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꾼 김원길 대표
코로나發 스트레스, 트롯으로 해소한 일등공신
허리통증 경험 살려 고양시와 '건강 전도사' 준비
구두 장인에서 영업의 달인까지 명성 얻어

국내 컴포트 슈즈의 대명사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가 경기도 일산동구 식사동 매장에서 인터뷰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복희 기자]
국내 컴포트 슈즈의 대명사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코로나19로 공장은 문을 닫아야 했고 사람들은 집밖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없었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초를 치러야 했다. 대한민국 구두 장인(匠人)이 창업한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구두를 사기 위해 매장을 찾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는 수준이었다. 연매출 400억~500억원을 달리던 바이네르는 2년 만에 매출이 반으로 쪼그라들었다. 전국 60여개 매장에서 한 달에 올린 매출이 잘 나갈 때 1개 매장에서 올린 매출액과 비슷할 정도였다.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는 결국 수년 동안 들어왔던 보험과 골프회원권 등 돈이 될 만한 것을 처분해 직원들 봉급을 챙기면서 버티었다. 직원들도 절반 가까이 내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지난 3년간 그는 천당과 지옥을 오갈 정도로 고통에 시달렸다. 이 과정에서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셔야 했고 결국 허리통증으로 잠자리에서 일어설 수 조차 없었다. 병원을 수차례 오가며 처방전을 받았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결국 주치의를 자처한 한 고마운 의사의 조언이 그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운동요법을 통해 허리를 낫게 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소망을 품기에 이르렀다.

기자는 최근 경기도 고양시 소재 바이네르 본사에서 김원길 대표를 만났다. 구두 장인(匠人)인 김 대표는 학력이라곤 중졸이 전부이나 아이디어맨으로 통한다. 가방끈은 길지 않지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고, 남들이 사소하게 보는 문제도 매사 함부로 넘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업경영을 통해 얻은 지식과 경험을 세상과 나누고자 부단하게 노력했다. 그러던 터에 코로나 후유증으로 온 국민이 시름시름하고 있을 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방송사 사장에게 아이디어 하나를 건넨 것이 트롯 열풍을 일으켰고 김빠진 세상에 신바람을 일깨우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시작된  ‘미스터트롯’ 열풍은 세대를 넘어 전국민들에게 힐링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제가 20여 년간 효도 잔치를 하기 위해 공연을 기획하고 가수들을 섭외해 전국을 돌았습니다. 그런데 종종 행사를 총괄하던 저한테 노래를 시키는 분들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남의 노래만 불렀는데 해가 바뀌어도 매번 그렇게 진행하니 식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매년 한 곡씩 직접 작사 작곡을 해서 노래를 불렀더니 반응이 괜찮았어요. 그리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도 소규모로 노래자랑을 한 뒤 우승한 분에게 노래를 작사 작곡 해 선물로 드린다고 했더니 엄청 반응이 좋았어요. 노래 하나를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힘듭니까. 그래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모 방송국 사장에게 제안을 했고, 때마침 코로나로 야외활동을 못하게 된 사회상황과 맞아 떨어져 대박을 친 것입니다.”

1961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서산에서 구두방을 운영하는 작은아버지를 도와주면서 구두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구두방에 취직을 했지만 구조조정으로 쫓겨 난 뒤 설악산에서 신혼여행객들의 짐을 들어다주는 일에서부터 분재농장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했으나 결국 구두공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1989년 케리부룩에서 일할 때다. 당시 영업관리를 하면서 인천백화점에 어렵사리 입점을 시켰는데 한 달 만에 퇴출 통보를 받았다. 월 매출이 다른 업체의 5분의1밖에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백화점을 찾아가 한 달 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한 뒤 백화점 매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자, 여러분 케리부록 CM송 부르면 구두를 그냥 드립니다”라고 외쳤다. 당시 “허리를 미끈하게 펴고~ 무릎을 쭉 뻗으면~ 케리부룩 케리부룩 예쁘게 걸어요~”라는 TV CM송이 꽤나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해서 올린 한 달 매출액이 무려 1억1000만원. 인천백화점 케리부룩 매장의 당시 한 달 매출액의 스무배를 올린 것이다. 이 것을 계기로 뉴코아, 롯데, 신세계 등 서울 시내 백화점에 속속 입점을 했고 이후 그는 ‘영업의 달인’으로 세상에 알려진다.

