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영암에서 왕인박사의 숨결을 느끼다”
[현장] “영암에서 왕인박사의 숨결을 느끼다”
  • 박철의 기자
  • 승인 2018.12.21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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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왕인박사 유적지 탐방
日교과서, 왕인박사 활동 축소
백제문화가 아스카문화 꽃 피워
월출산 경관 살리는 정비 우선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일본 도쿄가쿠게이대학교 교수 365명 중 한국인(외국인 정교수) 최초로 연구 실적 1위를 기록한 일본 역사학계의 이단아 이수경 교수(55·역사사회학)가 최근 모국을 찾았다. 먼저 '재일한인의 민족교육 현황 및 과제'에 대해 강연을 청한 ‘2018동북아평화교육 포럼'(7일 전남대학교)에 참가했다. 이어 다음날, 4세기 백제 근구수왕 때 박사로 일본에 학문을 전한 왕인박사의 고향 전남 영암을 제자와 영암 출신 박 철 사진작가와 함께 찾았다. 그 동행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는 ‘독립운동가’나 '투사'로서의 면모가 엿보였다. “햇빛 받는 당당한 길을 걸어라. 음지를 기웃거리며 요령 피우다간 시궁창에 빠진다”는 부친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고 있단다. 매서운 겨울바람에도 연신 사적지의 사진을 찍으며 역사 현장을 누볐다. 이 교수는 늘 현장에서 묻고 답하는 그야말로 우문현답(우리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형이다. 여 교수이지만 세계 각지의 공동묘지를 찾아 그 무덤의 인물과 역사 배경을 조사하며 다닐 정도로 배짱도 두둑하다.

“책속에서가 아니라, 현장을 찾아 발로 뛰면 연구거리들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현장에서만 찾을 수 있는 정보들을 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죠. 그렇게 찾은 오리지널 정보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역사학자로서의 프로 근성이 밴 한마디다. 이날 이 교수 일행을 안내한 사람은 월출산 ‘큰바위얼굴’을 세계 최초로 카메라에 담은 박철 사진작가였다.

월출산 큰바위얼굴 작품 앞에선 이수경 교수와 박철 작가
월출산 큰바위얼굴 작품 앞에 선 이수경 교수(왼쪽)와 박철 사진작가

‘영암(靈巖)’이란 지명이 유래한 구정봉의 ‘큰바위얼굴’은 턱에서 정수리까지 길이가 101m로 세계 최대다. 해마다 이 ‘큰바위얼굴’을 ‘친견’함으로써 기(氣)를 받으려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암사람들의 자랑거리는 단연, 영암이 왕인 박사의 고장이라는 것. 대학에서 동양사를 전공한 이 교수는 일찍부터 영암과 왕인 박사의 관계를 학술논문으로 쓸 만큼 관심이 지대했다.

광주에서 출발한 차량이 나주시를 거쳐 영암읍에 가까워지자 장대한 월출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금강산의 일부를 떼어와 야산들 뿐인 평지에 옮겨 놓았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산, 그러나 읍에서 목포방면으로 뚫린 외곽도로에 들어서자 짓다만 아파트 두 동이 산세를 가리고 있다.

완공도 철거도 못한 상태인데, 설령 완공했다고 해도 눈엣가시로 흉물스럽기는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특히 영암읍을 거치지 않고 목포 방면으로 갈 수 있는 외곽도로가 뚫린 지금은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가 더욱 눈에 띄었다. 완공도 철거도 못한 채로 지자체장 선거가 수차례나 치러졌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이 아파트는 여전히 영암군의 해묵은 숙제다. 등산가라면 죽기 전에 한 번은 올라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명산, 월출산을 찾은 방문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옥의 티’가 되고 있는 건물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이 교수는 한 걸음 더 들어간 제안을 한다. 일본의 메이지 시대(1868-1912)까지 산악불교의 신성한 영산으로 입산 금지가 되었던 서일본 최고의 등산지로 알려진 다이센(大山)을 우수사례로 들며 “월출산을 가로막는 전봇대와 전선을 없애고 영암을 찾는 이들이 장엄한 기암산을 가슴으로 가득 느끼며 방문할 수 있도록 해야 월출산이 살아난다”며 “천혜의 관광 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살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박철씨가 먼저 안내한 곳은 김창조가야금산조기념관이었다. 조총련계에서 사용하던 가야금 산조의 악보가 전시된 낡은 음악교과서를 본 이 교수가 입을 열었다.

“과거 일본 교과서에는 왕인 박사의 행적이 자세하게 실렸어요. 헌데 지금은 그런 교과 내용을 축소하는 경향이라서...”

속셈을 엿볼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는 왕인 박사 관련 학술대회와 기념사업이 ‘한국에서 열리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해마다 봄이면 벚꽃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열리는 축제 이름도 언제부턴가 영암왕인 벚꽃축제로 불리기 시작했다. 왕인 박사에게 진 빚이 너무 커서일까, 일본의 콤플렉스를 읽을 수 있는 얘기다.

산조를 가야금으로 연주한다고 해서 가야금산조다. 가야금 산조는 조선 후기 판소리와 시나위 가락을 기악독주곡으로 발전시켜 거칠면서도 섬세한 정서를 음악으로 재현한 것이다. 가야금산조기념관은 가야금산조를 창시한 악성 김창조 선생(1865~1919)을 선양하고 기릴 뿐만 아니라 가야금 산조의 본향이 영암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됐다.

