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객원 편집위원(한서대 교수)

박경만 본지 편집위원
박경만 본지 편집위원

이번에는 존 케리 미국 기후 특사가 중국에 갔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 이어,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온지 며칠 만의 일이다. 이처럼 워싱턴 최고위 관계자들이 마치 지금 아니면 안될 것처럼 줄줄이 베이징을 찾은게 벌써 두어달 전부터다. 문제는 가서 내뱉는 워딩 하나하나가 너무나 유화적이란 점이다. 그냥 유화적인게 아니라, “둘이 함께 세계를 경영해보자” 정도로 오해될 만큼, 36.5℃의 훈훈함이 느껴진다.

옐런 장관은 대놓고 ‘디커플링’을 지적했다. “양국에 재앙이 될 것이며,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실행할 수도 없다”고 했다. ‘미·중이 함께 할 수 없다’는 디커플링 대신, ‘서로 싸워봤자 피차 손해’라는 ‘디리스킹’을 선언한 것이다.

블링컨 국무 역시 “대립보단 소통”을 강조하며, 온화한 제스처를 보였다. 되레 중국이 “대만 건드리기만 해봐라”며 고자세를 보이는, 어색한 풍경이 펼쳐졌다. 보기에 따라선 트럼프 행정부 이전부터 10년 가깝게 이어져온 ‘중국 따돌리기’에 무슨 착오가 생긴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때 미 대선주자였던 존 케리가 굳이 서둘러 중국을 찾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말마따나 정말 ‘기후 변화’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중국 기후변화 특별대표와 ‘기후 변화에 따른 대응책’을 논의한다고 했지만, 또 다른 ‘기류 변화’의 시그널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정치인 뿐 아니다. 실리콘밸리와 월가의 리더들도 ‘선착순’ 마냥 중국을 들락거린지 꽤 되었다. 미·중관계가 그지없이 험악할 때도 일론 머스크 같은 이는 보란 듯이 상하이 공장을 오갔다. 머스크만이 아니다. 애플의 팀 쿡, 인텔의 패트릭 겔싱어, 제너럴 모터스의 메리 바라,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골드만삭스 데이빗 솔로몬 등등 일일이 거명하기조차 힘들다. MS 빌 게이츠는 시진핑과 독대까지 하며 ‘친한 사이’임을 과시했다.

보다 못한 ‘뉴욕타임즈’가 중국의 ‘방첩법’과 미·중관계를 거론하며 이들의 안위를 걱정했을정도다. 이 신문은 “이들 CEO들이 현지에서 열심히 탐색전을 펴고 있지만 ‘침묵이 금’”이라며 사실상 몸조심을 당부했지만, 이들의 행보는 거침없다. 머스크는 상하이 공장을 두고 “생산설비 증설”이니, “레벨5 완전자율주행”이니 하며 평소의 입담을 과시했고, ‘차이나 서밋’에 참석한 JP모건의 다이먼도 드러내놓고 “동서양이 디커플링보다는 디리스킹을 선호한다”고 했다.

하긴 유럽이나 사우디 등은 그전부터 중국과 밀착해왔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나 독일 슐츠 총리도 번갈아 베이징을 다녀왔다. 두 나라 모두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반대한다”면서 미국과는 선을 그었다. 이에 중국이 에어버스를 140대나 사겠다며 선심을 썼던 게 그 무렵이다.

물론 ‘냉전 2.0’을 기획하고 있는 군산복합의 미국 조야에게 여전히 중국은 ‘공공의 적’ 1호다. 이들은 옛 미·소 냉전과 달리, 핵무기 대신 초대형 AI를 전략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 와중에 챗GPT를 겨냥한 중국의 ‘어니봇’이 판정패함으로써 일단 체면도 세웠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늘 으르렁대던 두 나라가 말과는 달리, 그 액션은 늘 어색하기만 했다. 오른손, 왼손 하는 일이 달랐다고 할까. 올해 양국 무역은 사상 최대인 7000억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어찌된 영문인지, ‘칩스법’이니 ‘IRA’이니 하며 요란을 떨던 것과는 달리, 두 나라가 사고파는 물량은 갈수록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품목에 따라선 중국과의 교역이 반토막 이상 줄어든 한·중관계와는 딴판이다. 그 틈에 일본이 한국의 빈자리를 파고들며 재미를 보고 있다.

사실 곰곰이 뜯어보면 이해가갈 법도 하다. 미국은 애초부터 중국에 대한 ‘디폴트값’을 고쳐쓰기할 생각은 없었던게 아닐까 싶다. 지금 중국은 공산당 일당독재의 ‘사회주의민주’나,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로도 모자라, 극단적인 ‘시진핑 특색의 사회주의’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국제사회는 중국의 1인 중심 전체주의 따윈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중국의 경제적 팽창만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릴 따름이다. 14억 시장과 자본이야말로 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다.

하긴 그게 국제관계의 정석이다. 오로지 자국민의 이익과 실속만이 있을 뿐이다. 가치니 의리니, 동맹이니 하는 것도 실속을 차린 다음의 얘기다. 최근 미·중 간의 동선 역시 ‘국익제일주의’에 충실한 결과다. 중국과 서방, 일본 모두 마찬가지다. 자국민의 배를 불리는데만 골몰하며, 야비할 만큼 ‘속물적인 가치’를 능숙하게 계열화하고 있을 뿐이다. 보기에 따라선 파렴치하고 몰가치한 ‘실속 챙기기’라고 해야겠다. 허나 그게 국가 간 육도삼략의 현실인걸 어쩌랴. 신의나 가치만 운운하다간, 살벌한 각자도생의 낙오자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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