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법 개정안 상임위 통과, 여야 혼돈
회장 연임제 재도입 및 현직 회장 소급 적용 '쟁점'
특혜·입법로비 vs 책임경영·경영 영속성 '찬반'
농민단체들도 의견 대립
농협銀 금융사고 끊이지않아, 내부 도덕적해이 심각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으로 소용돌이에 휩싸인 농협중앙회 전경. 
이성희 농협중앙회장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현직 회장에 대한 특혜와 ‘불법 로비’ 의혹에 휩싸인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를 통과, 법사위·본회의 상정을 앞둔 상황에서 끊임없는 잡음이 들리고 있다. 개정안이 일말 필요성이 있다 해도 반발 여론을 잠재우기 힘든 양상이다.

현직 회장에 연임을 적용시킨다는 무리수가 핵심 내용인 개정안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서 지난 11일 여야 간사들의 주도로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14년 만의 연임제 재도입에 따른 현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의 장기집권에 대한 우려와 함께 농협의 민주화 역사를 퇴행시키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곳곳에서 일고 있다. 현행대로라면 현 농협중앙회장직은 4년 단임제가 적용된다.

해당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심사와 본회의 의결을 거치면 바로 시행된다. 특히 내년 1월 농협중앙회장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개정 법률이 현 회장에게도 소급 적용된다는 점에서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농협법 개정, 혼돈 속 여야 

사실 농업협동조합법은 농협 관계자들이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는 법률 개정안에도 불구하고, 국회 상임위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어 이례적이라 할만하다.

국회의 속성상 대체로 법안에 대한 찬반은 여야로 구분돼 당론을 따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은 특이하다. ‘국민의힘’ 대다수는 찬성이나, 유독 안병길 의원은 날카로운 반론을 제기해 눈길을 끌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승남 의원(고흥·보성·장흥·강진, 농해수위 간사 및 법안소위 위원장)은 개정안의 공동 발의자로서 찬성론자다. 호남 출신 주철현(여수시갑), 서삼석(영암·무안·신안), 윤재갑(해남·완도·진도), 이원택(전북 김제·부안) 의원은 농협중앙회장 연임 도입에 찬성하며 해당 법안의 발의에 앞장섰다.

호남 출신 농해수위 소속 의원 7명 중에서는 신정훈(나주·화순), 윤준병 의원(전북 정읍·고창)만 반대론을 매섭게 펼쳤다.

재미있는 점은 찬성론 일색인 국민의힘에서 안병길(부산 서구·동구) 의원과 무소속 윤미향 의원 등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은 '농협중앙회장 셀프 연임법 5대 불가론'을 내놓으며 주목의 대상이 됐다. 5대 불가론으로 ▲현직 회장부터 연임제를 소급 적용시키는 것은 명백한 특혜 ▲농협회장 연임법은 농협 민주화의 역사를 퇴행시키는 일 ▲비리가 판을 치고 있는 농협에 필요한 것은 연임이 아니라 책임 ▲농협은 필요에 따라 회장의 권한과 책임을 자의적으로 해석 ▲농협이 회장 연임법을 위해 내세우고 있는 여론조사에는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꼽았다.

안 의원은 “현직 회장부터 연임제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명백한 특혜이며 이대로 연임법을 통과시킨다면 현역 회장만을 위한 특혜를 부여하게 되고, 입법부의 형평성과 공정성에도 큰 오점을 남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욱이 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소위 법안 통과에 반발하면서 정치권에 돌았던 농협중앙회측의 ‘입법 로비’ 의혹을 제기해 주목됐다.

무소속 의원+농업단체, 개정안 극렬 반대

지난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현직 특혜 논란과 불법로비 의혹으로 얼룩진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도입 반대 기자회견’에서 윤미향 무소속 의원은 법안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윤 의원은 “농협중앙회장 연임법안은 입법부의 소급금지 원칙을 무시하고 현직 회장부터 연임을 적용한 특례입법으로, 공정성과 형평성 측면에서 중대한 결함이 있는 법안”이라며 “무엇보다 국민적 공감대가 필수적이다”고 밝혔다.

손꼽히는 농민단체인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은 “역대 농협중앙회장 치고 구속 안되고 좋게 물러난 회장이 없을 정도로 비리가 만연해 단임제를 도입했는데, 그걸 다시 연임제로 바꿔 달란다. 연임제를 하고 싶다면 전체 농민조합원 투표로 중앙회장을 뽑으라. 조합장들이 모여 밀실에서 중앙회장을 뽑는 건 농민들을 대변하지도 않을뿐더러 인정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서필상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전 부위원장은 “얼마 전 농협대 총장을 했던 최상목 씨가 대통령실 경제수석으로 올라갔고, 대통령 인수위 특별고문을 했던 이석준씨가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임명됐다. 최원병 전 농협중앙회장 때도 MB와 이런 커넥션이 있었다”며 “농협이 자주적이지 못하고 정부에 휘둘리고 있다. 여기에 회장이 연임까지 한다면 농협은 정치적으로 더욱 휘말릴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한 법안을 밀어붙인 김승남 의원을 거론하며 “민주당이 반성해야 한다. 과연 이 법안 안에 ‘농민’이 단 한 글자라도 들어가 있나. 농협중앙회장의 기득권을 위한, 그 언저리에서 권력을 나누고 있는 그들을 위한 법안”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는 지난 30일 농협중앙회장 연임 등을 내용으로 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할 것을 국회에 요구했다. 6개 농업단체는 30일 성명을 통해 농협법 개정안에 대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조직 경쟁력 제고 등 긍정적인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내며 "농협법 개정이 신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국회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국회는 물론 농업 관련 단체들 사이에서도 찬반 양론이 거세다.

