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33.4%, 그러니까 10인 가구 가운데 3가구가 1인 가구인 요즘 돌봄로봇이 꽤나 많이 보급이 되고 있다. 주변에서도 AI반려 로봇 ‘차니’를 도입하여 어르신과 장애인을 돕고 있는 걸 본적 있다. 차니는 개인별 맞춤형 알림, 애교스런 멘트와 말동무 역할, 위험신호 감지, 비상시 응급 연계 등과 같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회가 점점 고령화되고 돌봄 인력은 줄어들다보니 돌봄 로봇 같은 기계가 사람을 돌보는 일이 이젠 드물지않게 된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돌본다는 것이 지금 사회에서 절실히 필요하지만, 특히 육체적 돌봄 못지 않게 ‘정서적인 돌봄’ 또한 중요한 일이 되고 있다. 헐리우드 영화 ‘허(Her)’에서처럼 사람들은 이제 기계나 로봇, AI라도, 소통과 애정어린 관심의 도구가 곁에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가식없고 꾸밈없는 관계를 주고받는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돌봄로봇이나 케어로봇은 디지털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가장 취약한 감성을 겨냥한 것이다.

챗GPT와 같은 고도의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앞으로 인간을 돌보는 로봇 기술은 더욱 발달할 것이다. 최근에 뉴스를 보니, 한 단계 더욱 발달한 GPT-4도 등장했다고 한다. 이런 인공지능 기술들은 이제 우리 인간의 섬세한 감성이나 표정까지도 읽어내는 수준에까지 와있다. 그럴수록 돌봄에 필요한 로봇은 우리와 더욱 밀접하게 다가올 것이다. 더욱 정교하고 편리해지면서 우리의 감정을 읽어내 더욱 촘촘한 언어들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은 듯, 허전하긴 마찬가지다. 그래서 과연 진정한 돌봄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돌봄을 갈망하는 가장 큰 감정적 요인은 ‘외로움’이다. 세상은 스마트해지고 즐길거리는 많아졌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사실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면 남들 보기에 그다지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지인들도 사는게 참 힘들다고 한다.

매스컴에서는 더 좋은 물건과 생활도구들을 소유하면 행복할 거라고 끊임없이 광고를 쏟아낸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금방 싫증이 난다. 매스컴과 상업자본들은 더 좋은 것이 많다고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고 꼬드긴다. 그러나 마음은 늘 텅 빈 것같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뒷모습은 그런 지독한 상실감으로 그늘져있다. 특히 주위로부터 고립되거나, 몸과 마음이 쇠잔해질수록 그런 결핍의 감정은 더욱 짙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나’를 다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발견하려 애쓰고, 재산이나 물건, 친구에게서 ‘외로움’의 처방을 찾기보단, 내 안에서 ‘나’를 찾고 잔잔한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를 사랑하며 ‘나’와의 긴밀한 유대를 통해 삶의 평형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살다보면 할 수 밖에 없는 거짓말도 조금 줄이고, 안쓰러운 이웃을 위해 다만 얼마라도 기부하며, 되도록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만나는 상대방을 가급적 칭찬해주는 것, 그런 작은 것부터 실천해보자. “사소한 것이라 여기던 것을 새삼 뜯어보니 대단한 것이더라”는 말이 실감날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나’를 바라보며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파악하는 것, 곧 ‘나’이자 ‘타자’인 나를 직시하려고 애쓰는 존재적 태도가 필요할 수도 있다. 살다보면 간혹 이런 사르트르의 시선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존재적 삶이란 알고 보면 별거 아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던 슈마허의 말처럼 진짜 행복은 작지만 보이지 않는 나의 내면에 있다. 이건 돌봄로봇이나 영화 ‘Her’ 속의 AI 애인으로도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다. 글쎄, 혹시라도 모르겠다. 돌봄로봇 기술과 GPT 기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해서, 정말로 인간의 절박한 내적 고뇌와 갈급함까지 해결해줄 수 있을지…. 하지만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그건 비극이다. 인간의 자리를 송두리째 기계에 내어준 종말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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