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에세이 4]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책임대표사원 ②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지나치게 빠르고 또 복잡하다. 우리가 살아 숨쉬는 요즘 세상이 그렇다. 위대한 것은 예외없이 단순하다고 했다. 진리 또한 그러하여, 만고불변의 진리로 일컬어지는 것들은 의외로 단순하고 가까운 곳에 있다. 모두가 피로하고 지쳐있다. 이럴 때일수록 어떤 메시지가 필요할까. 코로나19로 개개인이 각각의 섬으로 부유하는 그야말로 단절의 시대.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이지않는 연결의 복원이 절실한 시점으로 인식된다. 인간성의 회복, 휴머니즘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여겨 찾은 주제가 다름아닌 ‘어머니’다. 모성(母性)은 생명을 품는 힘이자 마지막까지 지탱하는 버팀목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포용력의 원천인 모성이 실종된 시대. 본지는 ‘우리 시대의 어머니’, 땅속에 묻혀있던 보석같은 ‘어머니 이야기’들을 발굴해 시리즈로 싣는다. 자식을 훌륭히 성장시킨 인사들의 생생한 인생스토리도 곁들였다.

▲김낙진 동원아이앤티 회장 ▲정영수 CJ그룹 글로벌경영고문 ▲신경호 일본 고쿠시칸대 교수 ▲구자관 ㈜삼구아이앤씨 대표 ▲이광희 (사)희망의망고나무 대표 ▲박경진 진흥문화㈜ 회장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사단법인 유쾌한반란 이사장) 등 7인이 값진 스토리를 흔쾌히 풀어놓았다. 어지럽고 혼탁한 세상에 한줄기 빛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편집자주>

멀건 수제비로 연명한 어머니

구 대표는 10대 소년시절 늘 녹초가 되어 밤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통밀가루로 만든 수제비를 밥상에 올리곤 했다. 멸치 몇 마리로 육수를 낸 멀건 수제비였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건더기를 퍼주고 정작 자신은 짜디짠 수제비 국물로 배를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이 집에 돌아와 보니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져 있었다.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어머니는 불행히도 반신불수가 되어 버렸다. 아버지의 정성스러운 간호 덕분에 경우 병세가 회복되는가 싶더니 또 다시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대퇴골이 부서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앉아 있을 수가 없게 됐다. 당시 좌변기가 설치되지 않은 화장실이다 보니 용변 보는 일조차 고통이었을 것이나 그런 고통을 어머니는 가족 어느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고 구 대표 역시 어머니의 화장실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급기야 구 대표 27세 때인 1970년, 아버지가 심장내막염으로 세상을 등진 데 이어 1974년 어머니마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고 말았다. 고아가 된 구 대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지난날 당신은 늘 멀건 수제비 국물만 드신 게 병을 키운 게 아닌가”하는 죄책감으로 눈물을 삼키곤 했다. 이런 애틋함 때문일까.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늘 부모님 사진을 품속에 넣고 다닌다. 가난과 배고픔의 골짜기에서 한숨지어야 했던 부모님을 단 한 순간도 원망하거나 잊을 수가 없다고 그는 회고한다.

구 대표는 어느 날, “청소용 왁스만 팔지 말고 건물 청소업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76년 당시 혼자서 남의 집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 식당과 빌딩 청소용역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윤은 적고 제조업을 할 때 생긴 빚의 이자 또한 감당이 되지 않았다.

