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아프리카 코끼리들은 야생 환경에서 평균 56년을 살지만, 동물원에서 태어난 코끼리들의 수명은 16년 남짓이다. 영국과 캐나다 연구진이 4500여 마리의 코끼리를 조사해 밝혀낸 이 연구 결과는 2008년 '사이언스'에 실리면서 널리 알려졌다. 동물원은 야생의 각종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코끼리들이 살기 좋은 환경과 충분한 먹이를 제공했지만, 안전하고 안락한 환경에서 코끼리들의 수명은 오히려 크게 줄어들었다.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야생 환경과 달리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오히려 동물에게 불안과 스트레스를 주어 수명을 단축시켰다.

디지털과 인터넷 기술은 지식과 정보의 훙수를 불러왔다. ‘정보홍수’는 인간의 인지적 본능과 정보의 본질적 가치에 중대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첫째는 ‘인지 과부하’로 인한 부작용이다. 정보가 넘치는 디지털 세상은 편리하고 유익한 환경이자 현대의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사실 개인과 사회는 정보홍수 상황에 익숙하지 않다. 정보홍수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고,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상태다. 장구한 인류 역사에서 최근 몇십 년을 빼고 정보는 항상 최소한에 그친 자원이었다.

정보가 희소한 환경에선 남보다 먼저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생존율을 높이는 중요한 능력이었다. 호수 어느 곳에 물고기가 많은지, 맹수가 어디에 자주 출몰하는지를 남보다 먼저 아는 능력은 생존에 매우 중요했고, 인간은 더 많은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진화했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 뇌의 쾌락 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어 쾌감을 느끼도록 만들어졌다.

켈리포니아대학 버클리 캠퍼스 연구진의 2019년 논문에 따르면, 새로운 정보를 얻으면 코카인을 흡입할 때와 동일한 신경회로가 활성화된다고 한다. 둘 다 도파민의 분비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천둥소리에 놀라고 스마트폰 알람에 저절로 눈과 손이 가는 이유는 새로운 정보를 얻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도록 우리 뇌의 신경이 짜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더 쾌감을 느끼고 싶어하는 본능이 작용한 탓이다.

인류는 정보가 희소한 상황을 살아오면서 더 많은 정보를 추구하는 쪽으로 적응해, 반사적으로 뇌가 새로운 정보에 반응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런데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정보가 넘쳐나게 된 상황은 인간 본능 측면에서 보면 매우 이례적이다. 사람은 본능에 따라 여전히 새 정보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문제는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방치하다보니 부작용이 생기게 마련이다. 중요하지 않음에도 자극적인 정보들이 넘쳐 난다. 그런 하잘 것 없는 정보에 주의력과 시간을 할당하게 되어, 지적능력이 고갈되거나 정보에 의해 생각이 좌우되는 병리적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인지 과부화’ 내지 ‘과호흡’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정보 반감기의 급격한 단축이다. 정보홍수는 개별 정보 및 지식의 가치와 쓸모를 지극히 짧고 일시적인 것으로 바꾸고 있다. 하버드대학의 복잡계 물리학자 새뮤얼 아브스만은 ‘지식의 반감기’ 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지식과 정보의 유효기간이 갈수록 단축되는 현상을 설명했다. ‘지형의 변화’, ‘태양계 행성의 수’, ‘컴퓨터의 평균 작동 속도’ 등 우리가 접하는 지식은 대부분 불변의 절대 지식이 아니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가변적 지식이다. 가변적 지식은 신선식품처럼 유효기간이 있는데, 디지털 인터넷 환경에서 정보의 폭발적 증가로 인해 유효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아브스만은 지식의 유효기간 또한 방사능 물질처럼 ‘반감기’가 계속 짧아지는 속성이 있다고 말한다.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니 우리는 오히려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보에 구속된 모든 형태의 관계 속에서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가중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지식과 정보에 대한 주체적 인식이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대다. 수 많은 정보앞에 특정한 지식을 남보다 앞서 습득하고 활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지식 자체를 파악하는 능력, 즉 메타인지가 훨씬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다. 메타인지를 통해 디지털 환경에서 지식의 속성과 구조를 통찰하고, 지식에 접근하고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바람직할 것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해석해낼줄 알아야 한다. 다양한 분석 도구들을 구사하고, 상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며, 사유의 근육을 키우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지혜로운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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