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선 “적자 감수, 공장 놀리지 않으려 울며 겨자먹기로 응찰”
지자체도 여전히 최저가 입찰 고수
대기업은 ‘가격 후려치기’ 여전

사진은 중소건자재 업체들이 대거 참여한 건축박람회장이며,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중소건자재 업체들이 대거 참여한 건축박람회장.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흔히 대기업이나 기관·단체가 주관하는 공개입찰 과정에서 아직도 최저가 낙찰이 통용되고 있어 중소기업이나 소규모 제조업체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중앙 정부에선 가급적 최저가입찰을 지양하는 정책을 펴곤 있지만, 민간 기업체들은 물론, 많은 지자체들은 여전히 이같은 ‘악습’을 관행으로 여기고 있다.

최저가 입찰을 할 경우 대부분 중소기업들인 응찰 업체들은 앞다퉈 과도하게 낮은 금액을 써내다보니, 결국은 원가를 보전하기에도 힘든 수준의 저가 낙찰이 이뤄지곤 한다. 결국 낙찰된 금액으로 납품, 시공한 후에 따져보면 마진은커녕 적자를 보기 일쑤다. 인테리어․조형물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서울 은평구의 A사도 그런 사례 중 하나다. 이 업체는 최근 전통시장 정비사업에 참여했다가 “거의 남는게 없는 장사를 했다”고 토로한다.

이 회사 대표 K씨는 “재료비와 시공비, 스카이 차 임대료, 작업자 일당, 그리고 납품일 동안 직원들의 임금 등을 계산하고 나면 그야말로 ‘밑지는 장사’”라면서 “아예 제작보단 기획사 쪽으로 업태를 바꾸거나, 아니면 앞으로 가급적 공개입찰 따위엔 응모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기존 업체들은 그 때문에(공개입찰 제도 때문에) 어렵게 뚫어놓은 시장이나 거래처를 후발 업체나 신규업체에게 빼앗기기도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설적으로 최저가 입찰은 신규로 시장에 진입하려는 업체들의 통로가 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업체들일수록 아예 ‘밑지고 들어가는’, 막무가내식의 저가로 응찰한다는 점이다. 그 때문에 같은 제품이나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거듭될수록 물가인상을 반영하긴 커녕, 오히려 전년, 혹은 전전년도 수준의 가격을 제시하다보니, 낙찰가가 해마다 떨어지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그래도 많은 업체들은 적자를 감수하고, 그저 ‘공장이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입찰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원가 이하든, 적자든 상관없이 그저 일감이 있고, 직원들을 놀리지 않기 위해서 수주를 한다”는 또 다른 업체의 푸념이다. 각종 포장재료를 생산하는 이 회사 대표는 “그런식으로 하다간 회사가 얼마나 가겠느냐. 결국은 공장 문을 닫거나, 전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최근엔 ‘코로나19’로 늘어난 주문․배달용 포장재 수요가 늘어나면서 “아예 관공서나 기업체 공개 입찰엔 참가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잘라 말했다.

매년 시행하는 지자체나 관공서의 가로정비사업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조달청 내규가 일단 최저가 입찰을 지양하도록 권장하곤 있으나, 일선 지자체 입찰 심사 과정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최저가 중심의 공개입찰이 아닌, 공모 형태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처럼 사업을 공개입찰로 진행하면 업체 간 가격경쟁이 붙어 당연히 시공 내용이나 납품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업체 입장으론 그저 (정비사업을 한 후) 좋은 평가를 받는 지역을 모방만하다보니, 차별성도 없는 결과가 나온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기업이 대부분인 원청업체의 가격 후려치기

민간 부문, 특히 대기업들은 더 심하다. 아예 많은 원청업체들은 ‘최저가 낙찰’이란 이름이 민망할 정도로 사실상 가격 후려치기를 관행처럼 해오고 있다. 건물 안팎의 LED조명시설, 내외장 인테리어, 조형물, 간판이나 광고물, 디자인 포장재, 소규모 인쇄소 등 소규모 제조업체일수록 이런 ‘설움’을 겪는 일이 다반사다.

이는 가뜩이나 ‘코로나19’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 제조업계 내부의 격렬한 ‘덤핑’ 경쟁을 조장하고, 낙찰을 위해 엄청난 출혈도 감수하는 ‘을’들 간의 전쟁을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에 테이크아웃용 포장재를 납품하는 한 인쇄업체(경기도 김포시) 대표는 “하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도저히 타산이 안 맞아서 3년 간 납품하던 거래처와 관계를 끊었다”고 했다. 물가나 원재료 상승비와는 무관하게, 매년 가격이 떨어지는 바람에 적자를 감수해왔다는 것이다.

그는 “그 과정에서 기존 입찰 참여자들은 다음 해엔 응찰을 포기하는 대신, 신규 업체가 새로 입찰에 참여하면서 전년도보다 더 큰 폭으로 낮아진 가격으로 낙찰되곤 한다.”고 했다. 이는 결국 입찰가를 해마다 낮추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고, 업계로선 그 만큼 손해다. 그렇다 보니 낮은 가격에 맞춘 불량한 품질을 조장하고, 제품에 대한 불신을 유발하면서, 업계 전체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광고산업의 질적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기도 하다는 비판이다.

더욱이 많은 원청업체들은 해마다 낙찰가를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리다 못해 나중엔 재하청 또는 하도급업체와 직거래를 시도하기도 한다. 직거래 제의를 받은 영세 하도급업체로선 이를 거절할 입장이 못되며, 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그럴 만한 명분도 없다. 앞서 인테리어·조형물 업체 대표는 “이런 부조리한 입찰 관행은 업계 내부의 덤핑 경쟁을 조장하고 업계 ‘공멸’로 이끌기 때문에 어떻게든 근절되어야 하는 부조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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