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비틀즈의 존 레논이 신곡을 발표한다고 한다. 1980년에 이미 사망한 가수가 어떻게 신곡을 발표한다는 것일까? 인공지능 시대이니까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인공지능 기술로 존 레논의 목소리를 추출하고, 이를 모사해서 마치 존 레논이 육성으로 부른 것처럼 음반 제작을 할 수 있다. 소위 AI페르소나를 탄생시키는 기술이다.

AI 페르소나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가상 캐릭터다. 이 인공지능 캐릭터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상의 인격체다. 인공지능 캐릭터, 즉 AI 페르소나는 언어, 감정, 성격 등과 같은 요소들을 통해 게임, 가상 비서, 고객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용될 수 있다.

AI 페르소나의 기원은 20세기 초반 컴퓨터 과학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에 대한 이론과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AI 페르소나가 탄생한 계기는 사용자들과 교감(인터렉션)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기존의 인공지능은 대부분 기능 중심적이고, 일방적, 수동적인 지식 기반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보다 인간처럼 대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을 원했다. 그래서 고안해낸게 AI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과학자인 ‘미쉘 황’은 어린 시절에 10년 넘게 쓴 일기를 챗GPT에 학습시켜 어린 시절의 나와 실시간 대화를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본인의 어린 시절을 학습한 챗GPT에게 사랑과 자유에 대한 생각을 묻고, 어린 시절 생각했던 고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 시절의 본인에게 지금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라고 시키자, 그 ‘본인’은 지금의 미쉘 황에게 “어린 시절 가졌던 꿈을 여전히 쫓고 있는지, 삶이 행복한지” 등을 물었다. 그리고 현재의 ‘본인’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라”며 격려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미쉘 황은 “과거 어린 시절의 나로부터 진심과 사랑이 깃든 대화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그간 잊고 있었으나, 여전히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었던 진정한 나의 정체성을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그는 새로운 ‘디지털 페르소나’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지금은 고인이 된 사랑하는 사람이 남긴 말이나 글을 인공지능에 학습시킨다면, 마치 살아 있는 듯한 고인과 대화를 나누는 일도 가능하다. 이런 기술을 이용하면 치열한 생존 경쟁이 펼쳐지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진심과 공감으로 위로를 해줄 수 있는 AI 챗봇 케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그저 바람직하기만 할까. 일부에선 죽은 사람을 AI 페르소나로 재현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의 생전 사생활을 침해하고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사자의 얼굴, 목소리, 페르소나에 대한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그런 문제까지 겹쳐 혼란스런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사망한 사람은 자신들의 AI클론 활동에 대해 어떤 통제권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내가 죽은 후 나를 AI 페르소나로 환생시켜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나 포르노 영화에 출현시키려 한다면? 물론 어느 누구도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널리 알려진 유명인은 죽어서도 편할 날이 없을 것이다.

또한 죽은 자를 소환시키는 기술의 명분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해선 안 될 경우도 많을 것이다. 유가족이 상실과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방해받거나 지연될 수 있어, 고인에 대한 애도라기보단 오히려 해를 끼칠 수도 있다. 나아가서 이러한 AI 페르소나 남용은 불법적 접근이나 악용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그렇잖아도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 보호와 보안에 대한 우려가 세계적으로 높은 상황이다. 분명히 기술 남용으로 인한 부작용을 방지하는 적절한 규제와 관리가 필요하다. 인공지능 기반의 서비스와 기술은 인간의 삶에 더 많은 가치를 가져다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 고유의 경계를 넘지 않는 적정한 선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I 페르소나’도 마찬가지다. 죽은 자까지 환각처럼 환생시키는 기술의 적정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삶과 죽음이 인간 존재의 조건이라면,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 또한 그 조건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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