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중심’에서 ‘시장 중심’으로…정부의 전략 전환
글로벌 ‘양자 산업화 경쟁’ 가속,
韓 양자기술 “기초는 견고, 산업은 아직 출발선”
양자기술 산업화의 과제…‘표준화·인력·자본’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정부가 5일 ‘K-양자산업 연합’을 공식 출범시키며 국내 양자기술 발전 전략의 중심축을 연구개발(R&D)에서 산업 적용으로 본격 전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이제 양자기술은 연구실의 기술이 아니라 기업의 기술이 되어야 한다”며 ‘기술에서 시장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했다.
이 연합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한화오션, 삼성바이오로직스, 효성첨단소재, LIG넥스원, 에코프로 등 수요 기업과 대한광통신, 우리로, 마이크로인피니티, 퀀텀켈빈 등 공급기업, 그리고 주요 대학·금융기관·지원기관 등 34개 기관이 참여했다. 이는 단일 기술 분야로는 보기 드문 민관 연합체로, 정부가 “양자기술 산업화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왜 지금인가… 글로벌 ‘양자 산업화 경쟁’ 가속
이번 출범의 배경에는 글로벌 양자 패권경쟁의 가속화가 자리한다. 미국은 이미 IBM, 구글을 중심으로 양자컴퓨팅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Quantum Flagship’ 프로젝트를 통해 10년간 10억 유로를 투자하고 있다. 중국은 군사용·암호통신용 양자기술에서 세계 선두권에 올라섰다.
한국은 그동안 기초·소재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 성과를 쌓아왔지만, 산업화 단계에서는 “R&D는 있으나 시장은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정부는 이번 연합체 출범을 산업화의 ‘마중물’로 삼아, 기업이 직접 시장을 창출할 수 있도록 생태계를 연결하려는 구상이다.
특히 산업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초전도 QPU(Quantum Processing Unit) 패키징과 극저온 냉각기 등 핵심 소부장 국산화를 본격 추진하고, 양자-슈퍼컴퓨팅 결합형 플랫폼 구축 및 산학연 실무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한국의 양자기술 현주소… “기초는 견고, 산업은 아직 출발선”
한국은 양자통신·양자암호 분야에서 이미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과 ETRI는 양자키분배(QKD) 기술 상용화를 이끌었으며, 일부 통신망에서는 이미 양자암호 통신 실증망이 운영 중이다.
하지만 양자컴퓨팅 하드웨어에서는 미국·중국 대비 5~10년의 기술 격차가 존재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관련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존재하지만, 산업화 단계의 양자칩·냉각기·측정기기 등의 소부장 생태계는 아직 미성숙하다.
따라서 정부가 이번 연합체를 통해 추진하는 ‘양자 소부장 국산화’는 기술 자립과 산업 기반 확보를 동시에 노린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산업화의 과제… ‘표준화·인력·자본’의 3대 병목
전문가들은 한국 양자산업이 본격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세 가지 과제를 지목한다.
먼저, 표준화 부재로서, 각 기업·기관이 다른 기술 플랫폼을 사용해 상호운용성이 떨어진다. 글로벌 표준 정립 참여와 국내 인증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전문인력 부족이다. 양자공학, 극저온, 소재, 알고리즘 등 융합형 전문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산학연 협력 교육체계 구축이 시급하다.
이어 산업투자 미흡을 들 수 있다. 양자기술은 장기 투자와 리스크 감내가 필수지만, 국내 자본시장은 단기 성향이 강하다. 이번 연합에 KB·신한·하나은행, 기술보증기금 등이 포함된 것도 이를 보완하려는 시도다.
산업 적용 시 기대효과…‘불가능의 영역’을 계산한다
양자기술이 산업현장에 도입될 경우, 그 파급력은 막대하다.
맨먼저 제약·바이오 산업에 있어 양자컴퓨터는 분자 구조의 복잡한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해, 신약개발 시간을 수년 단축시킬 수 있다.
소재·배터리 산업은 새로운 소재 탐색 및 에너지 효율 최적화에 활용 가능하다.
금융 부문은 초고속 연산을 통한 리스크 분석 및 초정밀 예측모델 개발이 기대된다.
또한 국방·우주산업에 있어 양자센서와 양자암호통신은 차세대 안보 인프라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연세대 정재호 교수는 이날 행사 기조연설에서 “양자컴퓨터는 인공지능이 풀지 못한 산업 난제를 해결하는 궁극의 도구가 될 것”이라며 “K-양자 연합은 한국 산업의 새로운 성장 축을 여는 시작점”이라고 평가했다
정부의 K-양자산업 연합 출범은 단순한 기술협의체가 아니라, 국가 산업전략의 중대한 전환점이다. 산업부 문신학 차관의 말처럼, 지금은 “국내 양자 소부장 기업들이 글로벌 밸류체인에 진입할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R&D 중심의 기술개발 단계에서 벗어나, 민간 주도의 시장 창출 구조로 옮겨갈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