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에세이 3] 신경호 日고쿠시칸대 교수- '시대의 거인 김희수를 만나다' ①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공수래공수거’의 삶 실천한 김희수

철새 한 마리가 날개를 펴고 하늘을 향해 힘차게 비상을 한다. 현해탄을 건너야 하는 여정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조국을 향한 그리움에 용기를 냈다. 뼛속은 모조리 비웠다. 몸집이 가벼워야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현해탄 첫 비행에 나선 지 50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조국으로 돌아와 둥지를 틀었다. 배움과 가난, 망국의 한(恨)을 극복하기 위해 도쿄에서 피똥을 싸며 돈을 벌어 모국에 투자했다. 그의 나이 60대 중반을 넘기고 있었을 때다. 하지만 조국은 그에게 모진 고통을 안겼다. 그로 인해 한쪽 날개가 꺾였으나 다행히 다시 날 수가 있었다. 죽는 날까지 한 톨의 재산도 남기지 않고 수림문화재단에 모조리 기부한 뒤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한 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 그의 한 쪽 날개가 돼준 사람은 한때 중앙대 후계자였던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國士館大) 교수다. 신 교수가 바로 김희수의 한쪽 날개가 되어 다시 현해탄을 넘나들고 있다. 2012년 영면에 들어간 김 이사장은 한 평도 되지 않는 도쿄 외곽의 도립 하치오우지 영원(八王子靈園)으로 돌아갔다. 그야말로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삶을 실천한 시대의 스승이었다. 신 교수는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유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김희수 이사장을 만나 30여 년간 동고동락 했다.

하늘을 나는 철새는 두 날개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창공을 가를 수 있는 법. 김희수 이사장과 신경호 교수는 각각 철새의 한쪽 날개가 되어 자그마치 28년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이자 교육자였다. 김 이사장의 고향은 경남 마산, 신 교수의 고향은 전남 고흥이다. 얼핏 물과 기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행적을 꼼꼼히 살펴보면 한결같이 인간애와 민족애가 뼛속까지 차 있다. 둘은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지평선 너머에서 해가 뜨고 지는 모습을 보면서 무한한 상상과 꿈을 키우며 자랐다. 도쿄에서 운명처럼 만난 이들은 영남과 호남이라는 두 날개로 현해탄을 수없이 넘나들었던 실과 바늘이었다.

신 교수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거센 파고가 계속될 무렵 평소 의협심이 강했던 동생의 신변을 우려한 형님의 강권에 의해 일본으로 불려들어갔다. 이때가 1983년이다. 당초 그의 꿈은 저널리스트였다. 하지만 일본으로 건너간 뒤 진로를 바꿨다. 그는 니혼(日本)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국제관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아 한국인으로서 보기 드물게 고쿠시칸대(國士館) 21세기 학부에서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난 2002년 고쿠시칸대에 ‘한국어 강좌’를 개설하는 등 한글 세계화에 산파역할을 했다. 지금까지 2만명이 넘는 일본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웠다. 1983년 도쿄에서 신 교수는 재일유학생단체 활동을 하다가 김희수 이사장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당시 신 교수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눈에 띄어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김 이사장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김 이사장의 남다른 조국사랑과 유학생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이사장님은 다락방이나 다름없는 조그마한 사무실을 사용하고 계셨습니다. 재일유학생들에게 늘 망국의 한(恨)을 극복하기 위해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통 큰 후원을 해주셨어요. 특히 사람을 대하는 애정과 깊이가 남달랐습니다.”

신 교수의 회고다. 김희수 이사장의 꿈은 어린 시절부터 ‘사람을 남기는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을 몸서리치게 겪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부모님을 따라 열네 살에 도쿄로 넘어간 그는 그야말로 피와 땀으로 기업을 일구었다. 한때 자산이 30조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재일동포 기업가인 손정의나 신격호가 부럽지 않을 만큼 재벌의 반열에 오른 뒤 그는 조국에서 교육 사업에 대한 꿈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각종 인허가가 발목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986년 차선책으로 도쿄 고토구 오오지마에 학교 부지를 매입했다. 신 교수가 일본으로 건너간 지 3년 여쯤이었다. 이때부터 신 교수는 자신의 공부마저 뒷전으로 미루고 김 이사장의 손과 발이 돼 각종 허드렛일까지 도맡았다. 2년간 준비 끝에 1988년 1월 수림외어전문학교가 문을 열었다. 김희수의 수(秀)와 그의 아내인 이재림 여사의 림(林)을 따와 ‘수림’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학교법인 금정학원의 수림외어전문학교는 2년제 대학으로 한국어, 일어, 영어, 중국어를 가르치는 4개 학과를 개설하고 정원 320명을 뽑아 개교했다. 한 해 앞선 1987년 김 이사장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교육 사업을 하게 된다.

중앙대를 인수하다

때는 1987년. 한국의 대학가는 화염병에 휩싸였고 최루탄 가스로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당시 집권 여당은 정권연장을 위한 4.13호헌조치를 발표했고 국민적 저항이 하늘을 치솟고도 남았다. 그래서 전두환 정권은 국민을 어르며 버티다가 결국 6.29선언을 통해 국민 앞에 항복을 선언했다.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이정표가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와중에 60대 재일동포사업가인 김 이사장이 교육 사업을 하겠다고 뛰어들자 모두 제정신이냐고 되물었다.

당시 중앙대는 이미 재정악화로 인해 부도직전으로 몰리는 등 식물대학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중앙대 설립자 가족이 수차례에 걸쳐 도쿄까지 찾아와서 김 이사장에게 중앙대 인수를 읍소했다. 며칠 간 장고에 들어간 김 이사장은 1987년 9월12일 중앙대를 전격 인수한다. 고향을 떠난 지 5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인재양성에 열정을 보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가슴은 뛰고 벅찼다. 학원가의 시위쯤이야 잠시 스치는 바람이라 여겼다. 김 이사장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남긴 말이다.

“다음 세대에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인생의 하(下)이며, 사업을 물려주는 것은 중(中)이고, 사람을 남기는 것은 상(上)으로 최고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중앙대 부채는 713억원. 1년 예산이 200억원에 불과하던 시절이다. 그는 그간 모아둔 현금을 비롯해 일본의 땅과 빌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중앙대 빚을 모조리 갚았다. 또한 기숙사도 새로 짓고 도서관을 넓힌데 이어 학생회관 및 전산센터·예술대학을 증축하는 등 혼신의 힘을 다했다. 교수와 교직원들에게 월급을 올려주는 등 사기진작에도 힘을 썼다.

그러나 당초 기대와 달리 학내 시위는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았다. 어느 순간, 거대한 빌딩을 삼키고 남을 만큼의 토네이도급 강풍이 몰아쳤다. 눈만 뜨면 학생들은 “일본으로 돌아가 돈을 가져오라”고 아우성쳤다. 여기에 교직원들까지 가세했다. 전임 이사장 측근들도 “학교를 빼앗겼다”며 그를 궁지로 몰아세우는 등 검은 속내를 드러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 이사장은 전직 이사장측이 개입되리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런 학내 분위기는 해가 바뀌어도 변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골은 깊어갔다. 급기야 시위대는 총장실과 이사장실의 책상까지 빼버렸다. 이어서 시위대는 김 이사장을 일본 국세청에 고발하는 사태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김 이사장은 10여 년간 수천억원을 중앙대에 쏟아 부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