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휴머니즘 경영으로 LG전자와 38년 동행
부도난 회사 인수, ‘덕분’ 리더십으로 반석에 올려
한국인과 조선족, 한인사회 간의 3중 벽 허물어

지난 9월26일 서봉전자 계열사인 화동전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원칠 대표.
지난 9월26일 서봉전자 계열사인 화동전자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원칠 대표.

“톈진의 벽을 허문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서봉전자 신원칠 대표는 ‘휴머니즘 리더십’이라는 별칭으로 통한다. 그의 이름 앞에는 언제나 ‘조선족과 한국인의 벽을 허문 사람’, ‘기부와 화합의 상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톈진지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중국 톈진의 한인사회와 조선족 사회를 잇는 다리이자 LG전자 협력사로 38년을 함께 걸어온 제조인의 상징이다. 지난 9월25일 톈진 서봉전자 본사에서 신 대표를 만나 그의 삶과 경영철학, 그리고 인간 중심의 리더십에 대해 들어봤다.

Q. 중국 톈진에서 한국인과 조선족이 이렇게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은 보기 드뭅니다.

A.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국인과 조선족, 그리고 현지 한인사회 내부의 갈등까지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톈진은 조금 다릅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제가 민주평통 톈진지회장을 맡으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이 바로 ‘벽을 허무는 일’이었습니다.

한국인, 조선족, 한족을 가리지 않고 찾아가 함께 식사하고, 술잔을 나누고, 어려운 일을 도우며 마음을 여는 과정이 쌓이다 보니 지금의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Q. ‘톈진의 3인방’이라 불리는 신은식 회장, 심재관 회장과의 관계도 특별하다고 들었습니다.

A. 신은식 천진한국인회 회장, 심재관 청송바이오그룹 회장과는 10년 넘게 함께 해왔습니다. 세 사람 모두 한국인과 조선족 사회의 경계를 허물고 싶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재관 회장은 조선족 2세로, 연 매출 2000억 원대의 기업을 이끌고 있지만 늘 겸손합니다. 저희 셋은 어떤 행사가 있으면 누가 주최하든 반드시 함께합니다. 예를 들어 한중우호체육대회 같은 경우, 한국인과 조선족이 1.5 대 8.5 정도의 비율로 참가하지만, 후원은 언제나 반반씩 부담합니다. 이게 바로 화합의 상징이지요.

Q. 한중우호체육대회 현장에서 직접 막걸리를 나눠주며 인사를 하러 다니시던데요.

A. (웃음) 네, 그날은 정말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참가자 1000명 넘는 행사였는데, 심재관 회장과 제가 막걸리를 들고 한 분 한 분께 따라드리며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께는 큰절도 올렸죠. 그 자리에서 한국인과 조선족이 어깨동무하며 춤추고 웃는 모습을 보니, 정말 뿌듯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진짜 하나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Q. 서봉전자의 성장 스토리도 영화 같습니다. 부도난 회사를 인수해 중견기업으로 키우셨죠.

A. 맞습니다. 저는 1987년에 서봉전자에 입사했습니다. 처음엔 제조업이 너무 힘들어서 “언제 내가 사업을 하더라도 제조업만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인생이란 게 참 아이러니하죠. 2009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본사가 부도 났을 때, 제가 있던 톈진 법인도 위험해졌습니다. 채권자들은 매각을 종용했지만 인수할 사람은 없었죠. 결국 제가 나섰습니다. 아내가 어렵게 마련해준  2억 원짜리 통장을 거네주면서 ‘이 돈으로 회사 살려보라’고  했어요.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Q. 위기를 기회로 바꾸신 배경에는 LG전자의 신뢰가 있었다고요.

