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들의 모국사랑⑤] 중앙대 인수한 김희수 전 이사장
[재일동포들의 모국사랑⑤] 중앙대 인수한 김희수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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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래공수거’의 삶 실천한 시대의 거인
가난과 배움, 그리고 망국의 恨 극복에 노력
3조 넘는 중앙대, 두산에 넘겨
1200억원 기부 받아 가족에게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재단설립
때를 알고 물러난 결단의 소유자
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
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구로공단(현 구로디지털단지)조성에서부터 88서울올림픽과 IMF위기 등 굵직굵직한 현대사에서 재일동포들의 활약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일제 강점기 시절 자의든 타의든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들은 갖는 차별과 냉대를 뚫고 엔화를 벌어 모국의 경제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 이 가운데 잊혀져서는 안 될 재일동포 기업가 20여명을 발굴해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김희수 전 이사장은 그의 좌우명인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돈을 남기고 떠난 자리는 다툼과 욕망으로 존재하지만, 올바른 사람을 남기면 그가 떠난 자리에 사랑과 평화가 충만할 것이라는 그의 평소 말처럼 살았다. 그는 진정으로 공수래공수거의 삶을 실천하고자 했기에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려고 고심한 흔적만 남기고 홀연히 떠났다”(이경규 한국동의대학교 교수)

김희수 전 중앙대 이사장은 전두환 정권의 4.13호헌조치에 저항해 6.29선언을 이끌어낸 혼돈의 시국인 1987년 9월12일 중앙대학교를 인수했다. 양품점을 시작해 부동산업에 뛰어들어 3조원의 거상이 된 김 전 이사장은 경남 마산시 진동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난 지 50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와 인재양성에 열정을 보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의 가슴은 뛰고 벅찼다.

당시 중앙대 1년 예산이 200억원. 하지만 부채가 무려 713억원에 이르는 등 식물대학이나 다름없었다. 중앙대 전 구성원이 4년간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모아야 하는 거액이었다. 학교 시설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고, 무엇보다 교직원 간의 갈등과 패배주의가 심각했다. 이들을 보듬기 위해 김 전이사장은 그간 모아둔 현금을 비롯해 일본의 땅과 빌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중앙대 빚을 모조리 갚고 기숙사를 짓고 도서관을 넓히는 등 교육환경개선에 주력했다.

또한 교수와 교직원들의 월급을 올려주고 학생회관 및 전산센터·예술대학을 증축했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또 바뀌어도 학내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6.29선언을 이끌어 낸 민주화의 열풍이 대학으로 튀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한 시국을 틈타 일부 교직원들까지 김 전 이사장에게 눈만 뜨면“ 돈을 달라”고 아우성쳤다. 그들은 총장실과 이사장실까지 점거했다. 일부 학생들은 김전 이사장을 일본 국세청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전임 이사장 측근들이 “학교를 빼앗겼다”며 김 전 이사장을 궁지로 몰아 일본으로 쫒아내기 위한 계략이었다. 이런 와중에도 김 전 이사장은 중앙대 인수 10여 년 만에 수천억을 쏟아 부었다. 이런 가운데 IMF에 이어 일본의 거품경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무리하게 일본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게 화근이 된 것이다. 한때 3조원에 이르는 그의 자산은 순식간에 빈 깡통이 돼 버렸다.

인재양성에 대한 그의 신념은 이렇게 배신과 음모 그리고 거품경제로 무너지게 된다.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김 전 이사장은 중앙대를 이끌어 갈 기업을 극비리에 물색했다. 부채가 제로인 상태이지만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이때 박범훈 전 중앙대 총장이 나섰다. 2008년 초 이명박 당선자, 김희수 전 이사장, 박범훈 전 총장은 모처에서 회동한 뒤 중앙대는 전격적으로 그해 6월 두산그룹으로 넘어 간다.

당시 그의 아내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반문하자 김 전 이사장은“ 세상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오. 이제는 내가 물러날 때가 된 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분명 나설 때와 물러 날 때를 아는 결단의 소유자였다. 그는 자신의 시대는 지났고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할 대학의 운명을 위해 새로운 리더십과 소명 의식을 가진 기업이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산그룹이 김희수 전 이사장에게 내민 돈은 1200억 원. 당시 중앙대 및 관계사의 자산만도 3조 5,000억원 정도로 추산됐다. 중앙대가 권력에 의해 빼앗겼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돈 이유다.

수림문화재단 조감도
수림문화재단 조감도

김 전 이사장은 1200억원이라는 엄청난 돈을 직계 자녀나 친인척들에게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전액을 재단설립 기금으로 내놓았다. 2009년 설립된 수림문화재단이 바로 그것이다. 수림문화재단은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지원을 통해 문화예술의 저변을 확대하고 문화혜택을 골고루 나누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김희수 전 이사장은 수림문화재단 이사장으로 2년 남 짓 활동을 하다가 2010년 뇌경색에 실어증까지 겹쳐 1년 8개월 동안 요양원과 2인실 서민병원을 전전하다가 2012년 1월19일 동경의 한 작은 병원에서 향년 88세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배움의 한(恨)과 가난의 한(恨) 그리고 망국의 한(恨)을 풀기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았던 한 사업가는 모진 세월을 버티다가 2012년 동경 외곽에 위치한 평범하기 짝이 없는 도립 하치오지 영원 묘지로 돌아갔다.

1988년 체육훈장 청룡장과 국민훈장 모란장(1994)을 수상한 그는 2001년 러시아 게르첸대에서 명예교육학박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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