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 휴머니즘을 찾아서-
'삼남매를 글로벌인재로 키운 비결'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의 가족사진. 삼남매와 손자, 손녀가 함께한 화목한 모습이다.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의 가족사진. 삼남매와 손자, 손녀가 함께 한 화목한 모습이다.

대하소설 <혼불>작가로 유명한 최명희(1947~1998) 선생은 살아 생전 호암상 예술상 시상식에서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며 한 나라, 한 민족의 정체는 모국어에 담겨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세월이 가고 시대가 바뀌어도 풍화 마모되지 않는 모국어 몇 모금을 그 자리에 고이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우리 정신의 기둥 하나 세울 수 있다면…”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렇다. 정 고문 부부도 집에서 만큼은 우리글과 우리말 교육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이를 위해 정 고문 부부는 한국의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들여와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소화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방학 때는 한국으로 보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놀게 하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큰 아이(정세은)는 방학동안 한국에서 실컷 놀다가 싱가포르에 돌아와 학교성적이 떨어지면 눈물까지 흘리기도 했지만 정 고문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아이들을 한국으로 보냈다. 이때 아이들은 2~3개월씩 한국의 중등학교에서 청강생으로 한국어를 다듬었고 국제교육진흥원을 다니면서 언어의 깊이를 깨닫게 했다. 이것도 모자라 정 고문은 아이들과 함께 한글 성경책을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소통과 공감능력을 키우는데 주력하기도 했다.

다만 유치원이나 학교교육은 외국인 교육기관에 맡겼다. 모국어를 잘하지 못하면 외국어를 제 아무리 잘한다 해도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그의 소신이다. 정 고문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의 교육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화초를 기를 때에도 때에 맞춰 물도 주고, 햇볕도 쬐어주고, 잡초도 뽑아주고, 불필요한 가지도 쳐주어야 하고, 영양분도 공급해 줘야 합니다. 한낱 화초 하나를 기를 때도 이럴진대 자녀를 키우는 일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사람은 지능이 높고 감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주위 환경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요. 더군다나 커가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다양한 변화를 겪기 때문에 부모의 세심하고도 지극한 관심과 정성이 있어야만 아이들을 올바르고 훌륭하게 키울 수 있습니다.”

품격과 인격의 삼남매는 누구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교육은 아내의 몫이 적지 않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자녀교육은 국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 그의 아내는 20년 가까이 세 아이를 키우면서 “편하게 외출 한번 나갈 수가 없었다”며 “아이들을 등교시킨 뒤에도 두 시간은 꼭 집에서 대기를 했다”고 고백했다. 혹시 학교 준비물을 챙기지 못하고 등교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삼남매가 부모의 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이를 어겨 본 적이 없다는 강안나씨의 설명이다.

나는 교육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이라고 믿습니다. 집안에서 먼저 부모로부터 바른 훈육을 받아야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통해 바람직하고 성공적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더군다나 가정교육은 부모로부터 자식으로, 또 그 다음 세대로 유전되는 만큼, 가정교육이 한 번 잘못된다면 그 자식 세대는 물론, 손주들 세대까지도 큰 불행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밖으로 밖으로, 신나는 여행’ 中/정영수 저>

부부는 가정교육 뿐만 아니라 바른 인성을 위한 정서교육에도 적지 않은 투자를 했다. 예의범절과 인성교육은 물론 바둑과 서예를 가르치기도 했다. 큰딸은 피아노, 작은딸은 플루트, 아들은 바이올린을 배우게 했다. 토요일은 수영과 싱가포르 한글학교로, 일요일은 미술학원으로 보내는 등 전쟁터나 다름없이 분주했다. 이런 고된 과정을 거친 삼남매는 모두 세계적인 명문대를 졸업하고 글로벌 무대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영어·중국어·한국어는 물론, 불어와 스페인어까지 구사한다. 글로벌 시대 다양한 언어구사 능력은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하지만 이런 스펙만으로 전체를 평가하는 것이 조금은 세속적일 수 있다. 삼남매 모두가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은 물론, 언제 어디서나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매사에 감사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다는 주위의 평가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도 돋보인다고 했다.

맏딸 정세은씨는 싱가포르에서 초중고를 마친 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아리랑TV 앵커로 시작해 CNA에서 오전 프라임 시간대(06:00~09:30)의 방송을 진행하는 앵커로 11년간 근무하다가 현재 육아 중에 있다. CNA는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 등 20여 개국에 약 2억 명의 시청자를 가진 아시아 최대의 방송국이다. 워낙 방송진행을 매끄럽게 하다 보니 리센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가 “저 앵커가 누구냐”며 관심을 표시했을 정도다. 특히 그는 아시아 기자 최초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인터뷰한데 이어 뉴욕에서 1박2일 동행 취재하는 기회를 잡아 세계적인 스타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말레이시아·싱가포르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기업의 며느리가 됐지만 아직도 그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의 동대문시장이나 남대문시장에서 신발과 옷을 사 입을 정도로 검소하다. 명품 옷 하나쯤 사 입고 다녔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도 거절하고 “동대문 남대문시장의 옷이 편하다”는 말로 대신한다. 그의 남편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의 재벌급에 해당하는 기업에서 CEO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인 정지은씨는 미국 보스턴 인근에 있는 St.Mark(South-borough MA)스쿨을 졸업한 뒤 미국의 여러 유수한 대학에서 입학허가를 받았지만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을 선택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회사 TYCO와 엑센추어에서 근무하다 결혼한 뒤 잠시 육아에 전념하다가 현재는 한국의 대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남편은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현재 연세대병원에서 의사 및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정 고문은

“둘째 딸이 홍콩에서 태어나고 싱가포르와 미국에서 자란 만큼, 한국과 멀어질 것 같아 어렵게 아이를 설득해 한국행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의 아들 정종환 CJ그룹 미주본부 부사장과 며느리 이경후 CJ ENM 부사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의 아들 정종환 CJ그룹 미주본부 부사장과 며느리 이경후 CJ ENM 부사장

막내인 정종환 부사장은 미국의 고교과정인 밀턴 아카데미와 미국 최고의 명문사립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세계적으로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에서 Ernst&Young에 입사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세계 유수의 컨설팅 회사인 Ernst&Young은 정종환 부사장이 학창시절, 유학생 회장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한 점과 인턴 경험(KOSDAQ, HSBC Bank, Arthur Anderson)을 높게 평가했다고 한다. 이후 그는 City Bank로 옮겨 컬럼비아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중국 칭화대 MBA과정을 거쳐 현재 CJ그룹 미주본부 부사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의 아내 이경후씨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맏딸로 미국에서 공부할 때 대학동문으로 정종환 부사장을 만나 결혼했다. 정 고문의 자녀들은 이제 모두 40대로 성장했으며 특히 막내인 정종환 부사장의 경우, 미국의 한인사회에서 차세대 롤 모델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계속>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 고문' 주요 이력

▲한상리딩CEO포럼 의장 ▲글로벌한상드림장학재단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회원(수필가) ▲국민훈장 모란장(2009/한국정부) ▲베트남문화훈장(2013/베트남정부) ▲자랑스런한국인대상(2017/한국언론인연합회) ▲국제거래신용대상(2018/한국중재학회) ▲저서 산문집 <멋진촌놈>, <The hub of Asia>, <70찻잔>, <밖으로 밖으로, 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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