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중소기업투데이 중소기업투데이 기자] 사회책임투자(SRI)와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에 대한 사회적, 시장적 관심이 최근 높아지고 있다. 특히 스튜어드십 코드는 현재 초미의 관심사다. 자본시장 대통령인 국민연금이 오는 27일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개최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확정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책임’과 ‘투명성’ 강화로 현상되는, 자본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길목에 서 있다.

그런데, 이 변화를 위한 핵심 요건이자 기초적인 인프라가 하나 방치되어 있다. 바로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보공개다. 사회책임투자는 투자대상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정보인 ESG라는 비재무적 요소의 고려가 핵심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또한 ESG 고려를 바탕으로 기업을 점검하고 기업관여(engagement)를 하며 의결권을 행사한다. 코드의 원칙 3은 ‘투자대상회사에 대한 주기적 점검’인데, 이 원칙에 대해 해설서는 “기관투자자는 투자대상회사의 가치와 지속가능한 성장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재무구조, 경영성과 등 재무적 요소는 물론 지배구조, 경영전략 등 비재무적 요소까지 점검대상에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고 보충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코드 도입 전부터 의결권행사의 원칙으로 ESG 고려를 천명했다. ESG 정보가 부재하거나 빈약하다면 사회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는 한계에 봉착한다.

이 중요한 ESG 정보공개 제도 마련이 현재 답보 상태다. 상장기업이 사업보고서에 사회적 책임 관련 정보를 공시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아직 계류 중에 있기 때문이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를 지난해 3월경 통과했지만 그 이후로 무려 15개월 이상이나 묶어 있다. 필자가 의원들을 통해 들은 바로는, 자유한국당의 모 의원이 기업에 부담이 된다는 이유를 들어 법사위에서 강하게 저지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의 내용을 보면, 그 반대 이유는 매우 옹색해 진다. 정무위원회 대안으로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ESG 의무공시가 아니라 자율공시이기 때문이다. 홍일표·이언주·민병두 의원이 당초 발의한 개정안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를 나열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의 반대로 결국 자율공시로 상임위를 통과했다.

이 시점에서 세계의 상황을 잠깐 둘러보자. EU는 회계연도 평균 근로자 수 500인 이상, 자산총액 2,000만 유로 또는 순매출 4,000만 유로 이상의 기업이나 공익법인에 대해서 2014년에 ESG 공시를 의무화했고, 올해 이를 적용한 최초의 보고서가 나왔다. 이른바 EU의 비재무정보 의무공시제도(EU Directive on Non-financial and Diversity Information)다. UNEP, GRI, KPMG 아프리카 기업지배구조센터 등 4개 기관이 공동으로 수행하는 지속가능성 보고제도에 관한 조사 프로젝트 보고서인 'Carrots & Sticks'(2016)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기업의 ESG 정보를 보고하도록 하는 나라가 늘었고, 관련 제도의 수도 급속히 증가했다. 2016년 기준으로 64개 나라 383개 제도가 도입되어, 3년 전에 비해 나라 수는 20개가, 제도 수는 2배 이상이나 늘었다. 주목할 점은 정부 주도 규제가 80%를 차지하며, 제도 수의 2/3 정도(65%)는 의무적인 보고라는 사실이다. 금융안정위원회(FSB)는 G20의 요청으로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개 태스크 포스(TCFD : Task Force for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를 발족했고, 지난해 독일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담에서 금융기관과 기업 재무보고서에 기후변화 정보공개를 핵심으로 한 권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TCFD의 이 권고안은 향후 의무화의 길을 걸을 전망이다. EU는 비재무정보 의무공시제도에도 이를 이미 반영했다.

기업의 ESG 정보는 국가의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도 나와 있다. 서스테이널리틱스(Sustainalytics)(2017)에 따르면, ESG 점수가 높은 국가의 국가신용도 평가 (CRA ratings)가 높고, 이들 사이에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세계는 ‘투명성의 시대’ ‘사회적 책임의 시대’로 도도히 그리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기업 부담’ 논리는 옹색할 뿐 아니라 구시대적 레퍼토리(repertory)라는 비판을 결코 피해갈 수 없다. 기업 경쟁력과 국가 경쟁력 제고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황하(黃河)가 세상에서 가장 넓은 줄로만 알았던 황하의 신 하백(河伯)에게 북해(北海)의 신인 약(若)이 했던 말은 유명하다. 정와불가이어해자(井蛙不可以語海者)!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바다를 설명해줄 수 없다는 말이다. 『장자(莊子)』의 ‘추수편(秋水篇)’에 등장하는 이 고사에서 ‘우물 안 개구리’라는 의미인 ‘정저지와(井底之蛙)’가 유래했다. 여름 곤충은 얼음에 대해 말을 할 수 없으며(夏蟲不可以語於氷者), 비뚤어진 선비가 도(道)에 대해 말할 수 없다(曲士不可以語於道者)고 했다. 장자는 이 우화를 통해 각각 공간과 시간과 편협한 지식의 그물에 걸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막는 사람은 스스로 ‘바다를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임을, ‘얼음을 모르는 여름 곤충’임을, ‘도를 모르는 비뚤어진 선비’임을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하백도 바다를 본 후에는 자신의 좁은 식견을 깊이 깨닫고 반성했다.

현재 국회 원구성 논의가 진행 중이다. 법사위에 어떤 성향의 의원들이 위원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발 정저지와(井底之蛙)의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드넓은 바다를 보기를 권하면서,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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