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하태환의 인문학 칼럼

하태환 논설위원
하태환 논설위원

현대인이 착각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천부의 권리로 여기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국가는 전지전능하고, 국가가 국민을 위해 모든 것을 다 해 줄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이다. 프랑스인들이 ‘짐이 곧 국가다’라고 한 태양 왕 루이 14세나, 혁명의 유혈극 아래서 쇠락해진 프랑스를 다시 일으켜 유럽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에게 애증의 감정을 가진다면, 그것은 그들이 강력한 국가 건설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탄핵으로 쫓겨난 박근혜에게 한국인이 실망한 이유는, 그의 국정농단보다는, 박정희의 강단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를 둘러 싼 강대국들의 지도자들이 인권이나 평화와 같은 인류애적 가치보다는, 수단 불문하고 강한 국가 건설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또 의외로 강력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보면서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지금 무엇을 목표하고 있는가 걱정스럽다. 허약한 나라의 국민에게 인권이나 복지는 허황된 이상일 따름이다.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는 마오의 말은 평화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우리의 외교 안보는 내일이라도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이 위태위태하다. 국가는 종교단체나 자선단체는 절대 아니다. 특히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민주국가는 무너뜨리기 가장 쉬운 국가라고 마르크스가 주장하였다.

강한 국가에 대한 동경이 절실한 한국인은 한 시대의 통치자가 독재자건 성군이건 상관없이, 외침에 잘 대비하고 내부로는 안정된 질서를 세우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역사를 막 배우던 어린 시절 우리는 은근히 고구려가 더욱 강성해서 삼국을 통일하였기를 환상하고, 선조나 고종이 국가를 파탄 지경에까지 이르게 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이순신이 이미 썩어버린 군신들을 모조리 척살하고 나라를 다시 세우기라도 했으면 하고 꿈꿔보기도 하였다. 특히 일제에 의해 나라 잃은 설움이 극에 달했을 때에는 강한 국가에 대한 열망이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깊이 각인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가 남과 북에게 일제가 물려준 군사 문화와 두 독재 정권의 탄생이었다. 한국전쟁을 일으켜 민족의 분단과 불행을 심화시킨 김일성조차도, 빨치산 시절에 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죽어가는 일본군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충성스러운 신민을 가진 나라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야망을 불태웠다. 그래서 핵무기와 강한 군대에 의지하여 연명하는 세계 사상 최악의 잔혹한 국가 사회주의 나라 북한이 만들어졌다. 그에 비하면 운 좋게 미국 줄을 선 대한민국은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 박정희의 군사 쿠데타에 이은 장기 집권, 전두환의 숨 막히는 5공통치가 있긴 했지만 그 기본만큼은 시민과 자유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에 기초한 법치국가의 기본 틀을 유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남한 국민들에게서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열망은 여전히 강한 국가에 대한 환상이다. 그러한 환상이 없었다면, 일련의 독재 정권들의 탄생도, 조금의 지지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강한 나라의 표본이었던 일본 제국주의는 아직도 한반도에 그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최근 들어 한국경제가 비약적으로 도약하면서 강한 국가에 대한 치열한 욕구가 시들해지고 나태와 안이함이 팽배해졌다. 실례지만 진짜 망국의 징조이다. 적에 대한 경계심도 사라지고 안보도 불명한데, 모두가 제 밥그릇 챙기고 싸움하기에 여념이 없다. 외부에게는 빌빌거리고 안에서만 오기를 부린다. 한국인은 외적과 싸울 때는 등신이고 안에서 싸울 때는 귀신이라더니 맞는 말이다. 어느 나라고 망국 직전에는 다 그랬다. 약간의 경제적 이익과 위장 평화를 위해서라면, 아니면 표밭갈이를 위해서라면 군권과 외교권 나아가서 주권을 함부로 손상시킨다. 전투에 진 지휘관은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소홀한 지휘관은 용서할 수 없다. 한나 아렌트는, “악이 새겨지는 곳은 바로 사유의 공허 속이다”라고 했다. 적이 무섭다고 보고 듣고 경계하길 회피하는 순간 우리는 패망한다. 북이 하사한 거짓 평화를 위해서 북의 무녀들과 함께 그네들의 우상을 찬미하고 경배하려 한다. 누가 누구를 위해 이 짓을 하는지 당최 알 수 없다. 우리 국민은 북의 사기극과 잔악한 폭력에 정말 오랫동안 시달려 왔다. 그런 와중에 작금의 작태를 보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묻고 싶을 때가 너무 많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