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성 중소기업정책개발원 이사장, 전 중소기업청 차장

나도성 중소기업정책개발원 이사장
나도성 중소기업정책개발원 이사장

신년초가 되면 다들 한해의 소망을 애기하곤 한다. 지난해 교수신문은 4자성어로 ‘견리망의(見利忘義)'를 내세웠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다‘라는 의미이다.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을 웅변해 주었다 중소기업계는 ’금석위개(金石爲開)‘를 주창했다. ’어떤 일이던지 강한 의지와 진심을 다한다면 쇠나 돌도 뚫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적 현실에서 작은 것은 소외되고 잊혀진 채 큰 것에 짓눌려 숨쉴 틈은 더욱 좁아졌다.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포퓰리즘의 흐름이 정치권에서 발원하여 기승을 부렸다. 작은 것중에서도 작은 영세 소상공인에 대한 묻지마 지원(?)도 그 하나였다.

지난해 연말 몇몇 뜻깊은 만남의 기회를 가졌다. 생존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실감했다. 고위직까지 하다가 산하기관 알짜자리를 마다하고 기업가적 도전에 나선 공직 선배의 목소리였다. “정치권의 이데올로기 싸움에 편승한 각종 규제 조치가 만연했다. 이익집단들의 카르텔 구조가 더욱 공고화되고 있다. 열심히 뛰고 뛰어온 기업인들조차 견디기 어렵다. 빨리 사업을 접는게 소원이다. 제발 좀 정부 개입을 줄이고 기업이 맘껏 일할 수 있도록 놓아 달라. 이제는 할말 좀 해야 겠다. 좌우 이념 그리고 기득권 버리고 정치권도 할 일 좀 해야 한다. 현장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서서 근원적인 문제해결에 나서달라. 등등.”

2024년 갑진년 한 해 한국사회는 미래 운명을 좌우하는 갈림길에 섰다. 오는 4월 국회의원 선거는 그 서막이다. 한국 사회의 산업화, 민주화를 견인해 왔으나 다이내믹한 혁신을 견고하게 막고 있는 이데올로기 대립구도의 향방이 결정된다. 시민의 힘으로 자유와 민주 그리고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제대로 된 길을 선택하는 역사적 순간이다. 스테이츠맨십 발휘가 아닌 폴리틱스화한 정치꾼들에 매서운 경종을 울릴 시간이다. 과연 어떻게? 그 기본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인식론적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복잡다기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근원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할 말과 할 일을 제대로 파악하여 서슴없이 행동하는 실용주의다.

한국사회는 세계 제일의 저출산이 웅변하 듯, 국가소멸로 가는 다양한 전환기적 당면과제에 봉착했다. 기존 산업화시대에 구축된 법과 제도, 조직, 그리고 정책 수단만으로는 해결이 난망하다. 윤석열 정부는 보수적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에 기반한 다양한 법적, 제도적, 정책적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입법권을 장악한 야당은 진보적 국가개입주의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며 극열한 반대와 역공격에 나섰다. 산업화시대 구축된 다양한 국가 시스템들도 기득권 유지를 위해 꿋꿋하게 저항하고 있다. 문제해결을 위한 아픈 혁신보다는 진영의 이익을 지키고 표를 획득하기 위한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린다. 역대 정부에서 시급한 과제로 제기되어 왔던 연금개혁, 노동시장개혁, 교육개혁, 규제개혁 등 기존 시스템 하에서의 개혁조차 지지부진하다.

어디서부터 우선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대변화에 부응한 혁신을 통해 실질적 성과를 내야 할까? 그 시작점으로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실천하기를 제안한다. 한국의 작은 것은 중소기업으로 대변된다. 중소기업은 ’9988-234‘로 브랜드화 되었다. 전체 기업체수의 99.9%, 종업원수의 88.1%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최근들어서 종업원수 비중은 80.9%로 줄었다. 2021년 현재 중소기업체수는 771만4000개 종업원수는 1849만3000명에 이른다. 이들 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2등이나 3등을 하면 사라지게 되므로 일등이 되도록 보호·육성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234다.

중소기업은 과연 정부가 개입해서 보호·육성해야 할 대상인 것인가? 중소기업을 대기업과 대비해서 약자로서만 본다면 정부개입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중소기업도 기업이라는 본질에 충실해야 한다. 대기업과 똑같이 시장에서 기업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시장과 기업활동에 대한 정부 개입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경우는 대기업과의 관계까지 고려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 기업으로서 정부 개입에 대한 한계와 대기업의 상대적 약자로서 정부개입의 확대 요구를 잘 비교 형량해서 선택해야 한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1500개가 넘는 정부의 보호·육성 정책을 갖게 된 것은 상대적 약자로서 중소기업을 고려한 선택인 것이다. 그 결과는 시장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플레이어로서 중소기업의 역할에 부정적 요소로 작동했다. 백화점식의 퍼주기 정책이 만연하면서 기업가정신을 크게 훼손하였다. 한국 중소기업 정책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정책시스템 전반에 대한 재평가와 혁신이 시급한 이유다.

중기정책 혁신 위한 다섯가지 핵심과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새롭게 임기를 시작했다. 시대적 문제의식을 갖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제대로 실천하기를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중기정책 혁신을 위한 5가지 핵심과제를 제언한다. ① 중기정책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공론화, ② 중소기업정책 시스템 전반의 슬림화와 전달체계 재구축, ③ 생-노-병-사 선순환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 회복, ④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경쟁력 및 생산성 혁신, ⑤ 글로벌시장 지향의 신경영 확산 등 5가지다.

