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선족 기업가' 남기학 예지아(燁嘉) 광학기술그룹회장
[인터뷰] '조선족 기업가' 남기학 예지아(燁嘉) 광학기술그룹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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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올해 중국 상장 포기했지만 다시 준비할 터”
3년 연속 순이익 200억원 내야 상장조건 해당
테슬라 등 다국적 기업에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
남기학 예지아(燁嘉) 광학기술그룹회장은 코로나로 인한 매출감소로 올해 계획한 중국시장 상장을 못했으나, 3년후를 기약하며 다시금 신발끈을 매겠다고 밝혔다.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중국 조선족 출신의 기업가인 남기학 예지아(燁嘉) 광학기술그룹회장을 만난 건 2021년 5월 대전에서 열린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제22차 세계대표자대회장에서였다. 당시 월드옥타 수석부회장이기도 한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내년(2022년)도 상하이거래소에 회사 상장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중국시장에서 상장은 큰 부와 명예를 손에 쥐는 징검다리라는 점에서 200만 조선족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중국시장에서 상장은 하늘의 별따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까다롭다. 올해 회갑을 맞은 그를 지난 9일 서울 마곡의 한 비즈니스 호텔에서 만났다. 꼭 1년 6개월만에 자리를 함께 한 셈이다. 가장 먼저, 상장을 했느냐는 질의에 그는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상장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는데, 지난해 코로나로 인한 타격으로 매출과 이익이 감소하면서 올해 상장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로 인해 주주들로부터 적지 않은 볼멘소리를 들었습니다.”

중국시장에서 상장 조건은 3년 연속 1억위안(한화 200억원)이상의 매출을 달성해야 하고 상장 신청 첫해엔 특히 주력업종에서 5000만위안(한화 100억원)의 순이익을 내야 한다. 결국 전체 순이익이 연간 6000만~8000만위안은 되어야 한숨을 돌릴 수 있다는 그의 계산이다.

한국의 경우 적자가 나는 회사라고 할지라도 기술력과 시장성이 담보되면 상장이 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에 대해 남 회장은 “한국보다 중국의 자본시장이 조금 후진적이기 때문”이라며 “생각보다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적지 않은 후유증을 겪었다”는 말로 대신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시장에 상장을 하면 자산규모 증가가 각 4배, 10배 수준이지만 중국에서의 상장은 50~100배의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이 몰린다고 한다. 회사 매출 역시 1조원 달성도 어렵지 않다는 그의 설명이다. 상장은 자금융통이 쉽고 특히 글로벌시장에서 진검승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사명이라고 남 회장은 말했다. 이런 이유로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최근 몇년새 글로벌 전기차시장이 급속하게 확장되면서 우리 회사 제품이 글로벌시장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습니다. 특히 이미 올해 초 다국적 기업인 테슬라로부터 대형프로젝트를 수주했고 벤츠, BMW, 아우디 등에도 납품하는 등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어요. 전기차 시장의 전망을 미리 예견하고 2018년부터 철저하게 준비했던 것이 적중한 것입니다.”

예지아그룹은 자율주행차, 자동차 LED램프, HUD(헤드업디스플레이), 로봇 등에 쓰이는 첨단 광학렌즈를 생산하고 있다. 그간 광학기술 분야 특허 120여개, 발명특허 2개를 냈고 현재 신청 중인 특허만도 20여개나 된다. TV 백라이트 렌즈 분야에선 세계시장 점유율(20%) 1위를 달린다.

전체 직원 1500명 가운데 300명 가량이 연구개발 직원이며 한국과 대만 출신 연구 인력도 다수가 함께 일하고 있다. 연구개발에 연간 4000만위안을 투자하고 있다는 게 남 회장의 설명이다.

예지아(燁嘉)광학기술그룹은 중국 광둥(廣東)성 선전(深圳)시와 둥관(東莞)시에서 광학과 실리콘 회사인 ‘광학전자기술유한공사’, 게임기 제조사인 ‘전자기술유한공사’ 등 10개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2020년 9월 중국 최고 권위의 과학기술상인 중국 과학혁신상을 조선족 기업인으론 처음 받기도 했으며, 중국과학기술포럼이 수여하는 업계(광학렌즈) 10대 인물상도 수상했다.

남 회장은 경기 이천이 고향인 아버지와 함경북도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허베이(河北)성에 있는 옌산(燕山)대 자동제어학과를 졸업한 후 지시대학에서 5년간 강사로 일하다 어느 날 갑자기 옷가방 하나 들고 무작정 선전으로 들어갔다. 당시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으로 불리던 곳이다. 여기서 일본의 쿄와플라스틱 회사에 들어가 10년간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2001년 창업했다. 복사기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하는 일본의 하청업체로 시작해 소니, 파나소닉 등 가전제품과 게임기 부품 및 완제품 생산으로 점차 확장해 2013년부터 광학렌즈에 눈을 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50대 초반에 한상리딩CEO클럽에 가입돼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현재 월드옥타 감사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월드옥타 내부 갈등과 관련, 지도부와 직원들간 소통을 통한 해결을 주문했다.

현재 조선족이 창업한 기업 중 중국에서 상장시킨 기업은 2014년 한국의 유아복기업인 아가방을 인수한 랑시그룹 등 3개사에 불과하다. 앞으로 3년 후 4번째 조선족 기업의 상장을 남 회장에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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