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 휴머니즘을 찾아서-
'어머니는 내 인생 최고의 디자이너'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패션디자이너 이광희 대표는 사단법인 희망의망고나무를 설립해 아프리카인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우리 돈으로 2만~3만원인 망고나무 묘목을 심으면 5~7년이면 수확이 가능하고 무려 100년 동안 열매를 맺는다. 
이광희 패션쇼의 한 장면  

톤즈의 자립을 돕다

이 대표의 나눔은 이미 3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그저 형식적이고 소모적인 자선활동 보다는 생산적이면서 선순환을 이룰 수 있는 방식의 나눔 운동을 전개해왔다. 1992년 힐튼호텔에서 개최한 무의탁 노인을 위한 기금마련 자선패션쇼가 대표적이다.

“당시 노인복지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주로 장애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등에 치우쳐 있었죠. 그래서 전국 최초로 ‘탁노소(託老所)’ 설립 기금마련을 위한 패션쇼를 열었던 것입니다. 당시 서울시에서도 탁노소 설립을 진행하려다가 중단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패션쇼를 열면서 탁노소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지요. 탁노소에 대한 개념도 모호한 상태에서 지금 전국적으로 수백여 개의 탁노소가 설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대표의 도네이션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40여 년 동안 수백여 건에 이른다. 장애치료센터 건립 기금 마련에서부터 정신지체아 재활시설 기금 마련 및 심장병 어린이 돕기 성금 마련 정기 콜렉션, 신장병 어린이 돕기·루프스 환자 돕기·북한 어린이 돕기 등 그의 자선활동은 방대하다. 2009년 남수단 톤즈에 망고나무 심기 운동을 전개하면서부터는 아프리카까지 자선활동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망고나무 묘목 기금 마련을 위한 나눔 바자회 ‘망고와 생선’을 시작으로 희망고빌리지 건립 및 통학버스 기금 마련 등 톤즈의 자립기반을 위한 사회공헌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내 삶의 뿌리는 어머니입니다. 내 인생을 살아가는 이정표이자 내 마음의 지주입니다.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생각할 때 대답의 기준이 되는 분, 그런 어머니는 내게 어머니 이상의 훨씬 더 높은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10년 넘게 매년 한두 차례 톤즈로 날아갔다. 희망고는 지금까지 망고나무를 4만 그루 넘게 심었다. 톤즈의 어른들에게 농사기술과 목공·조적·컴퓨터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기관 및 어린아이들을 위한 학교와 탁아소, 그리고 망고 묘목장, 우물, 화장실 등이 들어선 희망고빌리지는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원스톱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이미 희망고빌리지 내에 여성직업학교를 개교한데 이어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문을 열었다.

바늘로 바위를 뚫다

2014년 무릎 수술을 받아 톤즈로 갈 수가 없었던 이 대표는 어느 날 새벽녘에 특별한 꿈을 꿨다. 사진 속 한센인들이 ‘퍽퍽’ 자신에게 안기는 꿈이었다. ‘희망고’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남편마저 한센인 봉사는 말렸다. 어린 시절, 아버지 이준묵 목사는 해남에 많이 있던 한센인들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 의료 선교사들을 초빙해 왔는데, 관청이나 그 어디서도 치료 장소를 제공하지 않아 자신의 집을 임시 치료소로 사용했다. 그래서 이 대표 형제들은 어렸을 때부터 한센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그것이 지금의 한센인 봉사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한센인을 가슴에 안는 꿈을 꾼 이후 두려움이 씻은 듯 없어졌고 그래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목발을 짚고 톤즈로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600여명이 사는 한센인 마을에 도착해 예배당과 유치원, 교육 및 의료시설 등 한센인 복합센터 건물을 짓기 위한 밑그림을 그린 후 귀국했다. 현장 책임자가 여섯 차례나 바뀌는 등 적지 않은 곡절을 겪었다. 2019년 8월 한센인 복합센터를 완공하기까지 꼬박 5년이 걸렸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를 세운 건 톤즈 사람들이었습니다. 벽돌을 날라 쌓고 정성껏 페인트칠하는 그들을 보며 오히려 내가 힘을 얻었지요. ‘희망고빌리지’ 재봉학교 졸업생들은 옷을 만들어줬습니다. 완공에 앞서 찾은 한센인 마을에서 그들은 내게 ‘너를 보내주신 하나님은 거룩하고 위대하시다. 약속을 지켜줘 고맙다’고 인사를 했습니다.<‘역경의 열매’/국민일보>

”대표는 코로나로 인해 2년째 톤즈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발만 동동 구르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코로나가 하늘길과 바닷길을 막았지만 톤즈 사랑에 대한 그의 의지는 막을 수 없었다. 이 대표는 지난 5월 15일 부산에 보름 동안 머물면서 농사용 트랙터 2대, 시멘트 500포대, 컴퓨터 90대, 곡괭이·호미 각 500자루, 각종 씨앗 1만 봉지, 매트리스 500개를 비롯해 어린이들의 선물까지 컨테이너에 채워 보냈다. 일명 ‘희망고 농사프로젝트’다.

남수단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현지인들이 직접 농사를 지어 식량을 자급자족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앞으로 한센인 초등학교 건축도 준비하고 있다. ‘산을 만나면 길을 만들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의 정신이 묻어난다. 한 올 한 올 기워내는 정성과 땀이 모여 옷 하나가 만들어지듯이, 바늘 하나로 찢어지고 해진 톤즈를 기워내고 있는 이 대표. 그는 부모님이 해남에 ‘등대원’을 세워 인류애를 몸소 실천한 것처럼, 바늘로 바위를 뚫어 남수단판 등대원을 톤즈에 세우고 있다.  <끝>

 

'패션디자이너 이광희 부띠크 대표' 주요 이력

<학력 및 경력>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이화여대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 ▲헬싱키경제경영대학원 KEMBA 수료 ▲이화여대 비서학과 졸업 ▲희망의 망고나무 자선콘서트 ‘Journey To African Moon’ ▲희망의망고나무 심기 ‘패션과 디지털의 만남: 이광희 패션쇼’ ▲창립 20주년 컬렉션 ‘20 in 2000’ ▲대전엑스포 `93 문화행사 공식 초청 패션쇼 ’사랑의 한빛‘ ▲88서울올림픽 기념 패션쇼 ‘패션유토피아’

<수상>

▲‘올해의 이화인’ 수상(2004)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부문 ‘산업포장 대통령상’(2000) ▲삼우당 섬유진흥대상 ‘디자인개발부문’ 수상(2000) ▲산업통상자원부 신지식인상(1999) ▲이달의 중소기업인상(1999) ▲아시아패션진흥협회 제정 올해의 아시아 디자이너상(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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