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프랑스 철학자 장 쟈크 루소는 “시민이 자유롭다고 느낄 때는 대의원을 선출할 때뿐이며 선출이 끝나면 그들의 노예가 된다”라고 말했다. 선출된 대의원은 선거에서 이기자마자 또 다른 특권층이 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 및 혐오는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정부 관료와 정치인의 부정부패,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독단적인 결정, 무사안일주의에 실망한 시민들의 새로운 정치, 열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치인의 의사결정은 자신의 가치판단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투표만으로는 이를 견제할 수 없으며, 지금과 같은 정치적 시스템으로는 올바른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정책입안과 관련한 의사 결정도 매우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다수 국가들도 사정은 같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켠에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인공지능(AI)을 떠올리는 경우도 등장했다. 차라리 AI를 활용한 정치가 조금은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생성형AI까지 나오다보니, 그런 목소리가 공허하게만 들리지 않게 되었다. 딥러닝과 빅데이터, 그리고 생성기능까지 더해진 AI는 여론 수렴의 복잡한 정보를 계산하는 데 혁신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뿐만 아니라 기존 의회민주주의의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이는 이제 공상만으로 그치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2021년 CNBC의 보도에 따르면, 한 연구기관이 세계 11개 나라 수 천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귀국의 국회의원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방안에 대한 찬반”을 물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유럽에선 응답자의 51%가 찬성하였다. 이 연구에 참여한 스페인 IE대학의 오스카 존슨은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고,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 감정은 점점 더 커질 것이며 그것을 모든 사람이 인식하고 있다”라고 해석하였다.

조사 내용을 보면 민주주의 성숙도나 경험치가 떨어지는 나라일수록 그 비중은 높았다. 중국에선 무려 70%가 “국회의원을 인공지능으로 바꿔야 한다”고 대답했다. 유럽에서도 스페인 사람들의 정치 혐오가 가장 컸다. 조사 대상의 66%가 국회의원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데 지지했고, 이탈리아는 50%가 찬성 의견을 냈다. 반면 영국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69%가 인공지능으로의 대체에 반대했고, 미국도 60%가 반대했다.

실제로 인공지능이 정치에 접목된 사례도 있다. 2017년 뉴질랜드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정치인’ 샘(SAM)이 그것이다. 샘은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학습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책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페이스북 메신저와 연결된 샘은 유저들과 뉴질랜드의 미래와 기후변화 대처방안 등을 토론하기도 한다. 특정 문제에 대해 분석하고 여론조사를 실시해 더 많은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책을 제안하기도 한다.

2018년 일본의 시장선거에서는 인공지능 후보 ‘마츠다 미치히토’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일본 선거법상 피선거권은 사람만 가질 수 있기에, ‘사람’인 마츠다가 대리로 나섰다. 마츠다는 “시장에 당선되면 주요 정책을 인공지능에 위임하겠다”고 공약했지만 3위에 그쳐 낙선했다. 그러나 무려 4천표나 얻으면서 인공지능 시장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인공지능이 시장이 되면 인간 정치인과 달리 세금을 절약할 수 있고, 각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그 바탕에 깔려있는 결과라고 하겠다.

이런 현상은 현실정치에 대한 불신이 클수록 더욱 확산될 것이다. 하지만 되짚어 생각해보면, 결코 반길만한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정치공학적 현실에 대한 불만을 배설하는, 카타르시스 도구로 그친다면 모를까, 만약 실제로 AI아바타를 사람 대신 의사당에 앉힌다면? 그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직시해야 할 것은 ‘AI 정치인’이란 말에 숨어있는 의미다. 누군지는 몰라도, 말 잘듣고 알고리즘으로 조정하기 쉬운 기계를 통해, 일사불란하고 조용한 정치적 디스토피아를 노린다고 할까. 그 속엔 복잡하고 시끄럽고 말도 탈도 많은 민주주의를 삭제하고픈 심리가 숨겨져 있다. 덕분에 소수의 그 누구는 안락한 기득권과 권력을 누리게 된다. 오래도록 인간사회가 합의한 최선의 이성적 결과라고 할 민주주의 자체가 송두리채 부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농담이면 몰라도, ‘AI 정치인’은 용납하기 어렵다. 그저 현실정치의 각성을 촉구하는, 따끔한 ‘패러디’에 그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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