이런 여세를 몰아 용산에 자신의 이름을 따 ‘원길’이라는 간판을 걸고 선심(구두의 앞코에 들어가는 부속)제조회사를 차렸지만 쉽지 않았다. 외상값으로 인해 빚만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불면의 나날이 계속됐고 급기야 극단적 선택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때마침 한 지인의 도움으로 부도위기를 넘겼다. 이후 회사이름을 ‘안토니’로 바꾸고 1994년 세계적인 구두 회사인 바이네르 한국독점 판권을 따 낸데 이어 2011년 아예 바이네르 브랜드를 통째로 인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육을 살려야 건강도 젊음도 유지

지난해 5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후 첫 주말나들이로 바이네르 매장을 방문해 구두를 구매하면서 ‘대통령의 구두’로 알려져  ‘반짝 특수’를 누리기도 했다. 김 대표는 "대통령의 이런 중소기업사랑이 중소기업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정부를 비롯해 관료나 국가 지도자들이 기업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국경제의 미래가 밝아지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요즘 사업에 대한 흥미보다 건강에 더 관심이 많다"며 "코로나로 회사매출이 쪼그라들면서 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셔야 잠이 들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는 사이 허리통증이 심하게 찾아왔고 지금까지 해 오던 모든 사업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어느 날, 제가 쓴 책을 봤다는 의사선생님을 만났어요. 주치의를 자처한 의사선생님께서 병원에서 허리치료는 불가능하다며 운동을 권했습니다. 그는 몸을 지탱하는 게 근육이라며 근육은 안 쓰면 녹이 슬고 퇴화하면서 통증이 시작된다는 거예요. 허리든 무릎이든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이를 방치하면 디스크가 오고 결국 척추가 무너진다는 것이 의사 선생님 조언입니다.”

김 대표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몸을 지탱할 만한 가구를 붙들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근육 만들기에 돌입했다. 어느 날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또 다시 허리통증이 찾아왔다. 그래서 의사선생님을 찾아가 따지듯이 물었다.

“의사선생님이 하루 먹는 술이 얼마냐고 물어 하루 소주 한 병씩 일주일에 6병을 먹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알코올이 근육을 망가지게 하고 결국에는 근육이 몸을 지탱하지 못하니 적당하게 마시라고 권했습니다. 이후 2개월간 술을 끊고 근육운동을 하자 허리 통증이 사라졌습니다. 건강은 물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근육을 살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몸으로 터득한 셈이지요.”

김 대표는 우리나라 60대 이상은 허리 때문에 고생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근육이 건강해야 신체 기능 전체가 원활하게 돌아간다는 설명이다. 남아 있는 근육을 강화해 새로운 근육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이다.

“의사 말대로 우리 몸 전체의 근육을 유지하거나 살리기 위해 춤이 제일 좋은 것 같아 고양시장에게 춤 경연대회를 하자고 제안했어요. 여기에 뜻이 있는 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으자고 했더니 좋다고 하시더군요. 근육 살리기 춤은 혼자보다 3명씩 조를 짜서 하면 훨씬 효과적일 것 같아 고양시와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1984년 전국기능경기대회 제화부문 동상을 수상해 장인의 반열에 오른 그는 틈틈이 시간을 내 <힘들어도 괜찮아(2018)>,<불타는 구두를 신어라(2011)> 등 두 권의 책을 냈고, 자랑스러운 중소기업인상(2012)과 철탑산업훈장(2012) 수상에 이어 2022년에는 공주대학에서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헤어지면서 악수를 나눈 그의 손은 15세 때부터 구두를 만들어온 수십년 세월을 반영하듯 굳은 살로 채워져 있었다. 구두를 한 손에 올려놓기만 해도 잘만든 구두인지를 가늠할 수가 있다고 한 그의 말을 떠올리며, 발 편하기로 알려진 바이네르 구두 한 켤레를 사 신을 요량으로 인근 매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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