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TV를 켜면 수 많은 채널 앞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여행과 음식, 오락, 취미, 생활정보, 드라마, 영화 등등 수많은 볼거리와 정보가 난무하는 현실이 이젠 혼란스럽고 멀미가 날 지경이다. 광고주들은 온갖 감언이설과 화려한 수사로 된 메시지로 클릭을 유도하고, 지갑을 열게한다. 소셜미디어와 채팅 앱과 챗봇 등이 난무하면서,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고독함을 즐기려 해도, 디지털 세상의 온갖 문명의 이기들이 나를 포위하고, 접속의 굴레에서 놓아주질 않는다. 참으로 과잉접속과 과잉 선택지에 갇힌 부자유한 시대이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욕망의 선택지를 나열하는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이다. 스마트폰이 우리의 일상을 점령하면서 나만의 판단과 분별로 세상을 사는 것도 쉽지 않게 되었다. 흔히 말하듯 ‘포노 사피엔스’의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스마트폰은 이제 사이비 교주 그 이상이다. 지하철이나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 보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해보일 정도다. 간혹 책을 들여다 보거나 가만히 사색하고 가는 사람은 되레 튀어보이거나, ‘관종’ 취급을 받기까지 한다. 어쩌면 기술과 문명의 진보 앞에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으나,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다.

단, 하루 만이라도, 하루에 단 몇 시간이라도 잠시 스마트폰을 멀리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 역시 쉽지 않다. 잠시 스마트폰을 꺼두거나, 전화를 안 받기 위해선 대단한 인내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을 제쳐두면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듯 허전하고,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다. 스마트폰이 무한대로 제공하는 선택지에 이미 중독이 된 ‘포노 사피엔스’로서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수많은 선택지들의 포화 속에 살고 있다. 선택지가 많다는 것은 언뜻 생각하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수고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면, 삶의 에너지가 쉽사리 소진될 수도 있다.

실제로 일이 너무 복잡해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있다. 무수한 디테일과 큰 맥락을 모두 파악해야 하지만, 정보의 홍수에 잠기다보면, ‘나무보다 숲’을 보기가 힘들어진다. 세상 살면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하고, 어떤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을 대표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16세기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2세이다. 펠리페 2세는 당시 라이벌인 영국 해군의 상황이라든가,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영국민들의 지지도, 시시각각 변하는 영국의 계절이나 해안 경비 상황 등에 관한 보고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읽어야 했다. 그리곤 에스파냐가 이길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 출전에 앞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날씨에 관한 보고서에는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사소한 정보라고 여긴 것이다. 결국 폭풍우가 불어 함대가 파괴되면서, 전쟁에서 질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펠리페2세는 너무 많은 서류를 읽어내느라 잦은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렸다. 그 결과 평소 그의 사고 능력에 빨간 불이 켜졌고, 결국 그가 내린 결정들은 스페인 제국의 되돌릴 수 없는 몰락으로 연결된 것이다.

현 시대 역시 너무 많은 정보와 선택지들에 관심을 기울이느라, 마치 펠리페 2세처럼 혼돈스럽고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다. 그 바람에 정작 긴 안목의 중요한 것들은 보지 못하고 있다. 그저 디지털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다들 IT기기가 쏟아붓는 정보를 주워담느라 정신이 없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소셜미디어에 몰입하거나, 유트브 채널을 통해 자기만족을 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도가 지나치다보니, 오히려 왜곡된 정보에 오염되거나 무지해지고, 소셜미디어에서 잠시라도 눈을 떼는 순간, 몰려오는 지독한 고독감과 외로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살면서 이제 한 번쯤 돌아볼만하다. 그 많은 정보들을 내가 다 알아야 할까 하고…. 음식도 몸에 좋고 영양가 있는 것만 골라 먹어야 한다. 그렇듯이, 마구잡이로 쏟아져나오는 정보들을 무조건 흡수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선택과 분별은 자기 몫이다. 그 많은 선택지를 걸러내고, 과감히 외면하고 쳐낼 수 있는 용기와 분별력을 스스로 기를 수 밖에는 없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다시 주체적 인간으로서 ‘기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바로 디지털 시대를 주체적으로 살기 위한 나만의 ‘선택’이다. 온갖 선택지를 과감히 도려내는 현명한 선택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나만의 분별력과 판단력이다. 즉 정보의 주인이 되고 취사선택할 줄 아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태도로 무장할 때 오히려 풍요로운 디지털 유토피아(digital utopia)를 향유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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