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쉬운 이자장사로 3분기 기업대출 대폭 증가
4분기 금융권, ‘리스크관리’ 기업대출↓...정부 지원책 내놔 유예
애꿎은 실수요자 가계대출↓ 우려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금융그룹들이 기업대출을 큰 폭으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금융권은 기업대출 증가에 따른 리스크 축소를 위해 4분기 기업대출을 줄일 방침이라 그렇지 않아도 최근 ‘레고사태’로 기업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더욱 돈줄이 말라버릴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에 퍼지고 있다.

다만 정부가 개입, 기업대출 축소와 자금경색의 해소를 위해 발벗고 나서는 상황이라 은행권 기업대출 축소는 유예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나비효과’로 애꿎은 가계대출 실수요자들은 되레 돈을 빌리지 못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손쉬운 ‘이자장사’, 기업대출 늘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3분기(6~9월) 우리-국민-하나-신한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은 54조원, 약 1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금융에 중점을 둬온 우리은행 기업대출액은 162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6조원(10.9%)이나 늘었다.

같은 기간 ▲국민은행 14조3000억원(9.6%) ▲하나은행 12조원(9.5%) ▲신한은행은 11조6000억원(8.6%) 증가했다.

우리은행은 중소기업 대출 9조6000억원, 대기업 대출 6조4000억원으로 중소기업의 비중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은행의 3분기 기업대출은 전분기 대비 4%, 지난해 말 기준 7.3%가 늘어난 162조9000억원이며 중소기업-대기업 대출 비중은 비슷했다.

하나-신한은행도 기업대출에 집중, 평균치에 가깝게 늘었다.

이처럼 은행권의 기업대출이 늘어난 것은 4대 금융그룹의 비이자이익을 상쇄하기 위한 방편이다. 4대 그룹 3분기 비이자이익은 총 1조8494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2조4484억원) 대비 32.3% 줄었다. 급격한 금리 상승 여파로 수수료, 유가증권, 외환·파생관련 수익이 크게 감소한 데서 비롯됐다.

같은 기간 신한지주의 비이자이익은 3536억원으로 전년 동기(5443억원) 대비 35%(1907억원) 줄었으며, 우리지주의 비이자이익은 순영업수익 내 10%에도 못미쳤다.

다만 하나지주만 유일하게 비이자이익이 늘었다. 3분기 3586억원으로 2분기(1750억원) 대비 104.9%나 뛰었다.

정부의 가계대출 축소 방안에 따라 은행권 가계대출은 줄어든 반면 금융그룹들이 비은행-비이자 부문의 수익 감소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대출을 확대한 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금융권에서는 그융그룹의 사업-수익 다각화로 비이자이익을 늘려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리스크 관리로 4분기 기업대출↓

은행권이 기업대출 폭증에 따른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4분기부터 기업대출을 축소하기로 해 원가 상승, 불경기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이 ‘돈줄’을 찾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은행권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대출태도 지수는 ‘마이너스(-) 3’을 보였다.

통상적으로 지수가플 러스(+)’이면 대출태도 완화 또는 대출 수요 증가로 답한 금융기관수가 대출 감소 및 대출태도 강화라고 답한 금융사보다 많다는 뜻이다. 반대로 ‘마이너스(-)’면 대출태도 강화 금융사가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러한 기업대출 태도 강화는 전분기인 3분기(6) 보다 13p 오른 19를 기록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올 들어 폭증한 기업대출을 줄여야 한다는 시장의 신호”라며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대출 이자율이 5%대에 육박하고 있는 만큼 부실채권의 위험과 이자상환 불가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금융당국, 기업대출↑ 가계대출↓?

이처럼 금융권의 기업대출 축소 방침은 ‘레고랜드 사태’에 따른 신용경색을 우려하고 있는 금융당국의 개입으로 일단 유예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측에서 자금경색으로 회사채-기업어음(CP) 발행 등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돕기 위해 금융권을 윽박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의 기업대출 등 금융지원 여력을 늘리기 위해 정부는 국내 금융회사들의 적극적인 해외채권 발행을 유도할 방침이다. 국내에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인 만큼 시장 안정 효과도 있는 해외 자금 조달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레고랜드 사태’로부터 비롯된 금융위기를 우회적으로 피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지금까지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해외채권 발행은 환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어 발행을 자제시켜온 게 일반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국내 자금시장의 경색을 고려해 볼 때 해외채권 발행도 한 가지 방편이라는 결심이 선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금융당국은 예대율 규제비율을 은행은 100%에서 105%로, 저축은행은 100%에서 110%로 늘려 잡았다. 예대율은 예수금 대비 대출금을 뜻한다. 비율이 높아지면 대출 여력도 늘어난다. 이를 통해 은행과 저축은행이 추가적인 기업대출에 나설 것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당국은 은행 예대율 산출 시 한국은행 차입금을 재원으로 하는 금융중개지원대출을 제외한다는 방침이다. 예대율 산정방식을 정비, 중소기업 등의 자금조달 여건을 개선한다는 속셈이다.

다만 금융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에 기업대출이 손쉬워지는 반면 가계대출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렇지 않아도 부동산 경기침체와 자금경색으로 은행들이 가계대출 문턱을 높여 신용대출은 물론이고 주택담보대출이나 집단대출 축소가 본격화하고 있다”면서 “신규 가계대출 승인이 어려울 뿐 아니라 사실상 가계대출 영업은 중단된 상태라 실수요자들이 대출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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