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의료계의 한 연구 결과는 사람에 따라선 소셜 미디어를 끊으면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본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소셜 미디어가 우울증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트위터 등을 한다. 마음이 불안해지면 앱을 열고 화면을 넘기면서 고립감과 불안감이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럴 때면 오히려 정반대 상황이 벌어진다. 불안감을 가라앉히려고 하지만 그 불안의 정도는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불안의 쳇바퀴에 짓눌려 사는게 일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경우 어떤 전문가들은 ‘명상’을 권하기도 한다. 말하고 싶은 충동이나,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떨고 싶다는 욕구, 화려한 영상과 이미지로 채색된 숏폼으로 마음을 가볍게 하고싶은 욕망을 억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인의 불안은 무엇보다 지나친 미디어 홍수 탓이라고 해야겠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과잉 소통, 혹은 그로 인한 일방적 카타르시스가 빚은 불통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옆에 있거나 눈에 띄는 가까운 곳에 있으면 명상이나 사유는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SNS 등은 분명 유용한 사회적 매체이자, 대중적으로 꼭 필요한 유통네트워크다. 가입과 접속의 장벽도 없다. 그래서 현대인에겐 그 보다 더 좋은 소통과 접속 도구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한편으론 끊임없는 접속으로 인해 제대로 고독해질 자유마저 빼앗긴다. 나를 위한 사유 공간은커녕, 늘 타인의 삶과 접속되어, 그것에 맞춰진 매 순간을 살아간다.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진정한 실존적 삶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거기서 마치 연기처럼 모락모락 나의 내면에는 근원적인 불안이 싹뜨는 것이다.

불안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상징(아이콘)이다. 특히 ‘코로나19’를 계기로 불안은 더욱 커져서 마치 공기처럼 온 세상을 짓누르고 있다. 한국심리학회(Korean Psychological Association)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인의 3분의 2는 매우 심하게 불안해하거나, 어느 정도 불안하다고 답했다. 한국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불안장애를 겪고 있다. 그렇다보니 너도나도 대화라기보단 온갖 허접한 수다로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몸부림에 시달리고 있다. 페이스북이나 틱톡,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네트워크가 전성기를 구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젠 그것을 넘어서서 GPT 기술이 적용된 생성형 AI 챗봇이 그 자리를 대신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AI챗봇은 불안과 근원적 고립감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끝없는 수다의 상대가 될 것이다. 사람같으면 진저리를 칠만큼, 끝없이 이어지는 수다도 AI챗봇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어떻게든 불안감을 떨쳐버리려는 현대인의 배설구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지나친 수다와 말,말,말은 그 순간이 지나면 허탈함과 공허함만 남는다. 불안감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더 심해진다. 말을 많이 할수록 더 불안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2011년 마이애미대학교에선 지나치게 수다를 떠는 성향이 뇌파 불균형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뇌의 전전두피질 앞부분에 있는 좌엽과 우엽의 뉴런 활동 균형에 관한 실험이었다. 이상적으로 보면, 어떤 사람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좌엽과 우엽의 뉴런 활동의 양은 똑 같아야 한다. 그러나 비대칭, 즉 우엽이 더 활발하다면 말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 불균형은 곧 불안을 더 깊게 할 뿐이다. 온갖 소셜미디어는 그런 점에서 ‘불안’의 도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인은 SNS나 디지털 미디어의 효용만을 극대화하며, 타인의 세계에 과잉 노출되어 있다. 그럴수록 개인은 더욱 고립되고 단절되면서, 불안하고 파편화된 존재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내면의 세계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잠시라도 SNS나 스마트폰을 끄고, 입을 다문채 내면에 대한 성찰과 진단을 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탐구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런 순간에도 온갖 잡념이 의식의 정면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번잡함과 부대끼며, 이를 통제하고 극복하려는 노력도 의미가 있다.

주체적이고 현명한 소셜 네트워크 참여가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미 일상의 실용적 도구가 된 블록체인, 사이버 네트워크 또한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 시장에서 극도로 절제된, 책임있는 주체로 참여할 때 진정한 소통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나와 타인을 함께 관조할 수 있는 넉넉함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입을 다물고 잠시나마 SNS 전원을 끄자. 그러면 그 순간이나마 불안의 씨앗이 제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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