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경제연구원, “무역과 산업, 소비, 투자 등 날로 침체”
하반기 이후 최악의 L자형 장기침체, 내년까지 이어질 듯
현 정부에 ‘실용적, 유연한 경제정책’, 통상·외교 불확실성 탈피 주문

최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대규모 산업전.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최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대규모 산업전.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한국경제가 본격적인 경착륙을 시작했다.”

한국경제가 하반기부터 심각한 침체국면에 접어들고, 2024년까지 경제가 극도로 나빠질 것이란 전망이 나와 우려를 사고 있다. 그러면서 현 정부에 대해 경직된 경제철학에 대한 ‘집착’ 대신, 한층 실용적이고 유연한 경제정책과 통상외교 등을 주문하기도 해 눈길을 끈다.

현대경제연구원(이하 ‘연구원’)은 7일 “2023년 2분기 현재 한국 경제는 수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그동안 경기를 방어하던 소비마저 위축되며 경착륙이 시작되는 국면에 위치하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같은 전망을 소개했다.

6월 첫째주 ‘경제주평’을 통해 연구원은 “수출 경기는 주력 품목인 반도체와 주력 시장인 중국으로의 수출이 심각한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국내 투자도 부진한 모습”이라며 “특히, 보복 소비심리로 지난 1분기 경기의 안전판 역할을 했던 소비 부문도, 최근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실질 구매력 약화로 그 한계를 나타내면서 내수와 외수모두 함께 침체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동안 여느 공공연구기관이나 대기업 계열 연구소들에 비해 우리경제의 현실을 비교적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해온 만큼, 이같은 비관적 전망은 큰 우려를 살 만하다.

이에 따르면 특히 경기전환점(하강에서 상승)을 예고해 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2021년 6월(102.2p) 정점을 형성한 이후 장기간 하락 추세를 지속하고 있어 미래 경제 상황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4월 전산업 생산(전월비)은 광공업이 크게 침체되는 가운데 서비스업 생산도 둔화되면서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제조업의 경우 생산이 감소하고 가동률이 급락하는 침체 국면이 진행 중이며, 출하가 급감하고 재고가 증가하는 전형적인 불황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산업 경기를 홀로 떠받쳤던 서비스업도 지난 3월(전월비, △0.5%)에 이어 4월에도 △0.3%의 감소세를 기록하면서 빠르게 침체되고 있다. 건설업 선행지표인 건설수주도 4월 중 토목 부문과 건축 부문 모두 큰 폭의 감소세를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소비 절벽’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분기 보복 소비 심리로 일시적 호조를 보였으나,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가계 구매력 감소와 경기 불확실성 확대로 다시 침체 국면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4월 소매판매는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실질 구매력 약화의 영향으로 전월비(△2.3%) 및 전년동월비(△1.1%) 모두 감소세를 나타내었다. 부문별로는 내구재가 소폭 증가했으나, 준내구재와 비내구재가 모두 감소했다.

ICT투자 역시 설비투자는 일부 늘었으나, 전체적으로 크게 부진한 모습이다. 4월 설비투자지수 증가율은 운송장비 투자가 증가해 전월비 0.9%, 전년동월에 비해 4.4%를 기록했다. 그러나, 설비투자를 견인하는 ICT투자는 지난 1분기의 경우 전년동기에 비해 8.6% 감소했고, 4월에도 전년동월에 비해 무려 18.9%나 감소하는 등 더욱 침체됐다.

건설 불황도 장기화될 조짐이다. 4월 들어 동행지표인 건설기성액은 양호한 모습을 보였으나 선행지표인 건설수주액이 크게 급감했다. 동행지표인 건설기성은 4월 들어 민간 부문(전년동월비 19.3%)을 중심으로 15.8%의 증가세로 돌아섰다.

한편, 향후 건설 경기 상황을 예고해 주는 건설수주액(선행지표)은 건설비 상승, 부동산 시장 위축, 자금 시장 경색 등으로 큰 폭으로 떨어졌다. 4월 공공 수주 증가율은 전년동월비 5.3%의 증가세를 기록했으나, 민간 수주가 58.8%나 감소하면서 전체 건설수주 증가율은 무려 절반(50.6%)이나 떨어졌다.

