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을 위해 '대한의 꽃'이 된, 불운의 섹시스타 윤인자
맥아더 참모 루시 중령 품어 위기의 대한민국 구해

[중소기업투데이 신미경 기자] 한국전쟁에서 잊을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국가 보훈처로부터 ‘6‧25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바 있는 고 현봉학 박사와 북한군의 기습에 밀려 낙동강 전선마저 위협을 받을 당시 한국 해군의 요청을 받아들여 대한민국 최후의 관기(官妓)가 된 배우 고 윤인자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주가 6.25전쟁 기념일이었다. 이에 맞춰 두 전쟁영웅의 이야기를 각 2회씩 소개한다.

배우 윤인자
루시 중령

“윤인자씨, 이건 튕기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닙니다. 루시 중령을 만나주십시오. 그는 한국 해군의 모든 지휘통솔권을 지닌 실질적인 권력자입니다. 이건 국가를 위한 애국행위입니다. 그 사람은 한국 해군과 해병대의 운명을 쥐고 있습니다. 우리 손원일 제독께서도 보급품을 타고, 탄약을 타고, 배를 얻어오기 위해서는 그 사람에게 사인을 받아야합니다.”

해군참모총장의 부관인 휼병감 이민석 대령은 배우 윤인자를 찾아가 이렇게 애원했다. 루시 중령을 만나달라고...

6‧25가 터지기 직전 윤인자는 ‘황진이와 지족선사’라는 연극을 통해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톡톡히 타고 있었다. 루시가 유인자를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1950년 8월의 어느 날, 부산 광복동에 문을 연 미국 장교클럽에 당시 외무부장관을 비롯해 경남도지사 부산시장, 해군참모총장, 헌병 사령관 등 당대 내노라 하는 거물들이 참석했다.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은 미 해군 장교 한명을 대동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장교들을 위문하는 자리였다. 이날 밤 윤인자도 초대장도 없이 친구들과 함께 우연하게 미군 장교클럽을 찾았다. 20대 후반의 윤인자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의 눈에 띤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미 해군 장교가 바로 맥아더장군의 특사인 코맨더 루시 중령이었다. 그는 한국 해군작전과 관련, 맥아더는 미 극동해군사령관인 터너 조이 제독과 협의한 뒤 그 결과를 바로 루시 중령을 통해 한국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에게 알리는 막강한 권력자였다. 이날 손 제독의 제안으로 윤인자는 루시 중령의 댄스 파트너가 되어 운명적인 만남을 이루게 된다. 이날 밤 루시는 윤인자에게 푹 빠지고 만다. 손 제독은 미군장교클럽에서 윤인자를 만난 지 3일 만에 다시 찾은 이유는 이렇다.

“현재 우리민족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과 대구에서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만약 그 전선이 무너지면 우리는 배를 타고 제주도나 일본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윤인자씨가 애국하는 마음으로 루시 중령을 달래주시오...내 동생 같은 처녀에게 이런 부탁을 해서 미안하오.” <‘나는 대한의 꽃이었다’ 中>

손원일-루시-윤인자 삼각 트리오

국력이 약하면 계급이나 직책도 무용지물, 전시에 민간인이 해군사령관인 제독의 청을 거역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손 제독은 윤인자에게 인간적으로 애국심에 호소했다. 결국 끈질긴 설득 끝에 윤인자를 루시에게 연결한 손 제독은 전시에서 루시를 적극 활용했다. 루시 앞에서만큼은 계급장도 뗀 손 제독. 그는 루시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렇게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 손 제독의 이런 정성은 루시로 부터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하겠다는 맥아더의 특명을 가정 먼저 접하게 되면서 이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하게 되는 최초의 주인공이 된다. 한국의 해병대가 인천상륙작전에 적극 참여한 것도 루시가 적극적인 중재를 한 결과다. 이듬해 여름 이승만 대통령이 진해 별장으로 루시 사령관을 불렀다. 그리고 루시에게 태극무공훈장에다 덤으로 대한민국공로훈장을 수여했다.

“캡틴 루시, 정말 고맙소. 그대는 우리 대한민국 해군과 해병대를 개전 초기부터 돌봐주었소. 그리고 우리 해병대가 통영 상륙작전은 물론 맥아더 사령관을 도와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소. 우리 애드미럴 손이 그 작전을 성공시키고 작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힘껏 도왔소. 우리 대한민국이 서울을 두 번씩이나 찾는데 캡틴 루시의 공이 절대적이었소. 나와 대한민국은 그대, 캡틴 루시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오.”

이어 이 대통령은 “내가 오늘 윤인자씨에게 따로 훈장은 못주었지만 윤인자씨는 애국자입네다. 암, 우리 대한의 꽃이지, 대한의 꽃이야!” 이날이 1951년 8월 6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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