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EU‧영국 규제당국 등 “반경쟁법 정면 위반” 잇딴 제재
국내서도 어도비, 공정위에 기업결합 철회서 제출, “없던 일로”

어도비, 피그마의 합성사진. [월스트리트 저널]
어도비, 피그마의 합성사진. [월스트리트 저널]

[중소기업투데이 조민혁 기자] 어도비와 피그마는 세계 UI/UX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장악하고 있는 양대 기업이다. 그 중 어도비는 올해 들어 무려 200억 달러를 제시, 피그마와의 기업결합, 즉 사실상 합병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EU와 영국, 미국 규제당국이 이들에 대해 강력한 제동을 걸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월스트리트저널, 로이터통신 등에 의하면 마침내 지난 18일(현지시각) 어도비는 EU에 이어 영국 규제당국에도 합병 의사를 철회했다. 또 다음 날인 19일에는 한국에서도 피그마(Figm)와의 기업결합 철회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 사실상 계획을 포기했다.

만약 이들 양대 기업이 합병될 경우 흔히 ‘포토샵’으로 알려진 디자인 프로그램을 비롯한 다양한 UI/UX 디자인 소프트웨어가 완전 독점 체제로 구축될 뻔했다. 실제로 현재도 피그마가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대기업은 물론 이들 양대 기업의 제품을 쓰고 있는 수많은 국내 중소기업들도 결국 피해를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렇잖아도 공정위는 애초 어도비의 기업결합 신고서를 받은 후 본격 심사에 들어가기 전부터 부정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유럽과 미국에서 어도비의 철회 결정이 나자, 공정위도 20일 기업결합 심사절차를 공식적으로 종료할 것임을 밝혔다.

어도비와 피그마는 일단 UI/UX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주력 제품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서로 경쟁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앞서 어도비는 피그마 인수를 위한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 9월 26일 공정위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다.

계약을 위해 어도비가 피그마에 지급하는 취득금액은 약 27조8천억 원(미화 약 200억 달러)로서, 피그마 연 매출액의 약 50배에 달한 규모다.

어도비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웹사이트 및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기획․제작의 전 과정을 아우르는 UI/UX 디자인 소프트웨어인 ‘어도비 사용자 디자인(이하 ‘XD’)’, 그래픽, 사진 등의 디자인 창작을 위한 소프트웨어인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등을 공급하고 있다.

‘어도비 XD’는 웹사이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등 디지털 제품의 사용자 인터페이스(이하 ‘UI’)를 디자인하고, 사용자 경험(이하 ‘UX’)을 향상시키는 사용 환경(위치, 구도, 표현 등)을 구현한다.

피그마는 2012년에 설립된 미국에 본사를 둔 회사로서 역시 어도비와 유사한 UI/UX 디자인 소프트웨어인 ‘피그마 디자인’ 등을 공급하고 있다. 피그마는 UI/UX 디자인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약 83.4%의 시장점유율을 보유한 1위 사업자다. 이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고 있는 업체다.

그럼에도 어도비는 한국을 비롯한 미국, EU, 영국 등지에서 동시에 피그마와의 기업결합을 추진한 것이다.

이에 한국 공정위는 “국내외 이해관계자와 전문가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미국, 유럽연합, 영국 등과 공조해 이번 기업결합의 경쟁제한 효과를 면밀히 분석해 왔다”고 전했다. 특히 기업 결합 후 UI/UX 디자인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어도비의 신제품 개발 등 혁신 경쟁이 중단될 우려, 디자인 창작 소프트웨어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피그마를 인수함에 따른 잠재적 경쟁저해 우려 등을 분석했다. 

이는 미국과 EU 등도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사안이다. 이에 같은 날 영국과 EU에서 어도비는 기업결합 계약을 철회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어도비는 한국에서도 인수계약을 파기하기로 피그마와 합의하고 기업결합 신고를 철회한 것이다.

이날 외신들도 영국과 한국 등에서 어도비가 계약을 철회한 사실을 대서특필했다. WSJ는 “영국 규제 당국이 이번 거래가 혁신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지 몇 주 만에 협업 소프트웨어 회사 피그마 200억 달러 인수 계획을 취소했다.”면서 “일부 규제 기관과 정책 입안자들이 기업 인수에 대해 과거보다 더 철저한 조사를 실시함에 따라 더욱 엄격해진 글로벌 규제 환경에 직면하게 된 가장 최근의 거래”라고 평가했다.

지난달 말 영국 당국은 조사 결과 “이번 인수로 제품 디자인 소프트웨어 분야의 두 주요 회사 간의 경쟁이 사라지고 혁신이 줄어들며, 어도비의 주력 제품인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제품에 대한 위협인 피그마가 제거될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판단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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