무엇보다 수출이 계속 부진한데다, 대부분의 수출 시장과 품목들이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5월 수출증가율은 전년동월비 무려 15.2%나 감소함으로써 지난 10월(△5.8%) 이후 8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5월 수출 물량(△3.2%)이나 수출 단가(△12.0%)도 동시에 감소하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특히 5월 중 최대 시장인 對중국 수출이 무려 20.8%나 줄어들면서 12개월 연속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1.5%), EU(△3.0%) 등에 대한 수출도 침체되는 모습이다. 품목별로는 그나마 5월 중 자동차(49.4%) 등이 증가하긴 했으나, 반도체는 무려 3분의 1 이상(36.2%) 줄었고, 석유화학(△26.3%), 철강(△8.8%) 등 주요 품목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국내 고용의 질도 매우 악화되고 있다. 서비스업과 노·장년층 중심의 일자리는 증가하고 있으나, 제조·건설업 및 청년층·핵심연령층 일자리는 줄곧 감소하고 있다.

4월 중 전체 실업률은 2.8%로 전년동월(‘22년 4월 3.0%)보다는 다소 개선되었고, 4월 확장실업률도 9.1%로 전년동월의 10.9%보다 약간 나아졌다. 4월 신규취업자(취업자 수 증감)는 전년동월비 35만 4,000명으로 23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증가 폭은 축소됐다.

그러나 4월 중 산업별 취업자 수 증감(전년동월비)을 보면, 제조업은 9만7000명 감소, 건설업은 3만1000명 감소, 서비스업 46만5000명으로 상대적으로 질 좋은 일자리가 많은 제조업과 건설업 일자리가 크게 감소했다. 특히 핵심경제활동 연령층(25~49세)의 취업자수는 4월의 경우 전년동월에 비해 4만9000명이 줄어들어, 지난 2022년 12월 이후 5개월 연속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연구원은 이같은 분석과 함께 “현재 한국 경제는 경기 회복 시나리오(’U’자형, 상저하고)와 장기 침체 시나리오(‘L’자형, 상저하저)의 갈림길에 서 있다”면서 “그런데 둘 중 하나의 경로를 선택하게 하는 요인은 ‘수출 회복 시점과 강도(强度)’, 그리고 ‘소비 안전판 역할 지속 기간’이 어떠냐 하는 것”이라고 구분했다.

그 중 ‘U자형 상저하고 회복’이 가능하려면, 수출이 빠르게 개선되고 동시에 내수 경기 활성화에 도움이 되면서 시의적절한 정부의 정책적 대응이 함께 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경기 전환점이 마련되면서 경제가 회복 국면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반면에 ‘L자형 상저하저 장기침체’ 시나리오는 하반기에도 수출 침체가 장기화되거나. 정부의 정책적 실기(失期)로 소비가 더 이상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다. 이는 “하반기에도 심각한 경기 침체가 나타나면서 2024년까지 장기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 회복과 성장 경로에 영향을 미칠 핵심 리스크 요인은 ▲미국 경제의 침체 가능성 ▲중국 시장의 불안정성 ▲경제 성장의 유일한 버팀목인 소비의 향방 등을 들 수 있다.

연구원은 이에 불황의 진폭을 줄이고 불황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나름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우선 경제 철학이나 경제 이론에 대한 ‘집착’보다는 경제 현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실용적이고 유연한 경제 정책 기조’를 구축해야 한다. 현 정권에 대해 대외무역이나 통상외교 등에서까지 경직된 이념적 태도를 보여선 안 된다는 충고로 해석될 수도 있다.

둘째, 내수 불황 국면의 시작에 대응해, 적극적인 소비시장 활성화 노력이 시급하다.

셋째, 수출 경기 침체 장기화 가능성에 대응해, 통상·외교에서의 불확실성 완화 및 차별적 시장 접근 전략 마련이 필요하다.

넷째, 국내외 시장 불확실성 증폭, 자금시장 경색 등의 경영 여건 악화에도 불구하고, 미래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지속적인 기업 투자가 확대될 수 있도록 획기적인 규제 완화와 투자 유인 정책이 필요하다.

다섯째, 저성장·고금리·고물가로 인한 사회 양극화 가능성에 대응해 사회 안전망의 정비와 확충을 통해 취약 계층에 대한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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