첫째는 중소기업 정책지원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공론화다. 중소기업의 보호·육성을 위한 정책개입은 자유시장 작동을 저해하는 공권력에 의한 시장개입 조치다. 시장에 대한 정부개입 문제는 경제학계에서 학파별로 뜨거운 논쟁거리다. 세계 각국의 국가 운영 방식에서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을 선택하는가의 가늠자이기도 하다. 우리 헌법은 123조 3항에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동 헌법적 보호·육성 조항이 중소기업의 약자보호 우선이라는 철학적 가치와 맞물려 작동한다. 그 결과 중소기업 관련 법과 제도 그리고 정책의 양산을 초래하고 있다. 2024년 정부 예산안에서도 소상공인에 대한 이자비용 경감, 전기요금 특별지원 등 약자에 대한 지원정책을 대폭 강화했다. 경제적 약자에 대한 사회보장 차원의 노력이라는 불가피성이 있다. 일종의 필요악이지만 포퓰리즘 정책인 것은 사실이다. 중소기업 정책 전반에 걸친 철학적 가치 논쟁과 함께 사회적 공론화가 시급한 이유다.

둘째는 중소기업 관련 법과 제도 그리고 지원정책에 대한 비판적 평가와 재정비다. 중소기업관련법은 중소기업기본법, 소상공인기본법 등 중소벤처기업부 소관 28개, 중소기업지원기관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 14개, 중소기업지원단체는 중소기업중앙회 등 17개, 중소기업지원예산은 2023년 13조5200억원으로 정부예산 638조7000억원의 2.1% 그리고 중소기업지원정책은 1500개 수준이다. 중소기업정책에 대한 철학적 성찰과 공론화의 빈곤에 따라 정치적 포퓰리즘과 합세한, 과다한 정부개입의 결과다. 중소기업 부문만이 아니다. 산업별, 기능별 정부 기능 제반 부문에서도 정부개입이 확산되었다. 중소기업 부문부터 총체적인 정책목표 및 수단을 재평가하여 과감한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더하여 중소기업 정책 전달체계도 현장과 더욱 가깝게 밀착시키고 원스톱 기반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셋째는, 중소기업의 생-노-병-사 선순환 생태계 작동의 조화와 균형회복이다. 중소기업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하여 스케일업과 M&A, 사업전환, 구조조정 그리고 병과 사까지 순환을 반복한다. 현행 중소기업정책은 스타트업 및 벤처 활성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스케일업 부문은 통합적 지원 노력이 미흡하다. 회생 및 병·사 부문은 통합도산법 위주의 법적보호에 치중하고 시장작동 인프라 구축에는 미흡하다. 금융권에서는 죽어가는 약자를 다시 한번 짓밟는 현상도 존재한다. 중소기업 선순환 생태계의 원활한 작동을 위한 다양한 융복합 정책의 창조적 개발과 실행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사업전환, 구조조정, M&A 등 정책수단들도 생-노-병-사 생태계에 유기적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넷째는, 중소기업이 미래 먹거리 창출의 일역을 맡아야 한다. 생성형 AI의 등장과 활용은 삶의 방식과 비즈니스 모델에 혁신적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디지털대전환은 약자로서 보호·육성의 대상이었던 중소기업과 새롭게 비즈니스에 도전하는 스타트업들이 오히려 더 유연하고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호조건으로 작용한다.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제고 그리고 네트워크 협업역량의 확충에 디지털전환을 접목시키는 정책적 노력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하나뿐인 지구의 보존과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사회적가치 실현 요구가 거세다. 최근에는 재무적공시와 함께 ESG공시 요구도 강화되고 있다. 중소기업도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ESG냐”가 아니라 “창조적 경쟁우위 비즈니스모델의 도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중소기업 정책도 ESG실천에는 아낌이 없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는 중소기업 정책을 내수지향에서 글로벌 확산 체계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개발연대 대기업 주도의 수출지향형 성장모델을 추구하면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하청계열 형태로 성장 발전했다. 대기업에 대한 부품소재의 로컬 수출이 위주였다. 경공업 분야 등에서 해외 직접 수출도 이루어졌다. 중소기업의 글로벌 진출은 로컬 수출과 일부 해외수출 지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국기업의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대기업의 해외투자 확대와 동반한 중소기업의 해외투자가 이어졌다. 최근 글로벌기업들과 공급망을 형성하여 협력하는 중소기업들도 늘고 있다. 선도적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이상으로 글로벌시장을 타깃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창조적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글로벌기업 공급망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공급망 ESG 도입‘을 촉진하고 개발원조사업인 ODA나 정책지원사업인 KSP를 통해 중소기업정책의 성공 경험을 확산시키는 것이다. APEC 등 다자간 협력체제에서 중소기업정책 프로그램의 확대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생성형 AI가 만든 이미지. 프롬프트 질문은 '2024년, 중소기업, 자유시장경제, ESG 관련 이미지를 그려줘'.   
생성형 AI가 만든 이미지. 프롬프트 질문은 '2024년, 중소기업, 자유시장경제, ESG 관련 이미지를 그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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