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에세이 5] 패션디자이너 이광희 부띠크 대표 ①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한국의 그룬트비, 이준묵 목사

평생, 살아 숨쉬는 뭇 생명들을 품어내지 못한 괴로움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담금질하다가 생을 마감한 한 여인. 그는 평생 고아는 물론 거지, 나환자, 과부 등 가난한 자들에게 자신의 자리를 기꺼이 내주고 허리를 굽힌 외로운 방랑자였다. 하루 한 끼를 먹고살기 힘든 시절, 이 여인은 춥고 배고픈 사람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고 갈 곳 없는 영혼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주었다. 죽는 순간까지 물 한 방울 조차 남기지 않고, 이름도 빛도 없이 평생 써온 일기마저 불태우고 2003년 하늘로 돌아갔다. 故 함석헌 선생은 이 여인을 두고 “이 시대의 진정한 어머니이자 스승”이라고 칭송했다. 패션디자이너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이하 희망고) 대표의 어머니인 故 김수덕 여사의 이야기다.

그의 어머니는 전남 고흥군 도덕면의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태어나 순천 매산여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사 자격을 취득한 우리나라 간호사 1세대다. 그는 학비마련을 위해 손뜨개질로 장갑이며 옷들을 만들어 직접 팔러 다녔고, 거기에서 남는 돈으로 고학생 여럿을 돕기도 했다.

어머니는 미국 선교사가 설립한 순천 알렉산더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아버지인 해암(海岩) 이준묵 목사를 만나 결혼했다. 영광군 홍농면 출신의 아버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광주YMCA에 들어가 농촌계몽운동과 함께 선교활동을 하다가 1932년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고베신학교를 졸업한 아버지는 귀국하자마자 결혼을 했지만 결혼 3일 만에 선교를 위해 홀로 중국 산동으로 떠났다. 산동에서 2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는 곧바로 해남읍교회에 파송되면서 땅끝마을과 멀고도 험한 인연을 맺게 된다.

여기서 아버지는 1948년 해남 YMCA를 창설하고 중졸 과정의 ‘해남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포기하는 이들에게 배움의 불씨를 지폈다. 또한 1953년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해 ‘해남등대원’을 설립한데 이어 농민들에게 기술을 가르치는 ‘삼애학교’를 세우는 등 그야말로 종교인이면서 농촌계몽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한국의 ‘그룬트비’로 불리기도 했다. 그룬트비는 역사가이자 신학자이며 정치가로 척박한 덴마크를 세계의 중심국가로 일으켜 세운 덴마크 중흥(中興)의 아버지다.

‘해남등대원’은 고아원이지만 ‘고아원’이란 이름 대신 ‘세상을 밝히는 등대가 되라’는 의미로 ‘등대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고아’라는 단어 또한 쓰지 않았다. 어머니 또한 양로원인 ‘평화의 집’과 어린이집인 ‘천진원’을 세워 과부나 장애인들을 향한 복지사업에 나서는 한편 수년간 한센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주기도 했다. 이런 곳에 함석헌 선생을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들의 발길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김용준 고려대 명예교수가 쓴 ‘내가 본 함석헌’에는 “함 선생님은 평생 존경한 여성 두 명을 꼽았는데 한 명은 자신의 어머니였고, 다른 한 명은 김수덕 여사”라고 기록돼 있다. 함석헌 선생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자 사상가였다.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바친 인권운동가로 시대의 스승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런 인연으로 이광희 대표는 어린 시절, 함석헌 선생의 무릎 위에서 자주 놀곤 했다. 현재 등대원은 이광희 대표의 큰오빠인 이성용씨가 맡고 있다. 그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그만두고 49세에 해남으로 내려가 부모님이 남긴 유지를 받들고 있다.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다

어머니는 전국에서 몰려든 손님들을 위해 동트는 새벽에 일어나 음식을 장만하고, 솥단지에 목욕물을 데우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손님들이 떠날 때도 어머니는 떡이나 먹거리를 한 보자기 싸서 보내는 등 빈손으로 돌려보낸 적이 없었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접했던 어머니는 하루가 25시간이라고 해도 부족했다. 직접 시장에 가서 장을 봐 아이들 반찬을 마련하고 젖염소를 길러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였다. 병이 나거나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선 영양식을 준비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먹고 입을 것이 부족한 현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늘 자신을 자책했다. 상처 많은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주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작, 어머니가 참기 어려웠던 고통은 아이들에 대한 연민이었다. 제 아무리 사랑을 쏟고 배려해도 채울 수 없는 것이 바로 친부모 자리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존재 가치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어머니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속사정으로 어머니는 늘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고민들이 쌓여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기도 했지만 평생 신경쇠약을 앓아 진통제로 연명하면서도 “기도하는 것은 내가 호흡하는 것과 같다”며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빈자들에게는 더없이 너그럽고 후했던 어머니는 당신의 몸이 아픈 것도 하나님의 채찍으로 받아들였다. 평생 독신으로 신앙인이 되어 봉사의 삶을 살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했는데, 이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과 자책이었다. 어머니는등대원 식구들에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귀한 존재가 바로 너” 라며 “너는 고로 하나님의 뜻한 바에 의해 태어난 귀한 사람”이라고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어머니의 사랑의 대상은 가난한 자와 노약자들만이 아니었다. 60~70년 전 나환자들은 일반인에게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눈썹이 없고 피부가 헐어 살갗이 허물허물해진 나환자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조차 무서워 벌벌 떨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이런 나환자들의 손을 덜컥 잡고 집안으로 데려와 손과 발을 씻기고 차비까지 챙겨서 보냈다. 이렇다보니 집안은 나환자들의 발걸음으로 문턱이 닳아질 정도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