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태환의 인문학 칼럼

하태환 논설위원
하태환 논설위원

젊은 테니스 선수 정현과 베트남의 히딩크라 불릴 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친 박항서 감독 덕분에 우리는 며칠 동안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쾌거가 더욱 값져 보인 이유는 동종의 스포츠 행사를 두고 보인 정부의 공명정대하지 못함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애써 준비한 평창 올림픽을 북한에 진상했다는 자괴감을 준 반면에, 두 영웅은 국가의 지원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승리하여 당당히 태극기를 휘날렸다. 우리 정부가 최근 들어 북한과 중국에 보인 저자세로 국론은 분열되고 국민의 자존심은 뭉개지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혜성처럼 나타나 망가진 국격을 조금이나마 회복시켜 주었으니 오죽 자랑스럽지 아니한가. 물론 정부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성공적인 올림픽을 평화롭게 치르려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우리 정부는 평창 올림픽을 진정 북한이 비핵화로 가는 길로 생각하는가, 아니면 북한 핵무장 완성의 시간을 벌어주고, 유엔 제재를 와해시켜주려는가? 첫 번째라면 회담 결렬을 무릅쓰더라도 당연히 북한에게 비핵화를 위한 계획서를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한 번도 그런 요구를 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무 대책도 없이 차일피일 시간만 때우면 북한 핵이 저절로 해결된다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에게 할 말을 못하겠으면 처음부터 북한 참가를 무시해버리면 될 일이었다.

옛날에 부잣집에서 잔치를 벌이면 거지들이 귀신같이 찾아온다. 조용히 잔치를 치루고자 하는 주인은 혹시 행패라도 부릴까 싶어 조촐한 상을 차려주곤 한다. 거지하고 싸워본들 옷만 버린다는 말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에게 큰 상을 차려준 것이겠지... 얼씨구나 신이 난 북한은 우리 정부의 이런 절박한 심리를 이용하여 아예 자신이 주인 노릇 하려 한다. 입만 가지고 온 북한은 당당히 큰소리치면서 평화실천국임을 만방에 선전하고, 핵의 완성을 선언하는 장으로 삼으며, 올림픽 성공을 위해 자신이 구원의 손길을 하사했으니 잘 모시라고 공개적으로 을러댄다. 남한은 바람피우다 약점 잡힌 여인처럼 끽소리 못하는 꼴인데도 감사해하고, 그것도 부족한지 아예 자진해서 담보용 인질을 제공해 준다. 아무 이유도 없이 졸지에 인권침해의 상징인 마식령 스키장으로 떠나야 하는 우리 선수들이, ‘북한도 살만한 나라이고 대화할 만한 나라’라는 선전에 이용당하는 것도 부족하여, 그 옛날처럼 꼭 볼모로 잡혀가는 느낌마저 든다. 우리 선수단 방북의 진짜 목적은 유엔의 대북 제재를 구멍내고 북한 선수단을 귀빈처럼 모시고 오기 위해서라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다행히 1박 2일의 짧은 체류로 끝이 나긴 했지만, 올림픽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말 많은 정치 행사를 위해 미국의 대북 제재를 방해하고 있다. 북한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한 발짝 더 멀어졌다는 의미이고, 미국이 이렇게 남북 대화 성공을 위해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에 진전이 없다면 결국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4일로 예정된 금강산 전야제에 기름을 1만 리터나 제공하려다가, 북한이 오만하게 일방적으로 행사를 취소해버렸다.

정부가 북한을 대화에 끌어들이려고 애를 쓸수록 희한하게도 북한은 더욱 더 제멋대로이고, 그럴수록 미국은 더욱 강하게 북한을 압박한다. 전쟁을 막기 위한 정부의 유화책이 역으로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런 급박한 순간에 북한의 진짜 대화 목적인 한미 관계는 더 멀어졌다. 우리 정부는 미국 편인가 북한 편인가도 이제는 확실히 밝혀야 한다. 이젠 혹시 진짜 전쟁이 발발하기라도 하면, 미국이 진정으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려줄까를 걱정해야 한다. 우유부단하거나 국민을 속이는 정부는 전쟁에서 반드시 패한다. 한 가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맹목적인 전쟁 방지보다는 비핵화가 더 우선이라는 사실이다. 평창 올림픽을 둘러싼 남북의 힘겨루기, 미국의 대북 강경책으로 인해 국민의 사기가 저하되고 불안이 팽배하던 중에 정현과 박항서의 시원한 승리가 울려 퍼지며 우리 국민의 사기와 애국심, 단결력이 다소나마 다시 살아났다. 정현이 카메라에 쓴 두 마디, “보고 있냐”는 남북의, 나아가서 세계의 정치인들에게 던지는 비수 같고, “Chung, on fire"(정은 활활 타고 있다)는 전 세계 민중들에게 비추는 진짜 희망의 햇불 같다. 우리 국민으로서는 진짜 노벨 평화상과 문학상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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