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장태평 농특위원장
장태평 농특위원장

미국 필라델피아의 독립기념관에는 ‘자유의 종’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자유의 종’은 미국이 독립하는 날에 울리기 위하여 영국에서 주조되어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러나 하역하는 과정에서 깨졌기 때문에 정작 1776년 7월 4일 독립일에 이 종은 울리지 못했다. 그랬지만 이 종은 미국의 독립정신인 자유의 상징물이 되었다. 이 종은 자유에 대하여 몇 가지 시사점을 던져 주는 것 같다. 첫째, 자유는 깨지기 쉽다는 것. 둘째, 자유는 필요할 때 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셋째, 이제 자유는 유리관 속에서 역사적 기념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 이 종 앞에 섰을 때, 북한 탈북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북한 탈북자들의 탈북과정을 들으면, 논리로 자유를 말하지 않는데도 자유의 명강의가 된다. 그들은 말한다. 남한에서는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어 좋다. 남한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어서 좋다. 북한에서는 사람들이 일한 성과물은 모두 당의 것이다. 그리고 당이 배급하는 것을 받아먹어야 한다. 남한에서는 자기가 일한 것은 자기 것이어서 좋다. 자기가 수확하는 농수산물이 자기 것이고, 자기가 밤새워 일한 추가수당이 자기 것이어서 좋다. “대한민국은 천국이에요.” 북한에서는 자유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아! 자유가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들은 북한에 남아 있는 부모, 형제들을 탈북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탈북자들은 대개 굶주리다 살기 위해 탈북을 결심한다. 목숨 걸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넌다. 건너면서 물에 빠져 죽고, 잡혀서 고초를 당한다. 중국에 와서는 공안당국과 중국인들의 먹잇감이 된다. 심지어 여자들은 중국인에게 팔려가 성적 노예가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에 오기까지 그들은 늘 신변의 위협 속에서 중국과 동남아국가들을 전전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한국으로 오는 사람들은 반에 반도 안 될 것이다. 이들이 입국하여 한국의 주민등록증을 받을 때, 자기를 보호할 ‘국가’가 있다는 것에 감격하고 운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갈 수 있는 여권을 손에 쥐었을 때, 또 운다. 자유를 체감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헌법과 법률에 정해져 있다. 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신체의 자유, 재산 소유와 처분의 자유, 언론·출판·결사의 자유, 거주이전과 직업의 자유, 신앙과 양심의 자유, 통신의 자유 등을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공정한 재판권, 자유로운 선거권과 피선거권, 그리고 정당 결성권 등도 보장해야 한다. 이런 것이 모두 ‘자유’다. 북한에는 이런 자유가 없다. 좌파 학자들은 교묘한 궤변으로 ‘자유’를 돌부처로 만들어 북한 인권을 가린다. 탈북민들은 자유를 논리적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아니지만, 가난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질병으로부터의 자유 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처절하게 간증한다. 누구나 아무리 멋진 자유론을 펼쳐도 이들이 체험한 실질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자유가 아니다.

2019년 탈북어민 2명을 오랏줄에 묶어 강제 북송한 사건이 있었다. 사람이 먼저라고 주장하던 집권자들이 저지른 권력남용이었다. 자유의 종에는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라”는 성경 구절이 새겨져 있다. 희년제 율법인 레위기 25장 10절이다. 이 율법에 의해 이스라엘에서는 50년이 되면, 아무 대가도 없이 모든 노예가 해방되고 모든 채무가 면제되었다. 인간과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잠시 지배하고 소유하였더라도 50년이 되면, 모두 제자리에 돌려놓으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안 미국의 지도자들이 미국 독립이 선포된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노예제가 유지되는 것을 반성하고, 외면했던 ‘자유의 종’을 불러내어 그 앞에서 노예제도의 폐지를 선언했던 것이다. ‘자유의 종’은 그때부터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자유의 종은 억압받는 자들에게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자유의 종은 억압하고 있는 자들에게 조건 없이 억압을 풀어주라고 명령한다. 북한에 인권이 사라진지 80년이 다가오고 있다. 북한에 자유를 선포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외면해서는 안 되는 민족적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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