빚쟁이들을 피해 식당과 빌딩의 변기를 닦으면서 발품을 팔고 다녔다. 당시 청소 용역업체들은 미군 부대에서 업자들이 빼돌린 군용 왁스를 사서 청소를 했다. 세관이 들이닥쳤다. 그는 장물아비로 몰려 세관에 끌려가 사흘을 두들겨 맞고 당시에 집 한 채 값에 해당하는 벌금 45만원을 내고 풀려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청소용역업은 허드렛일 정도로 생각됐다. 그 많고 많은 사업 중에 청소용역업이라니! 어떤 이들은 비웃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느 누구도 돈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곳을 향해 눈을 돌린 구 대표만의 ‘블루오션’이었다

잠수교 교각을 들이받다

어느덧, 구자관도 가정을 꾸렸으나 가난의 사슬은 쉽사리 끊어지지 않았다. 결혼 후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이 없어 아들과 딸을 친척 집에 보낸 적도 있다. 다른 가족과 한 집에서 산 경험도 있다. 심지어 35평형 아파트에 세 가족, 총 14명이 함께 살기도 했다. 남자들은 마루에 이불을 깔고 잤으며 아침마다 화장실 전쟁이 일어날 정도였다.

일 년에 여섯번을 이사할 정도로 그의 가족은 서울의 변방을 떠돌았다. 회사가 겨우 자리를 잡아갈 즈음, 구 대표의 공장에서 화재가 났다. 공장은 순식간에 화염으로 뒤덮였다. 청소용 자재를 조금이라도 건지겠다는 욕심 때문에 구 대표는 시커멓게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눈을 떠보니 을지로의 한 병실이었다. 손가락과 팔이 달라붙은 채 온 몸이 그야말로 녹아버렸다. 몸뚱아리 3분의1이 화상으로 엉망진창이 되었다. 수세미로 오그라든 살을 밀어내는 고통은 형극이나 다름없었다는 그의 회고다.

“퇴원하면 손가락이 펴지기는 할까요?”

“지켜봐야 한다”고 퉁명스럽게 내뱉고 돌아서는 의사가 야속하기만 했다. 큰 재난 앞에서 인간의 무기력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할 뿐…

그는 기적처럼 한 달 만에 병원 문을 나와 공장으로 나갔다. 피와 다름없는 공장은 잿더미가 쌓여 있고 사무실은 빚쟁이들이 할퀴고 간 자국만 선연했다. 회사 장부에는 빚만 8000여 만원. 한숨 그 자체였다. 보험회사 다니는 친구를 불러 보험을 들었다. 1억2500만원짜리 사망보험에 가입했다. 구 대표의 속내를 모르던 친구가 1회 차를 대납했다. 어느 날, 구 대표는 장충동 대폿집에 들러 낮술을 퍼마신 뒤 빨간 포니 픽업을 몰고 잠수교로 향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구 대표는 엑셀레이터를 세차게 밟아 교각을 들이받았다. 픽업은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렸고 그는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으로 튕겨져 나갔다.

‘죽음마저 뜻대로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한 그는 이를 계기로 자신의 운명과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고 결심한다. 우리 주위에서 종종 하는 일마다 꼭 사고가 터지는 등 불운이 끊이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구 대표 역시 “어쩜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하고 신세타령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던 터에 미국에 살던 형님이 동생을 초청했다. 아버지의 길을 따라가는 동생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1982년 이민신청을 했으나 무려 7년만에서야 영주권 이민비자가 나왔다. 이러는 사이 그의 앞길에도 한줄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 당시 정권은 초대형 행사를 많이 벌였는데 그 중 KBS가 주관해 우주과학 전람회를 열었다. 알루미늄 캔을 모아주면 한 개당 10원씩 쳐주었다. 청소사업은 적자였지만 깡통을 팔아 몇십 배 돈을 벌었다. 1981년 ‘국풍81’에 이은 축제장 청소입찰을 따냈다. 이날 축제의 주관사였던 KBS 실무자가 그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했다. 여세를 몰아 KBS주관 모든 행사의 청소용역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가난의 사슬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자녀들은 커갔고 공부는 시켜야 하겠고…

비자가 나오자 고민 끝에 1990년 미국행 비행기에 온 가족이 올라탔다. 하지만 미국에서 구 대표가 해야 할 일이라곤 마땅치 않았다. 곧바로 귀국한 구 대표는 청소용 하이타이 봉지를 들고 다시 현장으로 달려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