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가 홍미식

 

올 여름 더위는 대프리카, 파프리카, 서프리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온 세상이 아프리카로 변한 듯했다. 이대로 집에 머물러 있다가는 덩달아 몸까지 펄펄 끓어오를 것 같아 어디로든 피서를 위해 나서야했다. 이름조차 생소한 서해 바닷가의 작은 섬, ‘승봉도’ 그곳은 내가 수강하고 있는 기타 선생님의 고향이다.

8월 1일 아침 일찍 예약한 콜밴에 타니 이제 여행을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났다. 연안부두에서 600인승 배에 승선했다, 휴가철 극성수기인 때문인지 배는 만원이었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갈매기 나는 바다를 내다보며 그제야 아침을 먹었다. 새벽부터 부산스레 음식을 준비하고 와인까지 챙기는 따뜻함, 늘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베푸는 저 마음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잠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갑판에 나가 사이사이 스쳐 지나가는 작은 섬들을 바라보니 마음은 벌써 승봉도로 향한다. 출항 약 두 시간 후에 자월도를 지나 섬 모양이 마치 봉황이 하늘을 올라가는 형상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 승봉도에 도착했다. 우선 숙소인 선생님 집으로 향했다. 섬 중에서도 꼭대기에 위치한 아담한 가옥에 감자, 양파, 고추가 널려있는 뒤뜰이 정겹다. 앞마당에 피어있는 해바라기 꽃과 백일홍 등도 참으로 반갑다.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잠시 짐을 풀자마자 바쁜 일정이 시작되었다.

무인도(사승봉도)
무인도(사승봉도)

무인도에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서둘러 선착장으로 다시 나왔다. 십여 분 정도의 탑승인데 한 창 성수기라 뱃삯이 1만 5000 원이라니 신나게 놀아야겠다. 길이 4킬로미터, 폭 2킬로미터의 한적하기 그지없는 청정 해변 사승봉도. 선생님은 우리를 위하여 예쁜 색깔의 파라솔까지 알뜰하게 장만해왔다. 우선 나무 그늘 시원한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었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걸 열어보니 찰밥과 옥수수와 고추전이 들어있었다. 특별할 것 없이 통 풋고추에 달걀옷을 입혀 지져낸 것인데 왜 그렇게 맛이 있던지...... 옥수수도 사먹는 맛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런 것이 바로 손맛이라는 건가? 아니면 수십 년 자연의 맛을 그대로 요리해온 내공의 맛일까? 컵라면에 곁들여 찰밥도 맛있게 먹었다.

잠시 휴식 후, 풍덩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처음에는 발만 담그려 했으나 선생님이 뒤에서 물을 튀겨대는 바람에 이왕 젖은 거 있는 힘을 다해 물을 뿌려봤지만 역부족, 생쥐가 되고 말았다. 그 넓은 바다를 우리 일행이 차지하고 수영도 하고, 물싸움을 하고, 그것도 싫증이 나면 물속에서 공놀이를 하며 동심으로 돌아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탁 트인 바다에서 거칠 것 없이 뛰어놀자니 마음까지 저절로 뻥 뚫렸다. 한참 후, 바닷물이 빠지며 우리가 놀던 뒤쪽으로 모래섬이 생기자 선생님은 하루에 잠시 잠깐 물 빠진 동안에만 밟을 수 있는 아주 귀한 땅이라며 그 땅을 한 평에 만원씩 팔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물놀이를 마치고 간식을 먹으며 잠시 쉰 뒤 우리는 섬 반대쪽 바위틈으로 가서 보리갱 잡기 체험을 했다. 모래사장으로 싸여있던 데와 달리 그쪽은 온통 바위와 돌들로 굴과 조개, 보리갱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굴은 아직 따는 시기가 아니어서 보리갱만 잡았는데 고동보다 통통하고 크기는 소라보다 작았다. 작은 것들은 그대로 두고 큰 것만 잠깐 잡았어도 가져간 망을 거의 채울 만큼 지천이었다. 물때를 잘 맞추면 소라는 물론 해삼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한참 물속을 휘젓고 돌아다니며 잡는 재미에 물이 불어나는 줄도 몰랐다. 따가운 햇볕 속에서 물이 점점 차올라 위험하다는 선생님의 재촉을 듣고서야 겨우 발걸음을 돌렸다. 푸른 바다를 발갛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사승봉도의 낙조가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아쉽게도 그걸 바라보는 호사는 누리지 못했다. 사유지인 사승봉도는 원주민이 오래 전 외지인에게 1억 원에 팔았다는데 지금은 수십 배를 줘도 팔지 않겠다고 한단다. 관리인 부부가 놀쇠와 놀자라는 검은 개 한 쌍을 키우며 아직 생기지도 않은 새끼이름 놀순이까지 지어놓고 사승봉도를 관리하고 있었다.

