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섭 가족기업학회장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윤병섭 가족기업학회 부회장<br>
윤병섭 가족기업학회 부회장

이 시리즈를 쓰는 목적은 소상공인이 지니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함이다. 일본 3대 상인은 오미(近江) 상인, 이세(伊勢) 상인, 오사카(大阪) 상인이며 그 중 오미(近江) 상인을 다뤘다. 오미 상인은 1600년대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에도(江戶, 지금의 도쿄)를 본거지로 쇼군(將軍)의 통치 기구인 막부(幕府)와 다이묘(大名)의 영지인 번을 합쳐 부른 무사계급 지배기구인 막번체제(幕藩體制)를 창설한 이후부터 활약했다. 황실 중심의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 통일 권력의 확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변혁 과정을 총칭하는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시대에 접어들 때까지 260여 년 동안 흔들림 없이 상업에 몰두했다. 현재의 시가현(滋賀県), 즉 오미를 근거지로 도쿄(東京), 교토(京都), 오사카(大阪), 홋카이도(北海道) 등 일본 각지에 마포, 모기장, 칠기, 삼베, 포목, 무명 등 지역 특산품을 행상으로 판매하면서 수 대에 걸쳐 전통을 만들고, 잇고 정신을 꾸준히 계승하는 공을 들여 상도(商道)를 확립했다. 우리나라 소상공인이 일본 오미 상인으로부터 시사점과 지혜를 얻어 소상공인의 꿈을 펼치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종업원에게 상인교육을 하는 스승의 모습. [中村義通, 산포요시연구소(三方よし研究所)]
종업원에게 상인교육을 하는 스승의 모습. [中村義通, 산포요시연구소(三方よし研究所)]

오미 상인은 일본 전역을 대상으로 시장을 개척하고 확장했다. 오미 상인의 시장 개척과 확장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오랜 기간 유지해온 인재 육성 제도를 손꼽을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조직적인 학교제도가 없었던 에도(江戶) 시대는 점원으로 나서는 것이 상인이 되는 최고의 교육 방법이었으므로 산포요시연구소(三方よし研究所)가 정리한 오미 상인의 단계별 교육인 귀성제도(在所登り制度)는 체계적인 인재육성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제1단계는 6~7세가 되면 일종의 서당에 해당되는 테라코야(寺子屋)에 입문하여 상가(商家)에서 봉사활동을 한 후, 10세 정도 어린이가 되면 뎃치(丁稚), 즉 수습사원이 되는 단계를 밟는다. 수습사원은 호오코오닌 우케(奉公人請狀), 즉 입사서약과 신원보증을 겸한 증서를 점주(主家)에게 제출한다. 점주는 수습사원을 한번 받아들인 이상 제 몫을 다할 수 있는 상인이 되기까지 훈련시킬 책임이 있다. 오미 상인들이 전국 각지에 지점을 개설하였을 때, 그곳에서 근무하는 점원은 자연스럽게 본가(本家)가 있는 오미 출신자를 주로 파견하였는데, 이는 장래에 점포경영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그 인물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필요하고 신분이 확실한 인물을 채용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습기간은 종업원을 양성하는 시간이다. 인턴제도와 유사하다. 점포 안에서 부르는 이름을 본명과 다르게 별도로 부여받아 지점에 배치된다. 점포에 배치되면 주로 주인집 아이를 돌보거나 청소를 하거나 심부름을 하기도 하며 틈틈이 책을 읽고 쓰거나 주판연습을 하면서 예절을 배운다. 금・은・동의 계산과 상호환산 방법도 배운다. 고용된지 5년 정도 지나면 ‘하츠노보리(初登り)’, 즉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첫 귀성을 간다. 이때 퇴직 또는 계속 고용 여부를 결정한다.

제2단계는 첫 귀성 후 격년 단위로 귀성이 허락되며 계속 고용이 되면 16~17세가 되는 시점에 ‘겐푸쿠시키(元服式)’라는 일종의 성인식과 같은 관례를 치르고 판매 등에 종사하는 테다이(手代), 즉 대리인이 되는 단계이다. 상점의 지배인(番頭) 지도로 출납, 기장, 매매 등 장사의 본래 업무를 돕고 보수가 정해진다. 20세가 되는 해에 승진, 호명변경, 중간 귀성(中登り)이 이뤄진다. 나카노보리(中登り) 후 2, 3회 정도 더 귀성하게 된다. 보수는 첫 귀성 때처럼 여비와 선물비 명목의 현금을 지급한다. 승급한 보수는 원칙적으로 근무 중에는 지급하지 않고 점포가 관리한다.