A. 네, LG전자 덕분입니다. 2011년 LG전자 톈진 직원들이 예고 없이 공장을 방문했는데, 다음날 ‘1위 협력업체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LG전자와의 동행이 시작됐죠. LG는 협력사를 진정한 ‘동반자’로 대합니다. 물량을 늘려주고, 납품대금 결제도 탄력적으로 해주었어요. 만약 LG가 없었다면 지금의 서봉전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늘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LG 덕분이고, 직원 덕분이고, 아내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서봉전자 공장 내부 전경
서봉전자 공장 내부 전경

Q. ‘휴머니즘 리더십’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데, 대표님이 생각하는 ‘사람 중심 경영’이란?

A. 저는 사람을 바꾸지 않습니다. 대신 그 사람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습니다. 직원들의 자존감을 높이는 게 경영의 핵심이에요. 예를 들어, 회사에는 ‘평생 인센티브제’가 있습니다. 한국어 능력시험 6급을 따면 500위안, 5급은 1000위안, 4급은 1500위안을 매달 지급합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퇴사할 때까지요. 한국어 교사를 직접 고용해서 매일 사무실에서 수업을 엽니다. 직원들이 공부할 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배려하지요. 이외에도 컴퓨터 등 기타 직능관련 자격증을 취득해도 '평생인센티브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Q. 인센티브가 단순한 금전 보상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A. 맞습니다. 조장들이 우수한 직원의 부모님께 몰래 전자제품을 보내기도 합니다. 자녀가 다니는 회사가 자랑스러운 곳이라는 걸 느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또한 매달 생산성, 품질, 효율 목표를 달성하면 1인당 300위안씩 보너스를 지급합니다. 목표 달성률이 낮으면 삭감되지만, 대부분의 팀이 스스로 경쟁하며 성과를 냅니다. 이런 구조 덕분에 직원 이직률이 1%도 되지 않습니다. 공장에 가보면 직원들이 항상 밝아요. 그게 서봉전자의 진짜 자산입니다.

Q. 조선족 사회나 한인회에도 꾸준히 기부를 이어오셨다고요.

A. 네,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질 못합니다. 톈진뿐 아니라 연변, 하얼빈, 연길 등지의 조선족 학교에도 장학금을 보내고 있습니다. 조선족 여성단체인 ‘애심네트워크’에도 매년 후원하고 있고요. 기부는 돈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받은 도움을 다시 세상에 돌려주는 과정입니다. 처음 톈진에 왔을 때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늘 “서봉의 9할은 내 덕이 아니라 주위의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Q. 기업 운영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를 준비 중이라 들었습니다.

A. 네, 저는 후계자에게 무턱대고 회사를 물려주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은 단순히 돈 버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지는 곳이니까요. 후계자는 반드시 도전하고 고생하면서 기업가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서봉전자는 향후 전문경영인 체제를 통해 더 투명하고 효율적인 기업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Q. 최근에는 독자 브랜드를 개발하며 기술기업으로의 변신도 시도 중이죠?

A. 맞습니다. LG전자 협력으로 기반을 다진 뒤, 이제는 자체 브랜드를 키워가고 있습니다. 첫 작품이 ‘인덕션 통돌이 밥솥’이에요. 삼겹살도 구울 수 있고 찌개도 끓일 수 있는 다기능 밥솥입니다. 오는 10월 인천에서 열리는 세계한인경제인대회에서도 전시할 예정입니다. 또 내년 초 출시할 헬스케어 제품도 준비 중입니다.

서봉전자가 후원하는 K-Sisters팀이 지난 9월 27일 개최된 한중우호체육대회에서 조선족 팀과 축구경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뒷줄 맨 오른쪽이 신원칠 대표)
서봉전자가 후원하는 K-Sisters팀이 지난 9월 27일 개최된 한중우호체육대회에서 조선족 팀과 축구경기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뒷줄 맨 오른쪽이 신원칠 대표)

Q. 제조업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품질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사람과의 신뢰’입니다. ERP 시스템으로 공정을 자동화하고, R&D에 예산의 10%를 투자하지만 결국 그걸 운영하는 것도 사람입니다. 저는 매일 공장을 돌며 설비를 직접 점검하고 직원들의 상태를 봅니다. 기계는 바꿀 수 있어도 사람은 바꿀 수 없습니다. LG와 함께 배운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경영하는 법’이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톈진에서의 목표나 앞으로의 비전을 말씀해 주세요.

A. 저는 ‘덕분’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LG 덕분, 직원 덕분, 가족 덕분, 그리고 톈진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한중, 한인과 조선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 그리고 서봉전자가 단순한 제조업체를 넘어 사람을 키우는 기업,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기업이 되길 바랍니다. 그것이 제가 평생 지켜온 ‘휴머니즘 리더십’의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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