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본지 발행인 겸 대표
박철의 본지 발행인 겸 대표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앙회)는 제조업 중심의 협동조합을 모태로 1962년 5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기협)’라는 명칭으로 설립됐다. 1965년 도입된 ‘단체수의계약제도’와 1979년도에 도입된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는 국내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자구책으로 협동조합의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90년대 들어 WTO(세계무역기구) 등 세계 경제 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단체수의계약제도와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는 수명을 다했다. 자율과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를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2007년 단체수의계약제도가 폐지되고 2006년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 역시 폐지됐다가 2007년 ‘중소기업적합업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이 제도 역시 지속가능성에 대해 어느 누구도 장담을 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렇듯 2006~2007년은 협동조합의 생존기반이 위태로웠던 시기였다.

당시 기협회장은 김용구 전 국회의원이었다. 2004년 3년 임기의 기협회장에 당선된 김용구 전 의원은 연임 도전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에 따른 유권자들의 불만을 잠재울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래서 꺼내 든 카드가 외연확장을 위한 명분을 앞세워 기협에서 ‘협동조합’이라는 명칭을 빼고 ‘중소기업중앙회’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유통업에 종사하는 이들과 소상공인들이 협동조합 결성에 적극 참여하면서 회원사는 220여개에서 500여개로 껑충 늘어났다.

이후 중앙회는 수년에 걸쳐 대한전문건설협회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 등을  끌여들여 중소기업 유관단체라는 이름으로 중앙회 회원사에 이름을 올렸다. 또한 여성경제인협회 이노비즈협회 등 중기단체들에게는 특별회원자격을 부여하면서 국내 720만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단체가 중앙회라는 그럴싸한 명분을 구축한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중앙회로 명칭이 변경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게 뭐가 있을까.

중앙회가 공적기금인 노란우산과 홈앤쇼핑 등을 통한 굵직한 사업을 전개하면서 중앙회의 자산은 23조원에 이르고 그 위상 또한 높아졌지만, 중앙회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협동조합은 오히려 쪼그라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600여개 조합 가운데 20~30%가량을 ‘좀비 조합’으로 추산하고 있다. 대외적인 환경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정부의 정책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협동조합이 시장경제에서 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법개정을 통해 협동조합에 중소기업자 지위를 부여했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협동조합의 힘은 연대에서 출발한다. 회원들은 회비를 내고 이를 토대로 조직을 활성화시켜 정부는 물론 대기업을 상대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어 그 목적을 달성한다. 국민의힘 소속 A국회의원은 “중앙회 회원들이 내는 회비가 전체 예산의 3%에 불과해 결국은 정부의 재정 뒷받침 없이 생존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앙회가 비대해지면서 자정능력을 상실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정부는 협‧단체 보조금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예고하고 있어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이다. 현재 중앙회 소속 협동조합은 970여개 남짓이다. 이 가운데 중앙회에 가입한 유권자이자 정회원인 협동조합은 600여개. 나머지 370여개 조합은 준회원이나 다름없다. 이들을 떠받치고 있는 조합원사가 대략 6만5000여개 기업이다.

지난 2월28일 기준 중앙회 회원은 69만6953개 기업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성 회원이라고 할 수 있는 협동조합에 가입한 회원사는 중앙회 전체 회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에 불과하다. 따라서 63만개는 협동조합과 무관한 중소기업 유관단체 소속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특수한 상황에서 중앙회와 협업을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중기유관단체를 제외한 특별회원은 중앙회장 선거에서 투표권조차 없다.

국내 중소기업을 720만개로 추산할 때 중앙회 소속 회원사는 전체의 9%에 불과하고, 협동조합 소속 회원사 역시 전체 기업체수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이다. 중앙회가 국내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단체로 중소기업 정책의 허브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이유다. 현재 협동조합에 가입된 회원사의 연간 매출액(수출 포함)에 대한 통계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경제단체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사업 중의 하나가 조사·통계 업무인 점을 감안하면 중앙회가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알맹이가 빠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80년대 후반부터 한국소프트산업협회(1988), 벤처기업협회(1995),여성벤처기업협회(1998), 여성경제인협회(1999), 이노비즈협회(2002), 메인비즈협회(2010)등이 속속 만들어졌다. 대다수가 정부로부터 직·간접적인 예산지원을 받고 있다. 이렇다보니 중앙회 사업과 중복되는 비용이 적지 않아 국고가 줄줄 새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단체는 지난 2017년 20여개 중소기업 단체가 모여 ‘혁신벤처단체협의회’를 만들어 정부를 상대로 다양한 입법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단체에 속한 회원사가 2021년 5월 기준 7만3580여개사다. 중앙회 정회원 규모보다 외형이 더 크다. 대표적으로 이노비즈협회의 경우 회원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코스닥 상장기업의 35%, 월드클래스300의 34%이며,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회원사가 485개사다. 이들이 올리는 연간 매출액은 300조원에 육박한다.

B중기단체장은“중앙회에서 각종 행사 참석을 요구하는데 가능하면 피하고 있다”며 “중앙회가 업종별 단체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도 어렵거니와 정부 당국에 대한 정책건의도 특정사안에 국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사진이나 찍는 행사는 사양하겠다는 취지다.

“중앙회는 이미 스스로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국회에서 각종 자료를 요구하지만 쉽지 않다”는 국회 산자위 소속 C의원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윤석열 정부는 이참에 중앙회를 포함한 국내 20여개 협‧단체들을 모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가칭 ‘중단협(중소기업단체협의회)’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요구가 갈수록 정당성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 전 중기단체와의 사회적 타협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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