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장태평 
장태평 농특위원장 

요즈음 회사의 CEO나 임원들을 만나면, 많은 이들이 직원들의 업무 태도에 대해 과거와 다르다는 점을 얘기한다. 잘못을 지적하면, 강하게 반발하기도 하고, 심지어 담당 일을 지시하는 데도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부탁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며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다고 한다. 학생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가르치려면, 많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잘하려고 하다가 자칫 고발을 당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제는 지하철이나 거리에서 퇴폐행위나 난폭한 행위를 보더라도 눈을 돌리거나 방관자가 되어야 한다. 잘못하면, 봉변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움받을 용기가 없어서이다. 사회 기강이 무너지고, 규범이 실종되고 있다.

사회가 잘 유지되고 존속되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하다. 질서를 위해 도덕과 윤리, 법과 제도, 그리고 상식이 필요하다. 좋은 사회는 이러한 사회적 규범들이 잘 작동되는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월한 규범들이 살아남아 잘 전승되어야 후일에 더 훌륭한 사회로 발전한다. 그리고 좋은 문화를 갖게 된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는 사회적 규범의 위기에 처해 있다. 그 위기의 일차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물론 어른들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 어른들이 없다는 개탄의 소리가 높다. 요즈음 어른들이 야단치는 악역을 담당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싫은 소리를 하다가는 꼰대가 되고, 미움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성찰해 보면, 현대인의 심리적 경향과도 연관이 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존중의 욕구와 관련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Abraham Maslow)는 인간은 다섯 가지의 욕구를 추구한다고 설파하였다. 생존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 다음으로 안전 욕구가 있다. 그리고 사회적 욕구인 애정과 소속의 욕구, 자기 존중의 욕구, 그리고 자아실현의 욕구를 단계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 존중의 욕구란 누군가로부터 높임을 받고 싶고, 주목과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다.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명예욕, 권력욕 등도 이 단계에 속하며, 더 높은 차원의 자신감, 독립심, 자유 같은 자존감도 이에 속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자기 존중의 욕구는 사회적 활동을 하는 인간으로서 자기를 완성하는 원천이며, 자신을 분출시키는 엔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이 자기 존중 욕구가 자신감을 잃은 것 같다. 개인의 인권이 괄목할 만하게 고양되고 사회적 가치가 다원화되면서 소극적인 욕구로 변해 버렸다. 타인을 존중하는 것은 좋으나, 공동체의 질서와 이익에 반하는 경우까지 침묵하고 있다. 자신 있게 바른 주장을 펴고 공동체를 위해 외부 지향적인 실천 행동을 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자기 생각을 내부 지향적인 자기애로 축소 시키고, 폐쇄적인 불간섭주의에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있다. 그런 가운데 나르시시즘적 팬덤 문화는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자기 주변의 소수 몇 사람이나 작은 집단으로부터의 지지에 만족하며, 공동체 전체의 가치를 외면한다. 통합기능을 해야 할 정치권에서조차 이런 현상이 뚜렷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선진국이 되었다. 그러나 졸부 같은 선진국이 아니라 품격 있는 선진국이 되기 위해 반듯하게 사회적 규범이 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제2의 도약을 위해 사회적 자본을 탄탄히 해야 한다. 그중의 하나가 사회적 규범이다. 거짓, 부도덕, 폭력, 권력남용, 불법 등의 행위자에 대해서는 강력한 사회적 눈총이 있어야 하고, 이 때문에 그 사람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게 하여야 한다. 조그만 악행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단호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긍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 모두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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