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섭 가족기업학회장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윤병섭 가족기업학회 부회장<br>
윤병섭 가족기업학회장

이 시리즈를 쓰는 목적은 소상공인이 지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함이다. 일본 3대 상인은 오미(近江) 상인, 이세(伊勢) 상인, 오사카(大阪) 상인이며 그 중 오미(近江) 상인을 다뤘다. 오미 상인은 1600년대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를 본거지로 쇼군(將軍)의 통치 기구인 막부(幕府)와 다이묘(大名)의 영지인 번을 합쳐 부른 무사계급 지배기구인 막번체제(幕藩體制)를 창설한 이후부터 활약했다. 황실 중심의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 통일 권력의 확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변혁 과정을 총칭하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시대에 접어들 때까지 260여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상업에 몰두했다. 현재의 시가현(滋賀県), 즉 오미를 근거지로 도쿄(東京),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홋카이도(北海道) 등 일본 각지에 마포, 모기장, 칠기, 삼베, 포목, 무명 등 지역 특산품을 행상으로 판매하면서 수 대에 걸쳐 전통을 만들고, 잇고 정신을 꾸준히 계승하는 공을 들여 상도(商道)를 확립했다. 우리나라 소상공인이 일본 오미 상인으로부터 시사점과 지혜를 얻어 소상공인의 꿈을 펼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에도시대 미쓰이 가문의 저택을 그린 그림 (富嶽三十六景)

일본 경제에는 오미 상인의 힘이 흐르고 있다. 오미 상인들은 도요타(豊田) 자동차, 도멘(東綿), 이토추(伊藤忠), 마루베니(丸紅) 등의 종합상사, 다카시마야(高島屋), 세이부(西武), 다이마루(大丸) 등의 백화점, 도요(東洋)방적, 닛신(日淸)방적, 여성 내의 와코루, 기모노 등의 섬유산업, 히노약품, 다케다제약, 일본생명보험 외 일본을 대표하는 굴지의 대기업을 수도 없이 일으켰다. 이들은 1900년대 초 다 망해가던 스미토모(住友) 그룹을 일으켜 세웠다.

미쓰이(三井)는 미쓰비시(三菱), 스미토모(住友)와 함께 일본의 3대 그룹이다. 미쓰이 그룹의 모태는 1876년 세워진 미쓰이은행과 미쓰이물산이지만, 그 기원은 도쿠가와 시대의 거상인 미쓰이 가문이다. 미쓰이의 시조로 평가받는 미쓰이 다카토시(三井高利)는 1673년 교토와 에도에 포목점을 연 오미 상인이다.

미쓰이 가문의 포목점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정찰제와 현금 거래를 내세웠다. 또 비가 오면 고객에게 회사 이름이 새겨진 우산을 빌려주는 등 현대식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일본의 개방이 본격화했던 메이지시대에 미쓰이 가문은 은행, 무역, 광업 등에 진출하며 세력을 넓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쓰이재벌은 해체됐으나 주력 계열사였던 미쓰이은행이 다른 은행에 흡수됐다 1948년에 다시 독립했다. 1950년대 들어 미쓰이에 속했던 회사들이 다이이치물산회사(第一物産會社)를 중심으로 재결합했고 미쓰이 그룹으로 발전했다. 토요타자동차, 삿포로맥주, 도시바, 도레이 등이 닛케이225 상장 미쓰이그룹 계열사다.

도레이(Toray Industries)는 1926년 설립된 일본의 대표적 화학·섬유기업이다. 1951년 듀폰(dupont)과 제휴해 나일론 제조기술을 도입하는 등 테이진(帝人), 쿠라레(Kuraray)와 함께 일본의 화학·섬유산업을 개척했다. 도레이의 탄소섬유는 비행기 보잉 787 드림라이너의 동체 제작에 사용되는 등 점유율 32%의 세계 1위며, 엔지니어링 플라스틱·IT재료·화학섬유 등을 생산하는 소재기업이다. 자전거도 도레이 탄소섬유를 으뜸으로 쓴다. 도레이의 기술력으로 만든 초극세 섬유를 사용한 안경닦이도 있다. 도레이의 기업이념은 “창조하는 경영으로 사회에 공헌합니다”이며, 핵심가치는 “도레이첨단소재를 미래로 이끄는 힘 ‘주도성, 도전, 스마트, 존중’”이다.

도요타 정신은 오미상인 정신에서 유래한다. 오미상인이 모기장을 팔아 도요타 자동차를 설립했다. 가난한 목수 아들로 태어난 도요타 사키치(豊田佐吉)는 일본 전통에 따라 가업을 이어가야 했음에도 목수가 되지 않고 1890년 목제 자동직기, 1926년 ‘G형 자동직기’를 고안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인 G형 자동직기로 20여 개 특허를 받아 그가 1933년에 세운 도요타 자동방직기제작소는 큰 수익을 얻었고 이 자금으로 자동차생산 부서를 설립해 자동차 연구를 시작했다.

1936년 일본 최초의 승용차 A형 엔진을 탑재한 AA를 만들고 1937년 도요타 자동차 주식회사를 별도 법인화했으며, 2차 세계 대전 때 육군용 트럭을 생산했다. 종전 직후 수요부족, 1947년 승용차 S형 엔진을 탑재한 SA에 실패해 경영위기에 몰려 1950년 6월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다. 한국전쟁의 발발로 미군용 트럭을 대량 납품하면서 기사회생했다. 현재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6대 사장 쇼이치로의 아들)가 11대 사장인 가족기업이다.

도요타 강령 다섯 개 중 눈에 띄는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요타의 모든 사람들은 업무에 성실하게 임하여 국가나 사회에 공헌하는 실적을 남겨라. 둘째, 연구와 창조의 정신을 잊지 말고 시대의 선두에 서라. 셋째, 주위 사람에 대해 우애의 정신을 가지며 가정적인 팀워크를 구축하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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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칭봉을 맨 오미상인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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