고 있는 디지털 소비 문명의 실체를 바로 아는 것이다. 또 포노 사피엔스의 목적지가 어디인가를 알려고 노력하며, 어떤 길로 갈 것인지를 늘 성찰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는 기술의 미래를 두고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라고 하였다. 그의 메시지는 명료하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을 바탕으로 한 변화에 동승하라는 이야기다. 호모 사피엔스 곧 ‘지혜로운 인간’다운 성찰을 요구한 것이다. 그렇다면 포노 사피엔스의 정의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다. ‘폰을 쓰는 지혜로운 인간’이라기보단, ‘지혜롭게 폰을 쓰는 인간’으로 번역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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