제3단계는 반토우(番頭), 지배인으로 승진하는 단계다. 30세에 반토우(番頭)가 되며, 점포를 경영하고 가사(家事)를 꾸려나간다. 점원을 지도・감독하는데 보수 외에 장려금도 받게 된다. 매년 1개월 정도 귀성휴가가 주어지는데 이 때 결혼이 허용되기도 한다. 30세 정도까지가 고용기간이지만, 분가하여 독립된 점포를 지닐 때까지 귀성회수가 늘어난다. 하지만, 귀성하여 시간을 쓰기보다 분가하는데 심혈을 기울인다.

오미상인의 동전 세는 나무계산기 [홍하상]

제4단계는 반토우에서 5년 정도가 지난 35세 무렵 본가(本家)로부터 가명(家名)과 재산을 배분받아 독립하는 벳케(別家) 단계다. 벳케는 노렝와케(暖簾分け) 즉 분점화(分店化)로, 이때 개업자금으로서 점포에 맡긴 상당한 급여적립금, 퇴직금과 장려금 등의 축의금이 본가에서 지급된다. 한편, 분가(分家)한 벳케는 본가와 주종관계 유지를 약속한 별가(別家)증서를 제출하기도 하며, 배우자를 맞이해 가정을 꾸리거나 반토우(番頭) 때 결혼해 고향에 있는 아내를 데려온다.

제5단계는 일선에서 물러나 사회활동을 하는 시기인 인쿄(隠居) 단계다. 은퇴에 정해진 나이는 없다. 공공사업에 투자하거나 신사(神社)・사찰에 대한 기부활동 등 종교활동, 자선사업 및 문화활동을 하며 유머를 주제로 한 연가(連歌)인 하이카이(俳諧)나 회화 등의 취미활동을 한다. 영험한 곳을 순례하거나 선조에게 공양을 하고 점포의 발전을 기원하기도 한다. 아울러 가훈이나 점훈(店訓)을 정리하여 제정하기도 하는 시기이다.

오미 상인 조직에는 은퇴제도 가운데, ‘강제은퇴(押込み隠居)’라는 관습이 있다. 선조 때부터 대대로 이어져온 자산을 지키고 그것을 증식시키는 것이 후계자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강하였으므로 능력이 없는 주인에게도 적용했다. 즉, 경영능력이 없는 후계자는 강제적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이를테면, 선조로부터 지켜온 법도를 깨고 부정과 불법을 저지른 본가 주인에 대해 분가들이 모여 협의를 한 뒤 가업존속을 위해 은퇴를 시켰다. 즉, 점포의 운영에 있어서도 점포와 개인(주인)은 별개의 것으로 주인의 사유재산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독단으로 결정하지 않고 오늘날의 이사회와 같은 회의를 거쳐서 결정하였다. 따라서 부적격한 인물이라면 주인이라도 자리에서 추방하거나 상속권을 박탈하는 등의 사례도 있었다.

귀성제도는 장기 고용기간의 일단락이며, 크나큰 위로휴가이면서 동시에 계속근무가 가능한지 어떤지, 그때까지의 근무태도에 대한 평가를 받는 시기이기도 했다. 일종의 인사고과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은 귀성전까지 보여줬던 직무수행 능력뿐만 아니라, 인망(人望)이나 성격과 같은 인간성이었다. 이러한 인간성에 대한 평가는 뎃치(丁稚)근무, 즉 수습생근무를 몇 년인가 지속하여 20세 정도가 되는 시점에 실시했다. 이때 냉혹한 자를 피하고 성격이 성실하고 인내심이 강한 자를 등용하도록 정했다. 이는 인간성이 있는 자를 중시한 것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의 재각(才覺)보다 그의 인간성을 중시해 평가하는 것이 결국 높은 업적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귀성회수가 거듭될수록 직위나 보수가 달라져가는 소위 승진제도이기도 했으며, 근무기간이 일단락되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때 평가결과에 따라 해고되는 자도 적지 않았다. 즉, 오미상인 조직의 귀성제도는 종신고용을 보장하고 연공을 중시하는 연공주의가 아니라, 능력주의에 의한 인재선발제도로서 그 기능을 수행했다. 귀성제도를 바탕으로 한 오미상인의 인재육성시스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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