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 휴머니즘을 찾아서-
'삼남매를 글로벌인재로 키운 비결'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이 2013년 6월2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베트남 정부로부터 수교문화훈장을 수상하는 모습.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오른쪽)이 2013년 6월2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베트남 정부로부터 수교문화훈장을 수상하는 모습.

정영수 고문의 호(號)가 연당(延堂)이다. 이을 연(延)에 마당 당(堂)을 쓴다. 15~16년 전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친구가 지어준 호다. ‘꽃’이 그의 ‘운명’이나 다름없었듯이 ‘마당’이라는 의미도 색다르게 다가온다. 마당은 인연을 만들고 소통하는 공간이자 민초들의 애환이 묻어나는 곳. 뒤돌아보면 어린 시절, 정 고문은 동네에 잔치라도 열리면 주인은 여지없이 마당에다 멍석을 깔아놓고 식사를 대접하거나 윷놀이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자라지 않았던가.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정 고문은 선배든 후배든 가리지 않고 세상을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람들과의 ‘인연’이라고 강조하며 스스로 늘 고향집 마당과 멍석의 역할을 자처한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인간은 인간과 더불어 사는 법입니다. 누군가를 진심과 사랑과 겸손으로 대하면 인연이 만들어지고, 그 인연은 필연으로 승화되기 마련이지요.  <‘70찻잔’ 中/정영수 저>

2017년 출판기념회에서 정영수는 “지난 과거는 회상할 수 있어도 돌이킬 수는 없다고 한다”며 “돌이켜보면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 남은 여생동안 사랑하고 희생하면서 봉사하고 배려하면서 살겠다”고 자신을 낮췄다. 특히 차세대에 대한 그의 관심은 마침표가 없다. 그는 “장학금은 그냥 ‘돈’이 아니라, 누군가의 미래를 열어주는 ‘열쇠’이고, 누군가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마술”이라며 “차세대 장학사업에 여생을 바치겠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해 왔다. 그러던 터에 2012년 3개월 동안 발품을 팔아서 10여 명의 발기인들을 모아 ‘싱가포르 한국장학회’를 설립했다. 그 해 6월 25일 그는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장학회가 정식으로 허가가 나자 이런 소회를 남겼다.

일생의 꿈이 이루어졌다는 기쁨, 이제 어려운 학생들을 내 손으로 도울 수 있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터질 듯이 기뻤습니다. 내가 누군가의 작은 바람막이라도 되어 줄 수 있다는 것, 비단 내 아이들의 아버지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버지 역할도 할 수 있다는 것. 그 사실이 내겐 너무도 큰 기쁨이자, 은혜요 감사였던 것입니다.   <‘밖으로 밖으로, 신나는 인생’ 中/정영수 저>

정 고문은 장학회를 설립하고 이듬해인 2013년 첫 장학생을 선발했다. 이 소식을 듣고 뜻밖의 인사가 장학회를 방문했다. 싱가포르에서 ‘토담골’이라는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자매가 싱가포르 달러 1만 달러를 기부하고 돌아간 것이다. 정 고문은 “이 돈은 자매가 타국에서 흘린 피와 땀의 결정체였다”며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는 조동화의 시 구절을 되새기면서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지금, 장학금의 지원 범위를 베트남과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로 넓히고 있다. ‘세상은 하나’라는 공동 선(善)의 구현이 목표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연말 글로벌한상드림장학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2016년 차세대 한민족 인재육성을 위해 재외동포 한상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한 사회공헌재단이다. 정 고문도 1억원을 기부하면서 현재까지 10억원 가량을 모금했다. 향후 100억원 모금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상리딩CEO포럼 의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 부부가 2020년 1월19일 가수 최백호 씨를 초청해 싱가포르 오차드호텔에서 개최한 미니콘서트 ‘음악과 시가 있는 밤’ 행사 이후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노년의 샘

어린 시절, 또래에 비해 유난히 호기심 많고 배움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던 정 고문은 늘 영어공부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다. 해외주재원 생활을 하면서부터 영어가 일상이었지만 영어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아 고민이 많았다. 미국의 대학에서 저명한 교수의 강의를 마음껏 듣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들이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터여서 배움의 갈증은 누그러들지 않았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사업이 안정궤도에 오르면서 그는 결단을 내렸다. 더이상 늦으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국의 UCLA대학 Extension Courses에 등록했다. 그의 나이 70세를 넘겼으나 호기심과 열정은 나이와 별개였다. 그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4과목을 하루에 한 과목씩 들으면서 어린 시절부터 꿈꾸었던 호기심이라는 양식을 가슴속에 하나둘 쌓아갔다. 60세가 넘어 보이는 나이 지긋한 동료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의 선진 교육열과 교육시스템을 간접 체험하는 소중한 기회로 만들었다. 그는 짧은 학창시절이지만 “내 일생의 꿈이 이뤄지는 기쁨과 환희로 하루하루가 가슴 벅차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고 회상했다. 특히 오랜만에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순수한 마음으로 강의를 들은 것 자체가 힐링이기도 했다는 설명이다. 자신의 유학경험에 대한 수기 <노년의 샘>을 월간문학(2017. 7월호)에 기고했는데 뜻밖에 수필가로 등단하는 선물까지 받았다. 그는 <노년의 샘>에서 “인생이란 배움이라는 숲길을 걷는 것과 같다”며 “배움은 사람과 동물을 구분 짓는 잣대이자, 사람을 가장 풍요롭고 고귀하게 만드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했다. 아니 삶 자체가 배움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작은 꽃 한 송이로부터도 생명의 고귀함과 신비로움을 배우며, 떨어지는 낙엽에서도 경이로운 조화와 자연의 대한 감사함을 배운다”며 “배움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용서여야 하며, 배움의 궁극은 참된 이타심으로 가슴에서 피어 올리는 ‘사랑의 꽃’이어야 한다”는 말로 아름다운 노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끝>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 주요 이력

▲한상리딩CEO포럼 의장 ▲글로벌한상드림장학재단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회원(수필가) ▲국민훈장 모란장(2009/한국정부) ▲베트남문화훈장(2013/베트남정부) ▲자랑스런한국인대상(2017/한국언론인연합회) ▲국제거래신용대상(2018/한국중재학회) ▲저서 산문집 <멋진촌놈>, <The hub of Asia>, <70찻잔>, <밖으로 밖으로, 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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