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골프장에, 공장팔아 빚잔치, 부동산투자 뛰어들기도
내수부진·자금난에 사업정리 속출
협업·조합 방식 정면돌파는 그나마 다행

수도권 외곽의 한 중소 제조업체 밀집 지역
수도권 외곽의 한 중소 제조업체 밀집 지역

[중소기업투데이 이종선 기자] 아웃도어 의류와 레저용품을 가공하는 경기도의 한 나염업체는 최근 공장 건물 1층에 스크린골프장을 차렸다. 사업 확장이 아니라 코로나19로 인한 마지못한 선택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코로나 피해가 거의 없는 거래처들도 코로나 핑계를 대며 납품 대금을 미루기 일쑤였다. 날로 주문과 일감이 줄고 월급 주기도 힘든 형편이 되었다. 대표 A씨는 “그렇다고 무조건 직원을 내보낼 수도 없고 해서 고민 끝에 떠오른 묘안이 스크린 골프”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필드에서 돈쓰기 보단, 스크린골프로 스트레스를 풀려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약간의 빚까지 내면서 스크린 골프장을 차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요즘엔 또 다시 난감한 처지가 되었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실내 운동 공간에 대한 집합제한명령이 내려지면서 개업 일주일 만에 영업을 중단하게 된 것이다.

나염업체가 스크린골프장 개설

코로나19가 무려 7개월째 계속되면서 이처럼 자본이나 시장 경쟁력이 빈약한 중소 제조업체들은 사활을 건 온갖 자구책을 동원하고 있다. 그 중엔 아예 본래의 사업과는 다른 업태로 변경하는 경우도 있고, 비슷한 처지의 업체들끼리 프랜차이즈형 플랫폼을 구축하기도 한다. 심지어 제품 생산이 아닌 부동산 투자로 눈을 돌리는 사례도 적잖게 등장하고 있다.  무엇보다 자금난이 소기업들의 목줄을 죄고 있다. 그 때문에 회사 운영을 위해 대출받은 정책자금이나 은행 융자금 부담이 커서 시설과 생산 시스템 등을 매각하고 사업장 규모를 줄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사업장 매각 자금으로 빚잔치

LED조명자재를 주로 생산하는 C사는 최근 경기도 양주시의 공장과 사무실을 모두 매각하고, 인천 부평구에 작은 조명매장을 개설했다. 약 600평 가량의 양주시 공장 건물과 부지를 정리하고, 그 돈으로 가장 먼저 은행대출금과 10년 만기가 아직 안된 기술보증기금까지 모두 정리해버렸다. “매년 8월마다 돌아오는 부분 상환액도 부담이 크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나머지 돈으로 15명 가량의 직원들을 희망퇴직 형식으로 구조조정한 후 두어 명만 데리고 인천으로 옮겼다. 사실상 사업을 거의 접다시피한 것이다.

이 회사의 P대표는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그동안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자금 압박으로 너무나 큰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제 빚에 쪼달리면서 물건 안 만들어 좋다”는 P대표는 “그냥 맘 편하게 완제품만 받아서 도매로 넘기거나 판매만 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통계청 “중소기업, 내수부진과 자금난 고통 커”

코로나19는 이처럼 소기업들을 필사의 탈출구로 내몰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내수 부진과 함께 온 자금난이다. “코로나 핑계를 대고 줄 돈은 어떻게든 늦추고, 받을 돈은 악착같이 받아내는 살풍경이 매일 벌어진다”는게 P대표의 말이다.

실제로 통계청이 지난 7월 ‘중소기업 애로사항’(복수응답)을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소기업의 경우 내수부진(74.7%)에 이어 ‘판매대금 회수’나 ‘자금조달 곤란’이란 응답이 50.4%로 뒤를 이었다. 중기업 역시 내수부진(73.2%)에 이어 자금난이 37.2%로 많았다.

이를 제조업체로 국한해보면 더욱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소기업은 역시 내수부진(77.6%)의 어려움에 이어 자금난이 57.6%에 달했고, 중기업 역시 내수부진 (76.7%)에 이어 자금난이 42.6%에 달한 것이다. 전체 산업 중에서도 중소 제조업체가 유독 코로나19로 인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소기업인 C사도 역시 내수부진에다 전에 없이 돈줄이 마르면서 결국 사업을 대폭 정리한 사례에 해당한다.

협업, 조합 방식으로 정면돌파도

물론 협업이나 공동투자로 코로나 위기를 탈출하려는 바람직한 모습도 없지 않다. 수억원짜리 UV프린터를 구입한 D사도 그런 경우다. 코로나19로 인해 인테리어·실사업계가 위축되면서 고가 장비를 들여놓은 D사로선 고객 업체가 줄어들고 자금 회전에 문제가 생겼다. 궁여지책으로 간판과 아웃도어용 실사출력업체 5~6곳을 대상으로 설득에 나섰다. 저렴한 가격의 프린팅 협업을 간곡히 제안했고, 마침내 수직 분업 구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D사 등은 요즘 업계에서 공동 생산·판매를 위한 일종의 신디케이트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핸드폰 커버 등을 생산하는 대구의 A사는 일종의 온라인 프랜차이즈로 현 국면에 대처하고 있다. 10여개 업체들이 참여한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자사 제품 라인업과 연관이 있는 참여업체들의 제품들을 함께 취급하면서 실시간 주문·판매를 하고 있다. “아직 개통한지 한 달 남짓해서 두고봐야 하겠지만 현재로선 반응이 좋다”는게 A사측 얘기다.

생산·제조보다 부동산 투기로 눈돌리기도

그러나 이처럼 위기 국면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보단, 당장의 급박함을 면하기 위해 편법과 응급 처방을 먼저 시도하는 경우가 더 많은게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아예 생산·제조업 대신 부동산에 눈을 돌리는 업체도 많다. 이들은 흔히 설비와 시설 투자에 대한 규제가 많은 산업단지를 피하고, 쉽게 용도 변경이 가능한 나대지나 상대농지를 매입하는게 보통이다. 이 경우도 “일단 제조 혹은 도·소매 물류시설용으로 땅을 사지만, 사실상 시세 차익이 진짜 목적”이라는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대상은 주로 경기도 화성시, 시흥시, 안성시, 평택시, 충남 당진시 등이다. “물론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금년 들어서 코로나가 겹치면서 아예 생산설비를 정리하고, ‘땅 투기’에 나서는 업체들도 많다”는게 업계의 뒷얘기다.

조명업계 관련 직능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각자도생의 필사적인 생존방식”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사업 다각화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존 투쟁”이라면서 “물론 정책적 지원이 있다곤 하지만 대부분의 단체 회원사들은 당장 살아남는게 급선무”라고 했다. 그렇다보니 진취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모험을 무릅쓰기 보단, 망하기 일보 직전에 ‘피난처’를 찾는 현상이 줄을 잇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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