무인도 체험을 마친 후, 샤워시설 대신 소꿉놀이에나 어울릴 자그마한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옷을 입은 채 머리 위로 들이부어 바닷물을 씻어냈는데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불편하기보다 재미있어서 신선한 놀이 같았다. 바다의 유일한 샘물을 아껴 쓰느라 흠씬 쓰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할까?

승봉도로 돌아와 앞마당에 저녁상을 차렸다. 준비해온 반찬이 얼마나 많던지 총각김치, 열무김치, 배추김치, 순무김치, 더덕무침, 깻잎장아찌, 매실장아찌, 마늘장아찌, 삭힌 고추, 무말랭이...... 나열하기조차 힘들 만큼 차린 진수성찬에 앞마당에서 막 딴 상추에 고기를 구워먹으니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았다. 선생님의 형제가 넷인데 아버님이 자식을 낳을 때마다 심었다는 소나무 네 그루가 튼튼하게 자라 시원한 그늘을 선물했다. 오랜 세월, 그 소나무들은 4남매의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을까? 잠시 인천에 나가신 선생님의 아버님이 참 멋지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는 한껏 부른데 어머니표 옥수수 맛의 유혹을 떨쳐낼 수 없어 몇 자루를 먹었는지 모른다. 서울은 111년 기상 관측이래 가장 높은 40도 육박하는 찜통더위라는데 솔솔 불어오는 자연바람에 오히려 긴팔이 생각날 만큼 선선한데 집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소박한 낙조의 잔잔한 잔향이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잠시 틈을 내 집 주변을 둘러보니 백일홍, 분꽃, 봉숭아꽃 등이 담을 이룬 가운데 돌계단을 사이로 대문을 대신해 서있는 해바라기 꽃이 마음을 한없이 편안하게 해준다. 동화책 속에나 나올법한, 지붕 밑 흙벽에 옹기종기 매달려있는 마늘, 돼지파, 양파 망과 그 벽에 기대어 뉘연히 서 있는 지게의 모습이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온다. 아마도 뭍으로 나간 자식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정성스레 가꾼 것 중 가장 실한 것들만 골라서 매달았으리라.

앞마당에서본 낙조
앞마당에서본 낙조

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깔린 마을을 돌아보고 기타를 둘러메고 우리는 바닷가로 향했다. 한적한 밤바다 저쪽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방해되지 않게 좀 멀찍이 떨어진 모래사장에 파라솔을 세우고 둘러앉아 선생님의 기타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우리의 공연을 축하해주듯 한쪽에서는 계속 불꽃을 쏘아 올려 분위기가 한결 무르익는 가운데 우리들은 ‘조개껍질 묶어, 언덕에 올라, 해변으로 가요,.....’ 등 아주 오래전에 불렀던 캠프 송을 부르며 마음은 시나브로 청소년이 되었다. 음악은 이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묘한 힘이 있다. 같은 문화를 공유한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촘촘히 박힌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바닷가에서 우리들의 아름다운 밤은 이렇게 흐르고 우리는 귀한 추억 하나를 쌓았다.

숙소로 돌아와 여행 준비와 물놀이로 피곤했는지 모두들 곤히 잠든 사이 잠시 밖으로 나오니 별들은 한층 더 가까이 내려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둣하다. 잠에 예민한 내가 고스란히 잠을 설치는 동안 매미, 소쩍새, 이름 모를 풀벌레들은 노래를 부르며 새벽녘 암탉의 홰치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와 함께 밤을 밝히며 친구가 되어주었다.

