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인테크놀로지 김대중 대표의 술 이야기

살다보면 그리스신화의 하고많은 신(神)들 중에‘디오니소스’가 강림할 때가 있다. ‘술의 신’인 그는 포도주의 신이며, 풍요의 신이자, 황홀경의 신이다. 팍팍한 세상살이가 힘겨울때, 굳이 애주가가 아니어도 우리는 어느저녁 디오니소스를 만나 황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건 웃어 넘길 수 있을법한 여유를 한주먹 선물로 받아, 그 날 하루 유독 힘에 부쳤던 삶의 언덕배기를 타박타박 올라 집으로 돌아간다.

술은 인간의 정신을 혼미하게도 만들지만, 적당히 다룰 줄 알면 그만한 위로가 또 없다고도 한다. 이즈음 술 이야기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마침 AI와 빅데이터를 다루는 최첨단 정보통신회사 ㈜넥스인테크놀로지의 김대중 대표가 메타버스 얘기를 열정적으로 하다가, 어느순간 술 이야기를 또 그만큼 해박하게 풀어놓는 반전을 보여주는 것을 보고, 그가 지닌 콘텐츠를 독자와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김 대표는 90년대 대학로 등지에서 전통주 카페를 운영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당시 그는 술을 좋아하는 것과 사업을 하는 것은 다름을 뼈저리게 깨닫고 지금은 술을 즐기는 쪽으로 살고있다고 말했다.‘김대중의 酒遊세계’시리즈, 첫 회 막걸리 이야기에 이은 두번째 소재는 희석식 소주에 관한 스토리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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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넥스인테크놀로지 대표
김대중 넥스인테크놀로지 대표

빠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거친 한국은 이에 따른 그늘 또한 깊다. 속도에 비례해 척박하고 치열하다. 뜨겁고, 쓰고, 짜다. 근현대사를 돌아볼때 일제시대와 분단, 동족상잔의 ‘6.25’, 전후 복구와 군부독재 시대의 굴곡을 거치면서 치열하다 못해 녹아내리는 듯한, 어떤 ‘찐함’을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환경은 술 문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전편에서 막걸리에 대해 언급할 때 ‘술은 역사와 민족의 문화를 반영한다’고 했었다. 우리의 희석식 소주 또한 그렇다. 오히려 더 역사적 터널의 저변을 관통하는 궤적을 그리고 있다.

소주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근현대사의 한 편을 들여다 보는 것이고, 그 아픔을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는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너무 거창한가?

우선 희석식 소주는 어떻게 우리의 술문화의 가장 큰 영역을 점유하게 되었을까?

한국은 증류주나 독주 보다는 곡주(穀酒)와 같은 배양주의 문화였기 때문에 더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땅에 증류주를 소개한 이들은 몽골이다. 고려시대 몽골(원)은 침략에 이어 일본 점령을 위한 군사기지 등을 세웠고 그 거점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에도 증류주 문화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독특한 것은 몽골의 주요 거점이었던 개성, 평양, 전주, 진도 및 제주 등은 증류주를 한국의 음식문화나 특성에 맞춰 개량하거나 응용하였다는 점이다.

진도 홍주나 평양 문배주, 전주 이강주 등이 그렇다. 하지만 유독 안동만은 몽골에서 전파된 증류주의 원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경북지역에 전파된 증류주들은 사라진 반면, 안동은 유일하게 지역적 특성과 음식문화가 만나서 그 전통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증류주는 대개 조선시대에도 양반이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서민들이 먹기엔 그 과정이 번거롭고 노고가 많이 들어가는 이유가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독한 도수로 인해 평민이나 농민들이 먹고 문제가 생기는 것을 국가나 양반 지주들이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농민들은 당대의 생산력을 뒷받침하고 있었지 않나. 그래서인지 술은 통치권력 입장에서 오래전부터 통제의 대상이었다.

영조와 세종대왕의 금주령 등 조선시대에는 130여 차례에 이르는 금주 조치가 있었다. 다만 금주령 자체가 권력과 가진 자들에겐 늘 예외였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술은 일제에 의해 더욱 통제의 대상이 된다. 주세(酒稅) 만한 국가수입은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세금 징수를 위해 조선의 술을 통제하였고, 술의 제조 및 유통 방식까지 간섭하였다. 특히 전쟁을 위해 쌀과 같은 곡물을 주원료로 하는 조선의 술제조 방식을 매우 강력하게 통제하였다. 그래서 곡물 발효주 생산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고, 일본의 어느 회사는 식용 알콜이라 할 수 있는 주정(酒精)을 물에 희석해 약하게 한 희석식 소주를 판매 하였다고 하며, 이것이 시초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

하지만 한국에서 희석식 소주가 대량으로 생산 유통돼 서민의 음식문화로 자리잡은 것은 6.25전쟁 이후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볼때 식용알콜인 ‘주정’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50년대말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이 ‘주정’을 특정 회사만 유통하게 했고,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주정’을 단일 회사만 유통할 수 있다. 현재 9개 회사가 주정을 생산하지만, 유통은 오직 한 회사만 가능하다. 아마도 이런 시스템은 전세계에서 한국만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한국적 배경은 결과적으로 희석식 소주의 ‘맛’까지도 지배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단일 주정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소주 회사들은 소주의 ‘맛’을 창조하기 위해 단맛(알콜은 오직 쓴 맛 밖에 없다)을 첨미하고, 인공향을 첨향하는 등 화학물질에 의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소주는 단일한 주종, 단일한 맛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국인은 각종 브랜드의 소주 ‘맛’을 구분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소주 맛이 아니라 첨향, 첨미한 화학조제물의 ‘맛’이다.

이런 ‘인공 알콜음료’(필자는 개인적으로 소주나 상용 막걸리를 이렇게 부른다)가 우리의 음식 문화로 자리를 잡은데는, 지난한 근현대사를 관통해온 한국인의 애환 만큼이나 ‘쓴’ 소주가 공명을 한게 아닐까 한다. 게다가 우리의 음식은 짜고, 맵고, 강하다. 이런 강한 음식에 마리아주가 맞는 술로서 이 인공 알콜음료가 궁합이 맞았던게 아닐까.

어찌됐건 희석식 소주는 우리 음식문화로 식탁 위에, 내 옆자리에 늘 앉아있다. 인공지능 로봇이 마치 사람처럼 함께 웃고 우는 것 같이 인공 알콜음료가 음식인양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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