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AI, 공장 운영체계 바꾸는 차세대 제조 지능으로 부상
인력난·품질경쟁 심화 속 기존 제조 방식 한계 분명해져
데이터·인력·비용, 중소 제조업 AI 도입의 최대 걸림돌

피지컬AI를 시사하는 이미지. [출처=언스플래쉬]
피지컬AI를 시사하는 이미지. [출처=언스플래쉬]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AI 기술이 분석 중심을 넘어 현실 공간에서 직접 판단하고 작동하는 단계로 진화하면서, 한국 제조업이 ‘피지컬 AI(Physical AI)’라는 새로운 경쟁 국면에 들어섰다. 글로벌 제조 강국들이 자율 생산체제를 확장하는 가운데 한국 제조업은 인력 공백과 생산성 정체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어, 피지컬AI 도입 속도가 향후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최근 한국무역협회와 한국정보산업연합회가 공동 개최한 ‘2026 AX 이니셔티브 컨퍼런스’에서는 이 새로운 기술 전환의 필요성과 중소 제조업이 직면한 현실적 과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행사에는 450여 명의 기업·기관 관계자가 참석해, 제조업의 다음 10년을 결정할 기술·정책 방향을 공유했다.

피지컬AI, 분석 단계를 넘어 ‘현장을 스스로 제어하는 지능’으로 진화

전문가들은 피지컬AI를 기존 스마트팩토리의 확장판이나 단순 자동화의 심화 단계가 아니라, AI가 공장의 물리적 현실을 직접 인식해 행동하는 ‘지능형 제조 운영체계’로 정의하고 있다.

KAIST 장영재 교수는 “한국 제조는 오랜 기간 숙련공의 경험에 의존해왔지만, 미래 경쟁력은 공장이 스스로 데이터를 해석하고 최적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지능형 운영체계’ 구축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술은 센서와 로봇, 시뮬레이션, AI 알고리즘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묶어 공정 전반을 실시간으로 최적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려대 이영환 센터장은 피지컬AI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려면 AI·로봇·디지털트윈의 통합 생태계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데이터 표준화와 검증체계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단일 공정을 자동화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는 공장 전체가 연결된 ‘소프트웨어형 제조 운영’으로 재편된다는 의미다.

한국 제조업에 시급한 이유... 인력·비용·품질 압박 속에 기존 방식 한계 뚜렷

한국 제조업의 피지컬AI 도입 필요성은 현장의 구조적 어려움과 맞물려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첫째, 숙련 인력의 고령화와 인력난이 심화되면서 ‘경험 기반 운영’이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생산 공정의 복잡성은 계속 높아지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데이터 기반 시스템은 여전히 부족하다.

둘째,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비용 압박이 가속되면서 공정 속도와 품질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 제조국들은 이미 자율 공장 단계로 이동하고 있어, 한국이 같은 속도로 기술을 흡수하지 못할 경우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LG CNS 주민식 소장은 실제 제조 현장에서 피지컬AI가 로봇 제어, 예지보전, 공정 최적화에 활용되고 있다며, AI 도입이 이제 생산성 개선뿐 아니라 품질 안정성과 비용 절감을 동시에 달성하는 ‘산업 표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한 AX 이니셔티브 컨퍼런스 모습. [한국무역협회]
한국무역협회가 주최한 AX 이니셔티브 컨퍼런스 모습. [한국무역협회]

중소 제조업의 AX(AI Transformation) 현실...도입률 0.1%와 구조적 장벽

무역협회와 고려대 연구진이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국내 중소 제조업의 AI 도입률은 여전히 0.1%대에 머물러 있다.

연구진은 도입 지연의 원인을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공장에서 데이터를 확보·표준화할 인프라가 부족해 AI 적용의 기반 자체가 취약하다. 이어, AI·로봇·시뮬레이션을 다룰 전문 인력이 대기업에 집중돼 있어, 중소기업이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또 초기 구축 비용이 높아 투자 결정을 미루는 경향이 크다.

조직 내부에 “이미 자동화가 되어 있다”는 식의 오해가 만연해 AI 전환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마지막으로, 현장 중심의 실질적 과제 발굴 경험이 부족해 AI 도입의 우선순위 설정이 어렵다.

이 같은 문제는 단순한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기업 운영 방식과 투자 관행 전반의 변화가 동시에 요구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행사에서 소개된 실증 사례는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파나시아는 유리관 검사에 AI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해 검사 속도를 두 배로 높이고 불량 검출률을 95%까지 끌어올렸다. 서플러스글로벌은 AI 기반 장비 추천 시스템을 개발해 고객 의사결정 효율을 향상시켰다. 인터로조는 물성 시뮬레이션을 AI로 전환하면서 신제품 개발 속도를 기존 대비 10배 단축했다.

이들 사례는 중소 규모의 공정에서도 피지컬AI가 단기간에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다.

한국 제조업의 다음 10년은 피지컬AI 도입 속도가 결정

전문가들은 한국 제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으로 피지컬AI의 적극적 도입을 꼽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동화가 아니라, 공장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지능형 시스템으로 재편되는 변화다.

데이터 인프라 구축, 전문 인력 확보, 단계적 AX 전략 수립, 현장 실증 확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중소기업의 도입률은 0.1%에 머물 수밖에 없으며, 결국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부와 산업계는 데이터 표준화와 검증 체계 마련, 중소기업 대상 AI 컨설팅 확대, 산업별 레퍼런스 모델 구축 등 생태계 기반 조성에 나서고 있다. 피지컬AI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제조업의 생존 조건으로 자리 잡았으며, 기업들이 이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흡수하느냐가 한국 제조업의 향후 10년을 결정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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