왕인박사가 뗏목을 타고 목포를 지나 일본으로 갔다는 영암 상대포
왕인박사가 뗏목을 타고 목포를 지나 일본으로 갔다는 영암 상대포

이날 늦은 오후, 일행은 구림마을 입구 상대포(上臺浦)를 찾았다. 상대포는 중국과 일본 등과 교역을 하던 강나루였으나 1981년 영산강하구언공사로 물길이 막히면서 지금은 작은 호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예전에는 목포항에서 출발한 배가 영산강을 거슬러 항해하며 사람과 물자들을 운반했다. 이보다 상류인 나주시 영산포에 홍어가 유명해진 것도 이러한 영산강 뱃길 덕분인 것이다. 지금 상대포 호수에는 너비 3미터 길이 12~3미터 정도로 보이는 모형 배 한 척이 떠 있다.

왕인 박사는 뗏목을 타고 영산강 줄기를 따라 목포항을 거쳐 일본까지 진출했다는데, 역사적 사실 재현에 미치지 못함이 아쉬웠다. 뗏목을 타고 도일하는 왕인의 숨결을 느끼고 싶은 걸까? 이 교수는 상대포의 찬물에 손을 담그고 생각에 잠겼다.

용서와 화해는 남은 자들의 몫

해질 무렵 일행은 근처에 있는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 고인돌 유적지를 둘러본 뒤 학산면 독천의 한 식당에서 특미인 산낙지와 연포탕으로 맛깔스런 남도의 맛에 흥취된 후 한옥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기찬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아침, 일행은 왕인박사 유적지로 발길을 향했다. 유적지를 들어서기 전 구림마을에 있는 ‘용서와 화해의 위령탑’을 찾았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 전후에 영암군 군서면 일원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303인의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탑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서로 용서하고 화해를 통해 명예를 회복하자는 취지로 2016년 건립됐다.

위령탑 앞에서 묵념을 마친 뒤 합동묘지를 손으로 쓰다듬던 이 교수는 “호전주의자들의 이념대립에 이용된 동족 공간의 가해자도 또한 피해자다. 이렇게 슬픈 피해자 가족들의 다가서기를 통한 공생의 모색과 화해란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용서와 화해의 위령탑’에서 기념촬영을 한 이수경 교수

“역사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지금까지 수 많은 역사의 피해자, 가해자의 무덤을 찾아 다녔지요. 도쿄 아오야마묘지에서 본 가해자의 화려한 무덤에 비해 이름도 없이 몰아 놓은 피해자의 초라한 무덤의 모순 속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습니다."

이 교수는 일본을 예로 들면서 동포 노동자들이 착취당한 가미고우치(上高地) 터널과 댐 공사, 일본 패망전의 보루로 조선인 노동자 및 위안부를 투입해 정비한 마츠시로대본영(松代大本営), 열악한 해저탄광에 동원되어 물비상으로 인해 동포 노동자들이 죽어간 야마구치쵸세이(山口長生) 탄광, 어린 조선의 엘리트들이 특공대로 산화된 유서와 기림비 등이 산재한 큐슈의 치란(知覧), 반세이(万世) 등에서 마주한 그 넋들의 외침이 자신을 교단에서 평화학과 인권교육의 필요성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도록 이끈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하루 서너 시간도 제대로 눈을 붙여본 적이 없을 정도로 학문연구에 몰두해온 이 교수. 한국인에게 배타적인 일본에서 학자로서의 양심과 자존심을 지켜온 그만의 생존법이 아니었을까?

일행들은 마침내 왕인박사 유적지를 찾았다. 영월관(靈月館)을 거쳐 왕인박사의 탄생과 일대기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전시관, 수석전시관 등을 돌아봤다. 하지만 왕인박사가 공부했다는 서당 문산재와 동료들과 담소를 나눴다는 양사재를 둘러보지 못한 일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왕인 박사는 일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져가 한자와 학문을 처음으로 가르쳐 준 성현이다. 또한 도예술과 직조술 등 백제의 다양한 기술을 전파해 일본 아스카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서호면 엄길리 고인돌유적지
영암 서호면 엄길리 고인돌유적지를 찾은 이수경 교수

“영암의 왕인박사 유적지와 고대고분과 지석묘 등 문화유산들을 돌아보고 새삼 놀랐어요. 특히 선사시대 지석묘와 영암 곳곳의 기암이 자아내는 신비한 자연 환경은 신화스토리로 엮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더라구요. 이 소중한 조상들이 남겨주신 문화 컨텐츠를 별게 아니라고 그냥 두는 게 이상했어요. "

이수경 교수는 그동안 세계 각지를 다녀온 경험자로서 볼 때 월출산의 비경과 트레킹 코스가 버겁지 않아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찾고 싶은 훌륭한 경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영암은 백제의 역사는 물론,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치는 동안 중국과 일본을 잇는 국제 항구의 구실도 했던 만큼, 앞으로 아시아를 잇는 역사문화의 가교로서의 가치가 충분해요"라는 이 교수는 "이 지역을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키면 좋겠어요. 지자체 차원도 중요하지만 전체 인프라 정비를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프로젝트로 진행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본지 제28호 12-13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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