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IPO 시도, 두번째 실패
거래소, 상장 예비심사 미승인
신창재 회장의 IPO 시도, ‘전술 혹은 꼼수’?
국내외 법적 분쟁 장기화, IPO ‘백년하청’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교보생명의 IPO 실패를 두고 '신창재 리스크'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시장의 예상대로 교보생명의 코스피 입성이 또 다시 좌절됐다.

지난 8일 한국거래소는 상장공시위원회에서 진행된 교보생명의 상장 예비심사 결과, 미승인으로 결론 내리고, 이를 공시했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12월 21일 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했으나, 무려 6개월이 지나 유가증권시장에 발을 들이지 못 한다는 결정을 받게 된 것이다. 통상 예비상장심사를 신청한 후 45(영업)일 이내에 상장심사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시기로는 2개월 조금 넘게 걸리는 게 대체적인 관행이다. 그러나 교보생명은 6개월이 훌쩍 지나서 지나서야 미승인 된 결과를 받게 된 만큼 거래소도 고심했다는 얘기다.

이같은 결과를 두고 금융시장에서는 ‘신창재 리스크’, ‘전술 혹은 꼼수’가 가져온 결과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향후 교보생명과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해 제2 주주가 된 어피너티 컨소시엄(이하 어피너티)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의 코스피 진입은 ‘백년하청(百年河淸)’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교보생명 “어피너티 몽니·탐욕 탓”

이번 거래소의 미승인 결정은 교보생명 최대주주 신창재 회장과 2대 주주이자 재무적 투자자(FI)인 어피니티 간 분쟁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양측이 지난 2018년부터 벌이고 있는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 특정 조건에 지분을 되팔 수 있는 권리) 분쟁 탓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끝모를 분쟁이 향후 경영안정성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어 거래소가 승인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교보생명은 이번 상장 예비심사에 적극적이었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이날 상장공시위원회에 직접 참석, 상장 필요성과 당위성을 비롯 예비 심사의 주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배구조 안정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거래소의 미승인 결정이 나오자 교보생명은 즉시 입장문을 냈다. 교보 측은 “상장 예비심사 단계에서 미승인 판정을 받은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계속된 몽니는 결국 상장 예비심사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고 마침내 회사와 주주,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혔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모든 책임은 어피니티측에 있으며 더 큰 부메랑으로 되돌아 갈 것"이라고 어피너티 측 책임에 방점을 뒀다.

아울러 교보는 “금융지주사의 초석을 다지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하루 속히 주주 간 분쟁을 마무리하고 재차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건 분명하다”면서 “어피너티는 더 이상 명분 없는 탐욕에 사로잡혀 무용한 법적 분쟁으로 IPO를 방해하지 말고 2대 주주로서 회사가치 제고를 위해 적극 협조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어피너티 “신 회장, 위법·부당한 다툼 초래”

지금까지 반응하지 않았던 어피너티 측도 이날 내놓은 입장문에서 “시장의 예측대로 교보생명이 상장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주주 개인의 분쟁에서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무리하게 IPO를 추진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며 "결과적으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사필귀정으로, 교보생명은 진정 대주주 개인의 이익이 아닌 회사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어피너티는 “신 회장의 위법하고 부당한 다툼으로 인해 장기간 발생한 분쟁의 종국적인 해결과 교보생명의 성공적인 IPO를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신 회장의 성실한 의무이행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신 회장을 공격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교보는 올해 상반기 상장을 목표로 지난해 12월21일 3년여 만에 기업공개(IPO)에 재도전했다. 그러나 2대 주주 어피너티가 지난 2월 신 회장을 상대로 국제상업회의소(ICC)에 풋옵션 의무 이행을 요청하는 2차 중재를 신청했다. 이로써 시장이 예상한 바와 같이 거래소에 경영안정성이라는 문제를 상기시켰고, 결과적으로 교보생명 상장은 미승인 된 것이다. 교보생명 지분 33.78%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신 회장과 2대 주주인 어피니티(지분율 24%) 간에 경영권 분쟁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 시행세칙에 따르면 거래소는 특허, 경영권 등과 관련해 소송이나 분쟁이 발생한 상장신청인의 경우 그로 인해 기업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최대주주 등의 지분율, 경영권 분쟁 등에 비춰 기업경영의 안정성이 현저하게 저해되지 않는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경영권 분쟁으로 인해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결국 주주 간 분쟁의 원인을 제공한 신창재 회장이 경영 리스크를 교보생명에 그대로 전가, 이번 상장예비심사에서 승인이 나지 않았다는 게 어피너티의 주장이다.

