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에세이 5] 패션디자이너 이광희 부띠크 대표 ②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돌보는 이 없는 저잣거리, 장터에 버려진 노인들은 언제나 사모님의 몫이었지요. 누더기를 걸친 할머니들을 뒷방에 모셔다가 손수 목욕시키고 새 옷 입혀 그분들의 딸 노릇까지 하셨지요.” <김수덕 사모 추모집 ‘새벽을 여는 꿈의 삶’ 中>

빈자(貧者)들의 어머니, 김수덕 여사

어느 날, 해남의 한 우체부가 손에 편지 한 통을 들고 당황을 하고 있었다. 편지의 수신자가 ‘하나님 전상서’였기 때문이다. 수신자의 주소가 없으니 난감할 수밖에 없었던 우체부는 고민 끝에 이준묵 목사 부부 댁으로 편지를 배달했다. 공부를 하고 싶은데 가난해서 중학교를 갈 수 없다는 딱한 사연이었다. 어머니는 발신자의 주소를 수소문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공부를 시키고 스위스에 유학까지 보냈다. 오영석 전 한신대 총장이 그 주인공이다.

오 전 총장은 “‘하나님, 공부 좀 하게 해주세요’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자 오 전 총장은 무작정 ‘너무나도 공부가 하고 싶습니다. 야간학교라도 다니고 싶습니다. 편지를 받으신 분이 저를 도와주신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쓴 뒤 편지 겉봉 수신자란에 ‘하나님 전상서’라고 써서 우체통에 넣었던 것이다.

“언젠가 새벽에 눈을 뜬 적이 있어요. 엄마, 어디 가는데 했더니 유치장엘 가신다는 거예요. 등대원 아이가 사고를 쳐 유치장에 잡혀 있었던 겁니다. 고아가 된 것도 억울하고 서러운 일인데… 유치장에 있으면 되겠느냐고 말씀하셨어요.”

이렇듯 등대원은 조용할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아이들은 거칠고 고집도 셌다. 철없이 떼를 쓰거나 해코지를 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학교 선생님에게 불려가기도 하고 경찰서 유치장을 드나들면서도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오히려 성탄절이나 기념이 되는 날, 선생님들의 선물까지 챙겼다. 등대원 아이들이 차별을 받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세심한 신경을 썼던 것이다. 간혹 등대원에서 도망을 나가 떠돌이 생활을 하다 돌아온 아이들에게도 “너 잘못이 아니다. 환경이 그렇게 만들었지. 그래, 네가 짠하다”고 다독이던 어머니다.

한번은 등대원에서 함께 살던 청년이 군에 입대했다가 탈영을 한 뒤 돌아왔다. 당시 탈영한 군인이 붙잡히면 고문을 당하는 것은 불문가지였다. 어머니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그 청년을 불러 “매를 맞으면 많이 아플 것”이라며 엉덩이 주위에 솜뭉치를 덧댄 바지로 갈아 입혀 부대로 복귀하게 했다. 종종 등대원 아이들이 불량배들의 꼬임에 넘어가 업소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부리나케 그들을 찾아가서 돈을 주고 데려오는 한편 지역 유지들이 등대원 출신의 소녀들을 가사도우미로 채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부탁마저 어머니는 정중히 사절했다. 하나님께서 부탁한 딸들을 함부로 내보내서는 안된다는 것이 어머니의 지론이었다. 이렇듯 무한한 사랑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늘 자신을 낮추었던 어머니는 길 잃은 한 마리 양(羊)을 수렁에서 건져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양은 시력이 약해 어디에 기름진 초장이 있고 시냇물이 흐르는지를 찾지 못해 목동이 필요하듯 어머니는 양을 치는 목동을 자처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아픔과 절망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이들을 양지로 끌어내 새로운 삶을 걷게 했다. 가난한 사람이든 부자든, 종교를 가졌든 그렇지 않든 가리지 않았다. 사소한 시비로 인해 교회를 떠난 사람을 찾아가 무릎을 꿇기도 했다. 어머니는 “도울 사람을 제때 돕지 않거나 찾아가지 않으면 자신의 몸이 아파버린다”고 할 정도였다. 어머니가 평생 회색옷을 입은 배경에 대해서도 오 전 총장은 “사모님께서 6·25 당시 젊은 여성들이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는 아픔을 함께 나누기 위해서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도 어머니는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냐 죽음이냐>,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홀로 생각하며 함께 걸으며> 등등… 이런 책들은 모두 이 대표의 서재에 보물처럼 꽂혀 어둠을 밝히고 있다.

밤의 목회자이신 어머니

어머니는 한밤중에 동네 골목을 자주 오가셨다. 산모의 집이나 병든 사람의 집, 또는 끼니를 굶는 가난한 집 대문 앞에 쌀이나 옷가지 등을 슬며시 놓고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어느 집 대문 앞에 봇짐을 놓고 돌아설 즈음 온 가족이 앓아누워 신음하는 소리를 들었다. 간호사 출신의 어머니는 이들을 재빨리 응급조치하고 정성껏 돌보느라 귀가시간을 놓쳤다. 대문을 나오는 순간, 때마침 순찰 중이던 경찰관에게 통행금지 위반으로 걸려 하룻밤을 경찰서에서 보냈다. 다음 날 경찰서장이 이같은 사실을 알고 담당 직원을 혼냈지만 어머니는 “이 사람은 자신의 일에 충실했을 뿐이다”며 “잘못은 내가 했다”고 용서를 구한 뒤 경찰서를 빠져 나왔다. 낮의 목회자는 이준묵 목사이고 밤의 목회자는 김수덕 여사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어머니는 예배를 드릴 때 항상 맨 뒤에 앉아 헐벗은 성도들의 기장(체격)을 머릿속에 넣었어요. 그리고 4~5시간 걸리는 광주까지 나가 직접 옷감을 구해 성도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혔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때는 모든 성도들이 어머니가 지어준 옷을 입고 예배를 드리는 진풍경이 일어난 적도 있어요.”

당시 어머니가 지어주었다는 털스웨터나 오버는 등대원 식구들이 아니면 구경조차 힘든 귀한 옷이었다. 어머니는 옷 한 벌 만들어 주는 것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쳤다.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감안했던 것이다. 사람이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폼이 나듯, 어머니는 늘 개개인의 사정을 고려해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등 어느 하나 빈틈이 없었다. 특히 어머니는 등대원 식구들에게 구호품이나 후원자들이 보내준 옷을 입히지 않았다. 간혹 명절 때나 기념이 될 만한 날에 들어오는 선물은 이웃들의 몫이었다. 하물며 당신의 먹던 약마저 이웃에게 주는 어머니가 아니던가. 이런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불평을 하자 “당신은 보는 것으로 이미 배부르지 않느냐”며 자녀들에게도 “사람이 못먹어서 탈나는 법은 없고,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난다. 그리고 우리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것이 좋기 때문” 이라고 했다. 당신의 자녀들이 보내는 용돈이 어머니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또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딸이 손수 지어준 옷마저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전달됐다. 이런 어머니의 선행이 알려져 정부가 훈장을 주었으나 이마저 탐탁지 않게 여겼다. ‘참(眞)’과 ‘봉사’ 그리고 ‘사랑’, 이 세 가지는 어머니가 필생 실천하고자 했던 자신의 사역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