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반도체장비 對中 수출·투자 엄격 규제, 시장 지형 변동 예상
美 ‘CHIPS’법 구체적 조항 적용, “특히 중국내 한국기업들 영향 커”

중국내 공장을 두고 있는 SK하이닉스의 SSD 제품. [SK하이닉스]
중국내 공장을 두고 있는 SK하이닉스의 SSD 제품. [SK하이닉스]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올해 2분기엔 미국에서 신규 공장 건설을 위한 투자 금액이 증가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 금액은 정점을 찍고 감소로 돌아섰다. 미국의 리쇼어링과 자국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중 제재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내년 후반에는 대중 투자금액이 유럽·중동, 일본 등에 대한 투자 금액을 밑도는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는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중국의 공장 건설 프로젝트로는 2022~2024년에 모두 20건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나마 그 중 19건은 중국 현지 기업에 의한 투자다. 외국계 기업에 의한 안건으로는 1건, 즉 한국의 SK하이닉스가 미국 인텔에서 매수한 낸드(NAND) SSD 사업에 포함된 다롄 공장 확장 프로젝트 뿐이다.

이처럼 다국적 기업이 중국에서 신규 반도체 공장 건설을 주저하는 큰 이유는 역시 미국의 대중 제재다. 지난 2022년 10월에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중국을 염두에 두고 반도체 관련 제품(물품·기술·소프트웨어)에 대한 수출 관리 규제(EAR)를 강화했다.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첨단 반도체 제품 및 반도체 제조 장치의 수출을 엄격하게 제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을 포함한 반도체 제조 장치 관련 기업은 대중 수출 전략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미 미국의 3대 반도체 장비 기업들인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KLA를 포함한 기업들은 대중 수출과 투자를 급속히 줄이거나 중단하고 있다. 자사 제조 장치의 수출 외에도 장비 설치나 점검 등 각종 서비스를 중단한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 내의 설비 투자 및 공급체인은 크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그런 가운데 국제적인 반도체 전문가인 미국 터프츠대학교의 크리스 밀러 교수는 중국 나름의 대응책을 예상했다. 그는 특히 한국기업의 움직임에 주목하기도 해 관심을 끈다.

밀러 교수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규제는 기존의 중국 국내 공장의 증설 및 업그레이드를 위한 설비 투자를 부추길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한 추가 투자를 생각하고 있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며 “특히 중국에 생산 거점을 둔 한국 기업 등은 1년간의 (대중 투자 규제) 적용 제외 조치를 더욱 연장할 것을 (미국측에) 요청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들은 중장기적으로 아마도 5~10년에 걸쳐 생산 거점을 중국에서 한국으로 옮기는 계획을 실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의견을 내비쳤다.

그렇다면 미국의 대중 수출 관리가 강화된 2022년 10월 이후 중국의 반도체 제조 장비의 수입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실제로 중국의 수입 규모는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트레이드 아틀라스에 따르면 중국은 2020~2021년에 걸쳐 세계 반도체 제조 장치 수입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최대의 수입국이었다. 그러나 2022년 4분기(10~12월)에는 전년도에 비해 37%나 감소했고, 전기에 비해 28%나 감소한 67억 달러에 그쳤다. 이는 반대로 같은 시기에 대폭 수입액이 증가한 대만(121억 달러)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으로까지 떨어진 것이다.

 중국, 한국, 대만의 반도체 제조 장치(HS 코드 : 8486) 분기별 수입 추이(단위: 100만 달러) [자료= Global Trade Atlas]
 중국, 한국, 대만의 반도체 제조 장치(HS 코드 : 8486) 분기별 수입 추이(단위: 백만 달러) [자료= Global Trade Atlas]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은 2022년 10월의 수출 관리 규제 강화 이후 현저하게 감소했다. 중국의 가장 큰 반도체 장비 수입 상대국인 일본으로부터의 수입도 미국과 같은 시기를 기점으로 현저하게 감소했다.

이는 미국의 대중 제재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고려한 일본 기업들이 스스로 대중 수출과, 현지에서의 중국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판매를 억제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다국적 기업의 대중 투자를 주저하게 만드는 미국의 정책은 비단 대중 수출 관리 강화 조치만이 아니다.

이른바 ‘CHIPS’법에 근거한 자금 지원 프로그램과 관련, 그 수혜기업이 지켜야 하는 국가안보상의 가드레일 조항도 문제다. “특히 미국과 중국 모두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는 기업에 있어 향후 중장기적인 대중 투자 전략을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수혜기업들은 자금 수령일로부터 10년간 중국을 포함한 ‘우려국’에 대한 투자를 크게 제한받게 된다.

이 법안은 좀더 구체적인 규제안이 공시된 후 올해 안에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이는 첨단 반도체 시설에 대한 투자뿐만 아니라, 레거시 반도체 시설에 대한 투자, 특정 기술 및 제품에 관한 우려국 단체와의 공동 연구, 기술 라이선스 공여 등 매우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최근 해당 가드레일 조항의 목적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통해 “지원금을 받아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이 미래에 자사의 반도체 공급 능력을 더욱 높이는 경우에는, 우려국이 아닌 국가·지역에 대한 투자를 촉진할 생각”이라며 “꼭 미국에 대한 추가 투자를 요청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함으로써 사실상 대중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전문가와 업계 일각에서 “중국에서의 추가 투자를 억제하는 것이 세계 반도체 공급체인의 혼란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서도 분명한 선을 그렀다.

즉 “‘가드레일 조항은 소급 적용이 안 된다는 점에서 공급체인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도록 고려되었다”며 “중국 내에서는 첨단 반도체에 관해 기설 설비의 5% 이내 확장, 레거시 반도체에 대해서는 10% 이내 확장을 인정하며, 가동을 유지·계속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의 경우 줄곧 첨단 반도체까지 포함, 10% 이내 확장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지난 22일 미 상무부는 “첨단반도체에 대한 설비 확장 5% 이내”를 공식 통보해옴으로써 한국 기업들도 중국 내 투자에 대한 전략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이처럼 국제 반도체 시장은 미·중 갈등과 미국의 대중 제재가 수 년 내 시장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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