현직 회장 연임, 개정안 핵심 쟁점 

만일 현직 농협중앙회장부터 연임을 소급 적용하는 이번 농협법 개정안이 법사위·본회의를 통과하게 된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이성희 현 농협중앙회장이다.

농협중앙회 감사위원장 출신의 이 회장은 지난 2020년 1월 31일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회장에 당선됐다. 지난 3년여 재임 기간 동안 여러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있지만, 농협법 개정안이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좋지 않은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2009년 이전만 해도 농협중앙회장은 연임이 가능했다. 현직 회장 ‘메리트(merit)’로 연임은 당연시 됐던 시기였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연임한 농협중앙회장 4명 중 3명이 배임과 횡령, 뇌물 등의 비리로 유죄 판결을 받는 ‘흑역사’를 남겼다.

실제로 첫 민선이었던 한호선 회장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속됐을 뿐 아니라, 다음 회장이었던 원철희 씨도 같은 혐의로 쇠고랑을 찼다. 이후 정대근 회장 역시 뇌물수수 혐의로 임기 중 구속됐다. 최원병 회장은 사전 선거운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잇단 사법처리로 농협중앙회의 자의적인 권력, 그야말로 ‘제왕적 권력'은 철퇴를 맞았다. 2009년 정부 주도로 농협중앙회장의 임기를 단임제로 변경하게 된 것. 그러나 지난 11일 관련 법안이 상임위 전체회의를 통과하면서 14년 만에 연임제 회귀 가능성이 확실시됐다.

국회 내에서는 농협중앙회장의 연임 규정에 대해 찬반 논란이 거셌지만 다수의 농협조합원을 포함한 농민단체에서는 연임에 반대한다는 게 대세적이다. 연임제가 도입될 경우 수백조 원 자산과 수십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농협중앙회장의 권력은 무한 수준으로 비대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백년하청(百年河淸)’ 농협

어쨌든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NH농협은행의 금융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내부통제가 있기는 하냐’는 비판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금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데도 조직 내부 도덕적 해이는 일상화됐다는 게 안팎의 평가라, 금융당국도 손을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NH농협은행의 금융사고 빈발과 규모는 익히 알려졌다. 지난달 12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6개 주요 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2년 1분기까지 NH농협은행의 윤리강령 위반 사례 건수는 73건으로 6개 은행 중 2위에 올랐다. 횡령 등 사고는 밝혀진 것만 21건이다.

앞서 지난해 윤 의원이 내놓은 ‘2016~2021년 업권별, 유형별 금전사고 현황’ 자료에서도 NH농협은행의 금전사고는 27건이 적발됐고, 사고금액 규모는 은행 중 가장 높은 742억원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와 관련된 NH농협은행 직원들은 은행 전산망을 조작해 112차례에 걸쳐 신용카드 결제금액을 처리, 공금 횡령이나 차명 대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들의 돈을 빼냈다. 최근에도 이와 같은 사고는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NH농협은행의 잇따른 금융사고는 ‘솜방망이 처벌’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형사 처벌이 당연한 사고에도 내부에서 ‘선처’만 내렸다는 것이다. 일례로 은행 전산망을 조작해 3억원이 넘는 고객의 신용카드 결제금액을 빼돌린 직원 9명에게 과태료(180~2500만원) 처분만 내려졌을 뿐 이후 정상 근무를 한 것으로 알려져 금융권에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등의 주장에 따르면 ▲폐쇄적인 인사‧지배구조 ▲금융사고 발생 시 권고사직 등 ‘꼬리 자르기’ ▲부실공시에 대한 부실감사 ▲횡령사고 축소‧은폐 등 전반적인 조직의 분위기가 NH농협은행의 금융사고 재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이제는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일반 시중은행 금융사고에 대해서는 신경을 곤두세우는 반면 NH농협은행에 대해서는 무던한 편이라 지속적인 금융사고가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농협법 개정안이 이른바 ‘셀프연임’ 개정이라는 비난과 함께 금융사고·성인지 부족으로 비롯되는 성범죄 등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농협의 속절없는 사건·사고에 대해 농협중앙회는 가능한 한 말을 아끼고 있다.

농협 관계자는 “현재 계류 중인 개정안에 대해 사실상 드릴 말이 없다”면서 “수협이나 축협도 회장의 연임이 가능한 상황에서 경영의 지속성, 농협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움직임”이라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그는 또 “그렇지 않아도 내부통제 강화는 이성희 회장의 공약 중 하나”라면서 “점차 구조적으로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장치를 정교화하는 한편 금융당국과 협의 지속적인 실천 방안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이번 개정안은 내년 1월 농협중앙회장 선거와 4.10 총선을 앞두고 이르면 오는 6월 12일 국회에서 법사위·본회의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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