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의 시대, 휴머니즘을 찾아서-
'별이 된 나의 어머니'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1979년 2월 김낙진 동원 아이앤티㈜ 회장의 고려대 졸업식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사진. 맨 오른쪽은 김 회장의 부인 정영숙 여사.
1979년 2월 김낙진 동원 아이앤티㈜ 회장의 고려대 졸업식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사진. 맨 오른쪽은 김 회장의 부인 정영숙 여사.
김낙진 동원 아이앤티㈜ 회장
김낙진 동원 아이앤티㈜ 회장

잡초 밭에서 피어난 삼남매의 우애

어머니는 늘 아버지 없이 커가는 당신의 삼남매를 잡초 밭에 떨어진 씨앗들이라고 했다. 잡초 밭이든 자갈밭이든 가리지 않고 씨앗이 튼튼하게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토양을 잘 만들어주는 것이 당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억척같이 돈을 벌어야 했고 더군다나 아이들에게 밥을 굶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농사철을 피해 막내 아들인 김 회장은 외갓집에, 그의 형님(한용)과 누나(명희)는 아버지 친척들에게 맡기고 장성과 광주를 오가며 보따리 장사까지 해야 했다. 어느 때는 두 달 동안이나 당신의 자녀들을 보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어머니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보리밥에 쌀을 섞은 밥을 먹일 수 있었다. 당시 대다수의 동네사람들은 가을날 추수가 돌아오기 전까지 콩나물이나 시래기를 섞어 죽을 만들어 먹거나 꽁보리밥으로 연명했던 시절이다.

어느덧 형님이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어머니는 형님에게 공부를 가르쳐야 했지만 마음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형님을 불러 책가방을 풀게 했다. 사촌 간인 또래의 아이는 비교적 한글도 읽고 쓸 줄 알았지만 형님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이날부터 어머니는 형님을 새벽녘까지 붙들고 한글을 가르쳤다. 형님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어머니에게 반항을 하거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끝까지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랐다.

이후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한글을 깨우치게 된다. 그러자마자 김 회장의 누나가 형님을 따라 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써 결국 조기 입학했고 김 회장도 초등학교에 들어간다. 3남매가 동시에 초등학생이 된 것이다. 형님은 한글을 떼면서부터 유독 책읽기를 좋아했다. 동네에 신간 책이라도 한 권 들어오면 그것이 만화건 잡지건 소설이건 가리지 않았다. 나이가 세 살이나 많은 친구에게 책을 빌리기라도 하면 하룻밤 새에 다 읽고 돌려 줄 정도로 독서의 깊이가 남달랐다. 이런 독서의 힘으로 형님은 초등학교 6학년 때 군 교육청이 주관하는 글짓기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형님은 시력이 절망적일정도로 나빴다. 오죽했으면 선생님의 팔 동작을 보고 무슨 글씨를 쓰는지 짐작을 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등잔불에 얼굴을 가까이 대다가 수도 없이 머리카락을 태우기도 했다.

그가 시력이 나빠지게 된 것은 피난을 내려오면서 작열하는 태양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외선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거기에다 전쟁 통에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걸려 심한 고도근시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형님은 평생 시력 때문에 고통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 번도 화를 내거나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등교하는 동생들의 도시락을 챙겨주고 학교공부까지 꼼꼼하게 챙겨주었다. 종종 김 회장이 친구들과 놀다가 싸워 사고를 치고 와도 형님은 동생을 나무라기보다 위로를 하는 등 애어른이었다. 어느 덧 3남매가 커가면서 어머니의 고민도 늘어났다. 형님이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형편상 도회지로 보낼 수 없었다. 명고당에 얹혀 대학을 다니면서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던 친인척들이 어엿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이들의 도움마저 거절했다. 이들이 자신의 집으로 보내라는 제안도 했지만 어머니는 극구 사양했다. 평소에 어머니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소신이 강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더욱 이를 악물었고 홀로서기를 자처했다. 결국 형님은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어머니가 걸어왔던 것처럼 서당에서 추구와 사자소학 등을 배웠다.

그가 서당을 다니는 사이에 누나도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터라 어머니는 아예 광주에 방 한 칸을 얻어 남매를 동시에 중학교에 다니게 했다. 어린 남매는 아궁이에 연탄불을 피우지 않은 여름에는 인근의 목재소를 찾아가서 판자 부스러기와 톱밥을 얻어다가 풍로에 불을 지펴 밥을 지어야 하는 등 고된 자취생활이었지만 이들에게는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 하나로 가슴 벅차고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어느덧 남매가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접어들면서 상급학교 진학을 놓고 집안 식구들끼리 옥신각신했다.

“딸,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가지 않고 방직회사 들어가기로 엄마와 약속했지?”

어머니의 질문에 누나는 묵묵부답이었다. 어머니는 남매가 진학을 원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공부를 시키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누나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이렇게 말을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형님은 어머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 남자는 공부할 기회를 놓치더라도 언제든지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하다”며 “나는 어차피 시력이 좋지 않아 고교과정은 독학을 하려고 마음을 잡았으니 명희를 꼭 상급학교에 진학을 시켜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형님의 이런 태도에 꿈쩍 않고 있던 누나가 갑자기 “내가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벌어 오빠의 학비를 대겠다.”고 나서는 등 따뜻한 가족애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우여곡절 끝에 누나는 어렵사리 상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당시에 고산에서 여학생이 초등학교를 마치고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형님과 누나가 동시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경사가 터진 것이다. 형님은 총무처 시험에, 누나는 국방부 별정직 시험에 합격했다. 누나는 그렇다 손치더라도 형님은 당시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터라 가족 모두 적잖이 놀랐던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공무원시험을 준비한 속 깊은 집안의 기둥이었던 형님이다. 세월이 흘러 형님은 국민건강보험공단 경영전략본부장을 역임하고 은퇴했다.

“형님은 자신의 진로를 포기하고 누나를 먼저 상급학교에 진학시켜야 한다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자신은 희생하면서도 순종만 하는 형님에 대해 어머니는 늘 짠하게 여겼습니다. 형님이 월급쟁이하고 있다 보니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는 저와 누나를 불러 ‘형님과 오빠의 호주머니에 용돈이 궁하지 않도록 책임지고 챙겨주라고 당부까지 하셨습니다.”

이후 누나는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중단하고 출판사 등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현재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획득하고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그는 세상의 어머니이자 우리들의 어머니를 돌보면서 하늘의 별이 된 그의 어머니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남매간의 우애는 모두 어머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크면서 형제간에 사소한 일이라도 다투어 본 기억이 없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목소리 한번 높인 적이 없습니다.”  <계속>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주요 이력
▲광주일고,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삼진물산(주) 사우디 지사 근무 ▲한국건류환경(주) 설립 운영 ▲서울공대 최고산업과정 수료 ▲산업포장 수상(1989)

저작권자 © 중소기업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