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태 칼럼] 2021년 도쿄 올림픽의 충격, 일그러진 매너
[박춘태 칼럼] 2021년 도쿄 올림픽의 충격, 일그러진 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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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춘태 북경화쟈대학교 겸임교수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거주
박춘태 북경화쟈대학교 겸임교수
박춘태 북경화쟈대학교 겸임교수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코비드-19 팬데믹 현상으로 세상이 혼란스러운 요즘, 공동체의 조화로움과 번영을 위한 노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예로부터 매너는 인성을 판단하는 잣대 중의 하나였으며, 좋은 매너 문화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아이콘이었다. 또 좋은 매너가 존중 문화를 형성하여 인류의 진보를 가져 온 점은 중요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매너 자체가 없다면 심각한 사회 불안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매너 교육은 개인적 차원에서 벗어나 가정, 단체, 사회 교육적 차원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것이 일상이든 비즈니스든 운동경기에서든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좋은 매너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호감도‧만족도를 높임은 물론, 공감대 형성, 그리고 감동을 실현하게 한다.

20세기 중반 대기업의 개념을 창안한 경영자 해럴드 제닌(Harold Geneen)을 보자. 그는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최악의 병은 자기중심주의에 있다’라고 설파했다.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일깨워 주는 말이다. 자기중심주의가 말 그대로 자신만을 위한 것이기에 자제력·교정력이 없거나 부족하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좋지 않은 매너라는 말이다. 때문에 자기중심주의는 궁극적으로 이기심을 동반할 수밖에 없어 인심을 얻을 리 만무하다. 문제는 개인이나 특정 집단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자기중심주의는 왜 생기는가. 지나친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상대성 이론의 창시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모든 인간은 개인으로서 존중 받아야 하며, 그 누구도 우상으로 숭배해선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옳은 말이다. 평등의 원칙에서 상호 좋은 매너를 가져야 함을 함축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좋은 매너라 판단될 지라도 늘 순풍에 돛단 듯이 나아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획일적으로 일반화·객관화 하는 게 쉽지 않은 데, 이는 문화, 민족성, 국가, 종교 등 환경 및 다양한 인자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인들에게 익숙해 진 매너를 보자. 그들은 개인적 공간에 대한 배려와 인내심을 상당히 중요시 한다. 길을 걸을 때, 정말 가까운 사이 또는 동행인인 경우를 제외하고 앞사람 또는 옆 사람에게 너무 가까이 붙어서 걷지 말아야 한다. 길거리, 쇼핑몰 등 어디서나 걸으면서 부딪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만약 살짝 스치기라도 하면 예외 없이 ‘미안합니다(Sorry)’를 말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인내심 또한 가져야 하는데, 은행, 관공서 등에서 앞사람의 상담 시간이 긴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에도 어느 누구도 재촉하지 않고 뒤에서 기다린다. 다만 상담 시간이 길어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경우, 별도의 직원이 나와서 일일이 상황을 물어가며 도와준다. 상호 존중의 대표적인 매너다.

최근 삐뚤어진 매너로 눈살을 찌푸린 경우가 있다. 지난 7월22일. 우리나라 축구 대표팀이 도쿄올림픽 축구 B조 1차전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일어난 상황을 보자. 경기 내용면에서는 우리 팀의 절대 우세였지만 결과적으로 뉴질랜드팀에게 0-1로 졌다. 약체로 평가됐던 뉴질랜드팀에게 졌으니 선수들과 팬들의 충격이 말할 수 없이 컸다. 경기 종료 후 뉴질랜드‘크리스 우드’라는 선수가 우리 팀의 한 선수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우리 선수는 악수를 하지 않았다. 아쉬운 장면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스포츠 정신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어차피 경기란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자와 패자로 갈라진다. 승자는 패자를 위로하고 패자는 승자를 축하하면서 서로 존중해 줘야 하는 게 스포츠 정신이자 최우선 가치이다. 일부에서는 우리 선수가 악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타당성·합리성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 선수가 방역 수칙을 지키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악수를 거부했다고. 이번 도쿄 올림픽은 코비드-19 팬데믹 상황에서 벌어진 특별한 경우다. 그래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관중 경기 진행이라든지, 여러 가지 방역 수칙이 선수들에게 전달됐다. 그 수칙 가운데 선수들 간의 악수, 포옹 등이 금지된 경우는 시상식에서다. 따라서 변명은 우기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매너를 중요시 한 또 다른 사례를 보자. 2016년 리우 올림픽 남자 유도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집트의 엘 셰하비 선수는 100kg 이상급 32강에서 이스라엘의 새슨 선수에게 패했다. 그는 악수를 거부하고 바로 퇴장했다. 그런데 논란이 커져 비난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이집트 선수단은 회의를 열어 엘 셰하비 선수를 서둘러 귀국시켰다. 그렇다. 매너는 개인의 치부를 초월하여 단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선수 개인의 면에서 승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결과에 승복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며 매너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엎질러진 물에 칸막이를 세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패배를 인정하는 아름다운 패자'의 매너는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세계인들은 이를 극찬한다. 상대에 대한 존중심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과연 정의로울 수 있을까. 만고불변의 법칙이 있다. ‘모든 사람이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잊지 말자. 좋은 매너는 항구적으로 인정받는 프레임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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