4남매를 낳을 때마다 심은 소나무
4남매를 낳을 때마다 심은 소나무

이른 아침, 야트막한 뒷동산을 다녀와 앞마당에 서서 내려다보는 동네의 전경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저 멀리로 바다가 보이고 고물고물 모여 있는 집들, 작은 성당과 교회, 연꽃이 핀 연못, 초등학교 분교...... 걸어서 그 정겨운 풍경들을 하나하나씩 가슴에 새기리라. 먼저 가까이 있는 성당을 찾았다. 의자가 몇 개 안 되는 아주 작은 성당과 교회도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사람들은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작은 규모가 더 풍요롭고 충만한 울림을 줄 때가 있다. 가는 길에 만난 도라지꽃, 해당화, 박꽃, 연꽃, 미나리꽃, 나팔꽃, 고구마꽃...... 이루 다 셀 수 없는 꽃들의 잔치와 돌배나무, 오리, 닭 등 만나는 고향의 맛 하나하나가 반갑고 소중하다. 초등교사인 일행이 선생님이 다닌 초등학교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가깝지 않은 거리지만 기꺼이 동행했다. 공부를 잘하면 1등, 못해도 9등이었다는 ‘인천주안남초등학교 승봉분교’는 귀여울 만큼 아담했다. 단순한 학교 건물과 나란히 세워진 예쁜 사택이 부조화인 듯 조화롭다. 마음 같아선 선생님이 공부한 교실 책상에 앉아보고 싶었지만 공사 중이라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 초등학교의 전교생 숫자가 손에 꼽을 정도란다.

아침을 먹은 후, 공식 일정인 승봉도 일주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 어머니가 쪄주신 감자의 맛이란! 친정어머니의 정을 담뿍 느끼게 하는, 파슬파슬 분이 나 있는 그 감자 맛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산책길이 나 있어 섬 일주를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시원한 바닷가를 걷다 바다에 들어가 발을 담그기도 하면서 즐기면 되었다. 마침 물이 빠질 시간이라 밀물 때는 섬이 되었다가 썰물 때는 육지로 이어지는 목섬까지 걸어보았다. 정상에 올라가는 길목에 세워진 솟대가 멀리보이는 정자와 어울려 보기 좋았다. 촛대바위로 향하는 길목의 절벽 위와 틈새에서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도 경이로웠지만 회색바위와 초록의 조화로운 풍경을 보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다. 운전면허 시험장 대신 뭍에서는 볼 수 없는 운전면허 어장이 생소했다. 해안을 따라 부채바위, 남대문바위로 이어지는 나머지 산책로 데크 공사가 완공되면 섬 전체를 좀 더 편하게 관광할 수 있을 것이다.

승봉도 일주를 마치고 하루 더 묵었다 가라 하시는 어머니의 권유를 뒤로 하고 점심을 먹고 우리는 소이작도, 대이작도를 거쳐 온 오후 3시 50분배에 올라 자월도를 지나 여섯시 쯤 연안부두에서 하선했다. 하루 만에 돌아온 서울은 역시 몹시 더웠다.

집에 돌아와 잠시 이번 여행을 돌아본다. 어찌 보면 한참 늦게 입회한 내가 오랫동안 친목을 다진 선배들과 함께 여

행한다는 게 어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기타수업 동안 한결같이 친구처럼 대하는 것을 보며 나는 동행을 결정했고 그 결정은 옳았다. 기타라는 악기가 얼핏 배우기 쉬운 듯 보이지만 사실 그리 녹록한 악기는 아니다. 손가락도 아프고 소리가 안나 의기소침할 때마다 끈끈한 정으로 격려하면서 끌어주는 선배들, 늘 느끼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려는 마음가짐이 배어있다. 덕분에 나는 낯설지 않게 그들과 동화될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잔잔한 행복이 묻어나는 승봉도. 소소한 정을 마음껏 느끼며 일상을 온전히 내려놓은 채, 자연과 사람에 모두 만족한 즐거운 여행을 함께 한 선배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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