‘백기사’가 ‘걸림돌’로

양측 간 분쟁의 기원은 15년 전에 시작됐다. 2007년 10월 10일 신 회장과 국제 사모펀드인 코세어 캐피탈과 최대주주에게 주식매수를 요청할 수 있는 풋옵션이 포함된 주주 간 계약을 맺었다. 이후 스탠다드차타드 PE(현재 어펄마 캐피탈), 캐나다온타리오주 교직원 연금펀드와도 같은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2012년 9월 어피너티 컨소시엄은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교보생명 지분 24%를 인수했는데, 이때 신 회장은 어피너티 컨소시엄과도 풋옵션이 포함된 계약을 맺은 것이다. 당시 인수가는 주당 24만5000원으로 총액 1조2054억원이었다.

이처럼 신 회장이 풋옵션까지 제공하면서 FI를 확보한 데는 이유가 있다. 경영권 방어 때문이었다. 교보생명 지주였던 대우그룹이 외환위기로 해체되면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관리하게 된 교보생명 지분율이 신 회장 지분율을 넘어섰던 것이다.

사실 2004년 기준 신 회장 일가 5명이 교보생명 지분 총 58.3%를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 방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후 신 회장의 삼촌인 신용희 씨와 그의 아들 신인재 씨, 신 회장의 동생인 신문재 씨, 누나인 신영애 씨 등이 사업자금이나 개인적 자금 마련 등의 이유로 교보생명 지분을 시장에 야금야금 매물로 내놨다. 그러다보니 교보생명 경영권 확보 차원의 최소 수준인 1/3(33.78%)까지 신 회장 지분율이 낮아진 상태다. 신인재 씨, 신영애 씨, 신경애 씨 등 특수 관계인까지 포함한 지분율을 다 합해 봐야 39.4%밖에 안 된다. 신 회장이 교보그룹의 핵심축인 교보생명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신 회장은 ‘백기사’가 필요했다.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FI가 절실했고, 그래서 2015년 9월까지 상장하지 못하면 이들의 지분을 되사주겠다는 풋옵션을 넣게 된 것이다. 그 대가로 FI들은 의결권을 신 회장에게 위임했다.

당시 FI들이 신 회장의 든든한 배경이 된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약속한 2015년 9월 상장 기한을 넘기면서 바뀌었다. 보험사들에게 비우호적인 시장 상황이 한동안 이어진 데다 이에 따라 교보생명은 IPO에 소극적이었다. 마침내 견디다 못한 어피너티는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했다. 어피너티가 신 회장에게 요구한 풋옵션 행사 가격은 주당 40만9912원. 모두 2조122억원에 달했다.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 풋옵션 이행을 신 회장은 거부했다. 이에 대항해 어피너티는 2019년 3월 국제상사중재위원회(ICC, 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에 중재를 신청했다. 앞서 어펄마도 2018년 11월 신 회장에게 주당 39만7893원에 풋옵션을 행사했지만 거절당해 ICC에 중재를 요청한 바 있다. 이때부터 교보와 어피너티 사이의 분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끝 모를 분쟁, 여전히 ‘진행형’

어피너티의 중재 신청 2년 반만에 지난해 9월말 ICC의 첫 판정이 나왔다. ICC는 신 회장이 어피너티와 맺은 풋옵션 계약을 이행할 의무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다만 단서를 붙여 어피너티가 제출한 주당 40만9912원의 가격은 신회장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ICC의 이 같은 판단은 양측이 모두 인정하는 공정가격(FMV, Fair Market Value)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계약상 풋옵션을 행사할 때, 30일 이내에 신 회장과 어피너티가 각각 FMV를 산출해 평균가격을 내야 했다. 이에 어피너티는 딜로이트안진을 평가기관으로 위임, 가격을 낸 반면 신 회장측은 풋옵션이 무효라며 평가기관을 선정조차 하지 않았다.

불똥은 국내 법원으로 튀었다. 2020년 교보생명은 어피너티의 지시에 따라 딜로이트안진이 교보생명 주식의 풋옵션 가격을 부풀렸다고 보고 부당 공모 혐의로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금까지 모두 9차례에 걸친 법적 공방이 있었다. 이후 지난해 12월 검찰은 어피너티와 딜로이트안진 관계자들에게 징역 1년~1년6월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이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교보생명은 “1심 무죄 판결은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 불충분이지 딜로이트안진이 산출한 풋옵션 금액이 유효하다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고,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풋옵션 가치평가를 한 딜로이트안진과 교보생명 간 소송은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이에 맞불을 놓듯 1심 판결에 힘입은 어피너티는 지난 2월 ICC에 2차 중재를 신청했다. 어피너티는 “신 회장이 풋옵션 의무 이행을 계속 거부하고 있어 새로운 중재를 신청하게 됐다”면서 “당초 ICC판정은 풋옵션 매매대금을 청구한 것이고, 이번 중재 요청은 풋옵션 가격 제시 등 의무 이행을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2차 중재를 통해 이행을 강제하고 계약 위반과 의무 이행의 부당한 지연으로 입은 손해에 대해서도 배상청구 하겠다”고 강수를 뒀다.

분쟁 끝내야 교보생명 IPO 가능

이번 거래소의 미승인 결정은 이미 신 회장도 예상했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강하게 상장을 밀어부친 것은 어피너티와의 분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속내에서다. 국내외 각종 법적 분쟁에서 교보생명이 풋옵션 의무를 다하기 위해 IPO를 추진했으나 어피니티로 인해 IPO가 무산됐고, 모든 책임은 어피니티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전술 혹은 꼼수’라는 것이다.

실제로 어피너티는 신 회장에 풋옵션을 행사하며 주당 가격으로 40만9000원을 제출했다. 그러나 신 회장은 해당 가격이 터무니없다는 입장이다. 주당 가격이 너무 높아 풋옵션 행사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교보생명의 주당 가격을 40만원대 이하로 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거래소가 상장을 승인하지 않아 교보생명 입장에선 풋옵션 행사에 응하지 않을 명분을 얻었다”며 “설사 상장이 이뤄지더라도 최근 증시 부진 등으로 공모가가 재무적투자자들이 투자한 금액의 절반 수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 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양측 간 분쟁의 요체는 교보생명의 주요 주주인 어피너티컨소시엄, 어펄마캐피털은 교보생명이 과거 IPO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풋옵션을 행사한 반면 신 회장은 재무적 투자자들이 요구한 주당 가격에 동의할 수 없다며 풋옵션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결국 신 회장이 어피니티와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려고 ‘버티기 행보’를 고수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IPO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어피니티와 협상을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렇듯 극적인 반전이 없는 상황에서 교보증권의 두 번째 IPO 시도 실패로 양측 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어피니티가 ICC에 2차 중재를 신청한 데다 안진 회계사에 대한 형사재판 2심도 진행 중”이라며 “IPO가 양측 분쟁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카드였지만 최종 무산돼 양측의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교보생명의 IPO는 ‘백년하청’이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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